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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경영학] 신용카드 ‘2월 미스터리’

HERI 2011. 06. 27
조회수 5575
신용카드 ‘2월 미스터리’
명절 연휴에 지출이 증가하는 건 ‘사회적 소비’의 결과…얼리어답터도 생태주의자도 갖고 있는 구별짓기 본능


이주의 용어
사회적 소비(social consumption)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뭔가 많이 산 것 같지도 않은데, 평소보다 그리 많이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신용카드 결제일에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금액이 다른 달보다 예사롭지 않다. 무심코 신용카드 결제 통장의 잔고를 평소만큼만 남겨뒀다가는, 신용카드가 사용 정지되기 십상이다. 명절이 들어 있는 달의 신용카드 결제일 이야기다. 바로 이번달 같은 때 말이다.

베블런이 제기한 ‘과시적 소비’

아무래도 명절이 되면, 비슷한 품질이라도 좀더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물건을 사게 된다. 명절 때 사용한 물건의 양과 질에 견줘 좀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소비’(social consump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좀더 좁게는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회적 소비란 제품 자체의 질 때문이 아니라, 그 제품을 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또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개인의 특성 때문에 소비하는 행위다. 친척이 많이 모이는 명절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좀더 나은 브랜드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지출이 사용하는 물건의 양과 질에 비해 평소보다 커진다.

미국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명절 연휴의 소비 패턴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다. 대형 할인점의 가격 변동에 대해 조사한 연구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전략적 가격책정 그룹과 경제학 교수들이 함께 내놓은 연구 결과다

요지는 이렇다. 대형 할인점에 PB(점포브랜드) 상품과 일반 상품이 있다. 보통 PB 상품이 더 싸다. 미국에도 추수감사절이니 크리스마스니 노동절이니 하는 명절 연휴가 있다. 이 연구팀이 미국 명절 때 대형 할인점에서 판매한 물건을 조사했더니, 사람들이 명절이 아닌 때와 비교할 때 PB 상품의 선호가 떨어지고 일반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올라갔다. 명절 때면 소비자들이 평소보다 더 비싼 브랜드를 선호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다.

소비자가 상품을 소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동기다. 그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얻게 되는 실질적 만족이다. 밥을 소비하면서 배부름과 밥맛을 느끼고, 놀이공원을 소비하면서는 즐거움과 짜릿함을 얻는, 그런 소비다. 그러나 소비는 이런 실질적 만족 이외에 다른 만족도 준다. 바로 그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느끼는 사회적 만족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이야기한 ‘과시적 소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베블런은 1899년에 나온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며 과시적 소비를 지적했다. 상류계층이 비싼 상품을 사는 이유는 그 상품이 주는 실질적 만족 때문이 아니라, 비싼 상품의 소비를 통해 높은 신분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후 경제학에서 초고가 명품 패션 상품, 매우 비싼 상류층 클럽의 회비 등을 설명할 때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 개념이 단골로 사용된다.

물론, 모든 사회적 소비가 그저 과시적 소비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 소비는 남들과 나를 구별짓기 위해 행하는 소비다. 그런 점에서 베블런이 이야기한 것처럼 과시적 소비도 물론 사회적 소비에 포함된다. 그러나 꼭 상류계층만 구별짓기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생태주의자들은, 유기농•친환경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스스로를 “환경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구별지으며 거기에서 만족을 구할 수 있다.

이른바 ‘얼리어댑터’들도 마찬가지다. 뭔가 새로운 첨단 기술의 제품이 나올 때마다 사들이면서, 사들이는 행위 자체에서 만족을 느낀다. 물론 제품에서 얻는 만족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으로 구별지으면서 얻는 사회적 만족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평화적인 본능 표출 방식?
그래서 새로 나온 비싼 휴대전화나 디지털 카메라를 사는 소비자가 언제나 존재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격이 떨어지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을 나누어 내놓는 서구 출판시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서너 달 뒤면 똑같은 책이 페이퍼백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두 배가 넘는 값을 치르고 하드커버 책을 사는 소비자가 줄을 선다. 하드커버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만족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이다.

보수나 진보나 ‘내핍’을 절대적 미덕으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짙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필요 이상의 소비는 쉽게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시적’이라고 해서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식사 자리에 차릴 음식을 준비하면서, 가능하면 값싼 중국산 농산물보다는 국산을, 되도록이면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라는 딱지가 붙은 제품을 사서 쓰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구별짓기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일지 모른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충족되지 못한 본능은, 쌓이고 쌓여 마음 깊이 불만으로 자리잡으면서 파괴적인 행동을 불러오기도 한다. 사회적 소비는 그나마 가장 평화적인 본능 표출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한겨레2007/03/06 6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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