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7-12-20
유권자를 소비자로 만드는 정치 마케팅… 비누처럼 팔려나가는 대선 후보들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후보들은 마치 비누처럼 마케팅되고 팔려나간다.” 세계적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의 말이다. 소비자가 여러 비누 중 자신이 사용할 비누를 선택하는 과정과 유권자가 선거에서 여러 후보 중 대통령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택하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유권자는 정치 소비자가 된다. 후보들은 정책상품 패키지가 된다.


△ 정치 마케팅은 선거공보에도 담겨 있다. 12월9일 경기 수원 팔달구 인계동 주민센터에서 경기도 선관위와 주민센터 직원들이 선거공보를 봉투에 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명박의 타깃 마케팅, 문국현의 인지도 전략

후보가 상품이라면, 상품을 팔아야 하는 선거 캠프는 마케팅팀이 된다. 당연히 자기 후보를 잘 팔기 위한 전략이 수립되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서로 자기 회사 비누를 더 많이 팔려고 마케팅 전략을 짜고 광고를 하고 언론 홍보를 하는 경쟁사의 마케팅팀처럼 말이다.

이런 마케팅 전략은 유권자 가정으로 배달된 이번 대선 후보들의 책자형 선거공보에서도 다양하게 드러난다. 선거공보를 통해 그 ‘마케팅팀’의 속내를 파악하면, 유권자 입장에서는 그 후보의 객관적인 상황을 좀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후보의 선거공보는 매우 전략적으로 설계됐다. 특히 전형적인 타깃 마케팅 방법을 빌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 책자형 선거공보의 한 장을 넘기면 바로 ‘2030’ 페이지가 나온다. 미혼의 20대와 30대 젊은이를 타깃으로 삼은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둔 것이다. 이 페이지의 사진에서 이명박 후보는 빨간 모자를 삐딱하게 돌려 쓰고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웃고 있다. 그리고 ‘열정’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취업과 관련된 자신의 공약을 나열해두고 있다. 한 장을 넘기면 바로 ‘3040’ 페이지가 나온다. 이곳의 키워드는 ‘사랑’이다. 여기서 이명박 후보는 흰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어린이들 사이에 앉아 있다. 그리고 교육 관련 공약이 나열돼 있다. 선거공보는 4050, 6080까지 이어지면서 타깃 홍보를 이어간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나이가 표시된 두 페이지만 읽으면 이 선거공보는 끝이다.

이명박 후보의 타깃 마케팅의 압권은 책자형 선거공보의 뒤표지다. 뒤표지는 전적으로 군인을 타깃으로 만들어져 있다. 군복을 입은 이명박 후보 사진이 등장하고, 군인들에게 쓴 이 후보의 편지가 게재돼 있다. 17대 대통령선거 전체 유권자는 3765만 명인데, 이 중 군 부재자투표 대상자는 51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명박 후보는 이들을 정확하게 타깃으로 잡은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이다.

정동영 후보의 책자형 선거공보에는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여기저기 엿보인다. ‘동행’이라는 최상위 콘셉트 아래, ‘땀’ ‘꿈’ ‘집’ ‘힘’ 네 개의 하위 콘셉트를 결합했다. 특히 네 개의 하위 콘셉트는 한 음절에 같은 각운을 갖도록 설계돼 있어 발음을 통해 기억을 더 쉽게 만들어주도록 하고 있다. 제품 브랜드명에서나 제품 이미지 광고 콘셉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계다.

정책 공약을 운율화하는 노력까지 보인 것은, 인지도는 높으나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콘텐츠 부족’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그 약점을 보완하려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 머릿속에 어떻게든 정동영 후보의 정책이 자리잡도록 만들어서, 콘텐츠 부족이라는 이미지를 털어버리려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의 책자형 선거공보에는 정치 경험이 적어 인지도가 낮은 문 후보 쪽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 장을 넘기면, “문국현, 따뜻한 나라를 만들 따뜻한 사람입니다”라는 문구와 문 후보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가득 찬 페이지가 등장한다. 정책보다는 인물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둔 마케팅 전략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정책은 여러 분야를 나열하기보다는 ‘500만 개 일자리’ 하나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역시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 소개로 관심을 분산시키기보다는 하나의 명료한 정책으로 일단 인지를 시키겠다는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소비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광고할 때, 제품의 성분을 나열해서는 크게 주목받기 어렵다. 제품 생산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소개하거나, 다른 제품과 명백하게 차별화된 하나의 특징을 내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회창 후보와 권영길 후보의 책자형 선거공보는 잘 알려진 두 후보의 특징을 각각 다시 한 번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반듯한 대한민국”이라는 테마로 ‘대쪽’ 이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권영길 후보는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구호 등으로 기존의 정치적 입장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갈수록 고도화하는 심리 게임

그러나 이회창 후보나 권영길 후보나 이미 두 번의 대선 출마를 통해, 반듯한 이미지나 서민적·진보적인 이미지가 이미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둘 다 좋은 마케팅 전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박카스’ 같은 제품을 마케팅하면서 그저 피로회복제라고 강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박카스가 젊은이들에게 좋다”고 강조하는 식으로 새로운 마케팅 포커스를 찾아야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

서구 정치 마케팅 이론에서 정치인이 비누로 비유되는 데는, 사실 정치인들이 비누처럼 미끌거리면서 핵심을 잘 빠져나간다는 비아냥이 숨어 있다. 마케팅이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인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행위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있다. 비누 같지 말아야 할 정치인들을 비누처럼 팔려고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게 올바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정치 마케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후보와 정치 소비자 사이의 심리 게임도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삶과경제] ‘MBA 2.0’이 필요하다

2009-04-21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전세계의 각종 비영리 사업을 위해 제가 조달해 준 자금이 지금까지 2억5천만달러(약 4천억원)쯤 됩니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스콜세계포럼에서 만난 조지 오버홀저는 비영리 자금조달 ...

  • HERI
  • 2011.06.27
  • 조회수 7135

[삶과경제] 불황과 기부

2008-11-12 스타벅스의 실적이 추락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 다국적 커피 브랜드의 최근 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 주당 1센트로 떨어졌고, 뉴욕증시 상장주식의 가격은 연일 하락세를 보...

  • HERI
  • 2011.06.27
  • 조회수 7334

[삶과경제] 기업이 왜 다른 기업을 돕나요?

2008-12-10 어느 대기업 중견 간부를 만났다. 마주 앉아 경제 걱정을 한참 하던 중, 그는 뜻밖의 의문을 던졌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것은 맞다. 그래서 사회공헌활동 예산은 어려울 때 더 늘려야 ...

  • HERI
  • 2011.06.27
  • 조회수 7084

도보 여행, 컴포트 푸드, 빅3의 귀환

2009-01-04 [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에서 엔터테인먼트까지, 2009년에 꼭 알아야 할 esc 트렌드 열쇠말 100을 읽는다 | 여행 | 1 도보 여행 올해 여행의 화두는 걷기가 될 것 같다. 유럽발 ‘카미노 데 산티아고...

  • HERI
  • 2011.06.27
  • 조회수 8057

짜릿하다 첫경험, 궁금하다 트렌드 3

2009-01-03 [한겨레] [매거진 esc] 신년특집 한복여행단 고! 격투기 출전 큐! 괜찮아, 잘 될거야♬ 2009년 50인이 꿈 꾸는 첫경험 “계획을 지우자! 이기적이 되자!”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머리를 텅 비우는 해...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08

[삶과경제] 글로벌 금융위기와 용산 참사

2009-02-04 철거민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용산의 한 옥상에 진입작전을 지시한 지휘관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법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과 직업의식 이외에, 혹시라도 대형 참사가 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

  • HERI
  • 2011.06.27
  • 조회수 6699

“신자유주의 자식들”↔“보이지않는 저항”

2009-02-24 한겨레 시민포럼]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 김경락 기자 <script></script> » ‘2009 희망 만들기 한겨레 시민 포럼’이 열린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가운데)씨가 ‘빈곤의 덫의 복귀,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321

[삶과경제] 스타벅스 구조조정이 슬픈 이유

2009-03-04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2008년 4분기에 1억2천만달러(약 1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기업이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해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시장 참여자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630

잭 웰치 “주주가치 집착…어리석었다”

2009-03-13 자신이 창시한 주주가치 원칙 부정 비용 줄이려 구조조정에 치중 단기실적·시장만능주의 반성 류이근 기자 » 잭 웰치 GE회장. 이종근기자잭 웰치(74)는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가 된 직후 미국 뉴욕시 피에...

  • HERI
  • 2011.06.27
  • 조회수 7523

낯선 외국 조직과 10분만에 파트너십 이루기

2009-04-01 ‘파트너십’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습니다. 영리와 비영리간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비슷한 미션을 가진 사회적기업이나 NPO끼리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듣지요. 하지만 어떤 목적에서든, 처음 만난 사람...

  • HERI
  • 2011.06.27
  • 조회수 6639

“세계 경제권력 시민사회로 이동중”

2009-04-01 영국서 열린 ‘스콜세계포럼’을 가다 이원재 기자 <script></script> » 스콜세계포럼에서는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모여 경제위기 이후의 권력 이동 전망을 논의했다. 맨 왼쪽부터 레이 수아레즈 미국 기자, 캘라시 ...

  • HERI
  • 2011.06.27
  • 조회수 7535

[삶과 경제] 새해 경제 열쇳말 '착한경제'

2008-12-31 이번 송년 모임의 화제는 모두 암울하기만 했다. 도대체 이 경제의 향방이 가늠되지 않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불황의 끝이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경제는 결국 다시 기지개를 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644

[삶과 경제] 글로벌 금융위기와 금융참사

2009-02-04 철거민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용산의 한 옥상에 진입작전을 지시한 지휘관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법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과 직업의식 이외에, 혹시라도 대형 참사가 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 HERI
  • 2011.06.27
  • 조회수 6018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

2009-02-24 “신자유주의 자식들”↔“보이지않는 저항” [한겨레 시민포럼]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 김경락 기자 <script></script> » ‘2009 희망 만들기 한겨레 시민 포럼’이 열린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88만원 세대>의 저...

  • HERI
  • 2011.06.27
  • 조회수 7675

'황제 경영'은 정말 바뀔 것인가

2008-07-24 [한겨레21] ‘황제 경영’은 정말 바뀔 것인가 전문 경영인 체제 확립·개별 기업 독자성 실현해야…이재용 전무 복귀에 관심 집중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회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555

좋은 일 하고 돈도 버는 창업 없을까

2007-12-02 ‘노리단'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의 문화예술분야 창업팀 중 하나인 뮤직퍼포먼스그룹이다. 2004년 6월에 만들어진 이 팀은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업폐자재, 생활용품 등을 이용해 스스로 만든 악기를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927

사람냄새 나는 돈이 세상을 바꾼다

2007-05-14 요즘 대학가에 ‘착한 돈 바람’이 불고 있다. ‘정치 구호’가 사그라든 대학가에 경제 쪽 관심은 날로 새롭다.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이들은 전사회적으로 몰아치는 신자유주의적...

  • HERI
  • 2011.06.27
  • 조회수 6812

[나라살림가족살림] 사회적 기업과 경영능력

2008-04-30 7년 전, 이철종 대표이사의 꿈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취업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했다. 그래서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기로...

  • HERI
  • 2011.06.27
  • 조회수 6809

‘사회적 기업가’ 양성학교 문 두드리세요

2008-08-20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는 교육 아카데미가 전국에 문을 연다. 실업극복국민재단은 노동부가 주관하고 에스케이(SK)가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가 아카데미 교육 운영기관으로 한겨레경제연구소 등 18곳을 최종 선정해 20일...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03

(나라살림가족살림) “착한 경제”의 코드

2008-01-30 부산의 엔지오 활동가들을 만났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좋은 일’을 하는 데 헌신적으로 보낸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이제 ‘돈벌이’였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하고 있는 좋은 일을 지속시키려면 경제적 자립이 필요...

  • HERI
  • 2011.06.27
  • 조회수 5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