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10-09-25 


“저게 중국 스타일이에요.” 옆에 앉은 일본 전문가가 흉보듯 말을 건넸다. 국제 세미나 행사가 예정보다 30분이나 늦어지고 있었다. 한·중·일 전문가가 모여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에 대해 논의하는, 유엔글로벌콤팩트 한·중·일 라운드테이블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가 대답했다. “좀 늦군요. 그래도 내용은 많이 준비한 것 같으니 좀 기다려 봅시다.” 한국·중국·일본이 돌아가며 주최하는 이 행사에서, 이번에는 중국이 주최측이었다. 지난 8월 초, 상하이 엑스포 유엔관 안의 국제회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한국·중국·일본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연구한 지 3년째다. 중국 및 일본 전문가들과 일할 기회가 점점 많아진다. 그런데 중국 전문가와 일본 전문가들은 자주 부딪쳤다. 두 강대국 사이의 자존심 대결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미시적으로도 차이가 컸다. 중국 전문가들은 거시적 맥락, 국가 정책의 문제부터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총론과 당위에 강하다. 반면 일본 전문가들은 꼼꼼하다. 각론을 중시하고, 범위가 작더라도 정확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당위보다는 실용을 중시하고, 내용 없는 구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 회의에서는 한국인의 ‘허브’ 역할이 중요해진다. 굳이 자임하지 않아도 자꾸 중재자 역을 맡게 된다. 경제발전 양상도 중간이고, 정서도 중간이라서 중재역이 가능한 것일까? 심지어 시간 지키기 같은 기본 예절에서도 한국인은 중간인 듯하다. 

한국·중국·일본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에 완충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다. 발전 단계가 다른 세 나라 사이에 형성된 공급 사슬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조심스럽지만, 세 나라 공통의 과제인 북한을 둘러싼 긴장을 해소하는 데도 지역공동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공동체에서 한국의 소임은 막중하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내가 느낀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이런 대화를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기업과 시민사회 등 민간에서 시작하고 정부는 지지하는 순서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의 이기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진보적인 것이라야 한다. 셋째, 공동의 이해관계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주제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가 가장 쉽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다. 국제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주제이면서,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사회문화적 전통과도 연결고리가 있으며, 서구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업 평가 기준에 대응해야 한다는 공동의 이해관계도 갖고 있는 주제다. 

최근 서울글로벌콤팩트연구센터에서 구상중인 ‘5W 운동’도 비슷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동아시아 기업이 주체가 되어, 이 지역의 전통 지혜를 발굴하고, 그 지혜로 물 문제, 절멸 언어 문제 등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는 기획은 이런 원칙에 맞아떨어진다. 이런 주제를 계속 발굴하고, 자원을 집중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처한 위치는 기회와 함께 책임도 부과한다. 작은 나라지만 작지 않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거꾸로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동아시아 지역 평화에 기여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 
지금까지 가깝게 남아 있는 내 유학시절 친구 대부분은 한국·중국·일본인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오래 남아 있을 가까운 친구가 필요하다. ‘동북아 균형자’라는 용어가 다시 떠오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timelast@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HTC폰의 약진, 꾸준함이 반짝거림을 이긴다 - HERI 경제해설(11월7일)

1. 그리스 문제 가닥 잡나 그리스 여야가 2차 구제금융안 비준을 위한 거국내각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현 파판드레우 총리는 퇴진하기로 했다. -- 구제금융안은 어떻게 되나요? 파풀리아스 대통령은 총리와 야당인 사마라스 신...

  • HERI
  • 2011.11.07
  • 조회수 11407

오지마을 우물가엔 시원한 웃음 넘쳤다

경제 경제일반 오지마을 우물가엔 시원한 웃음 넘쳤다 [한겨레] 김재섭 기자 웅진코웨이, 캄보디아 ‘식수 해결’ 5년째 우물파기 2015년까지 1000개 목표…마을 영아사망률 감소 소문퍼져 앞다퉈 신청…개인이름 우물기증도 활발 ...

  • HERI
  • 2011.11.04
  • 조회수 21899

내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우선 재생에너지 힘쓸것 원전은 최후 선택이어야

경제일반 내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우선 재생에너지 힘쓸것 원전은 최후 선택이어야 [한겨레] 등록 : 20111103 20:30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ㅣ 트리 뭄푸니 2011년 막사이사이상 » 트리 뭄푸니 2011년 막사이사이상트...

  • HERI
  • 2011.11.04
  • 조회수 7860

EU 같은 경제공동체 동아시아선 비현실적 한·중·일 FTA 모색을

경제 경제일반 EU 같은 경제공동체 동아시아선 비현실적 한·중·일 FTA 모색을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⑤ » 허시유 푸단대 교수 허시유 중국 푸단대 교수(42·경제학)는 한·중·일 경제공동체 구상에 대해 균형...

  • HERI
  • 2011.11.03
  • 조회수 8954

협동조합 은행이 투자자 소유 은행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사회 사회일반 협동조합 은행이 투자자 소유 은행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한겨레] 김현대 기자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④ » 존스턴 버챌 스털링대학 교수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의 존스턴 버챌(60) 교수는 세계 협동조합계...

  • HERI
  • 2011.11.02
  • 조회수 8370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중심 재건 실험중”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중심 재건 실험중”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③ 원전족, 일본 전력시장 장악 손정의 등 녹색에너지 세력 발전차액지원제 등으로 도전 » 앤드루 드윗 릿교대 교수앤드...

  • HERI
  • 2011.11.01
  • 조회수 9113

서구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 아시아가 해답 들려줄수도

서구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 아시아가 해답 들려줄수도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② 중국은 근대 국민국가 아닌 그들 나름의 문명국가 성장 지진해일·원전사고 충격 일본사회 변화 방향 고민 문명의 중심축이 유...

  • HERI
  • 2011.10.31
  • 조회수 7704

“댐 완공땐 마을 침수…새 집 지어준다니 꿈같아”

“댐 완공땐 마을 침수…새 집 지어준다니 꿈같아” [한겨레] 조기원 기자 소수민족 아이타족, 이사비용 턱도 없는 가난한 삶 코이카·아시아나·굿피플 새집 70채 지어 이주 계획 보건소도 세워…“자립기반 마련해주는 게 장기과...

  • HERI
  • 2011.10.28
  • 조회수 9048

유로권 재정위기는 과잉복지 탓 아닌 금융허브 몰입한 탓

경제 경제일반 유로권 재정위기는 과잉복지 탓 아닌 금융허브 몰입한 탓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빚에 억눌린 정부·기업·가계 쓸돈 없으면 불황 가속화...

  • HERI
  • 2011.10.24
  • 조회수 7856

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경제 경제일반 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한겨레] 이재명 기자 지구촌나눔운동, 유목민에게 축산·농업기술 전수 현지인 리더십 양성 초점…“삶의 질 향상에 일조” 갓 돌이 지났을 법한 딸아이를 가슴에 안은 체랭...

  • HERI
  • 2011.10.21
  • 조회수 8375

사막에 울창한 숲을…쿠부치에 심은 ‘녹색 희망’

경제 경제일반 사막에 울창한 숲을…쿠부치에 심은 ‘녹색 희망’ [한겨레] 박영률 기자 ‘대표적 황사 발원지’ 쿠부치 사막에 ‘길이 28km·폭 8km’ 숲 조성 “황사·사막화 방지에 도움 보람”…일본도 1992년부터 녹화사업 모래...

  • HERI
  • 2011.10.14
  • 조회수 10571

‘블랙아웃’ 걱정, 2차전지에 맡겨라

경제 경제일반 ‘블랙아웃’ 걱정, 2차전지에 맡겨라 [한겨레] 최현준 기자 작고 가벼운데 용량 큰 ‘반영구적 전기창고’ 삼성SDI, 소형 2차전지서 일본 제치고 1위 중·대형 박차…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추진 지난 4일 찾은 ...

  • HERI
  • 2011.10.07
  • 조회수 8674

[싱크탱크 광장] ‘빚더미’ 대한민국·서울시 건강재정 되찾을 묘안은

사설.칼럼 칼럼 [싱크탱크 광장] ‘빚더미’ 대한민국·서울시 건강재정 되찾을 묘안은 나라살림 현황과 해법 [한겨레] 등록 : 20111004 19:45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로 뽑혔다. 경선 막바...

  • HERI
  • 2011.10.05
  • 조회수 9139

“안철수 현상은 □ 다”

정치 정치일반 “안철수 현상은 □ 다” [한겨레] 이지은 기자 등록 : 20110929 21:28 한겨레·싱크탱크연합 토론회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안철수 현상’은 무엇에서 비롯됐는가?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불어닥친...

  • HERI
  • 2011.10.04
  • 조회수 9487

태양광 전지판 전세계 80개국에 펼치다

경제 경제일반 태양광 전지판 전세계 80개국에 펼치다 [한겨레] 김경락 기자 등록 : 20110929 20:30 | 수정 : 20110929 22:13 창업 9년만에 실리콘 태양광 모듈 세계 1위 지방정부 지원·과감한 R&D투자로 고속성장 최근 ...

  • HERI
  • 2011.09.30
  • 조회수 9048

[싱크탱크 시각] 위기의 본질 / 이원재

사설.칼럼 칼럼 [싱크탱크 시각] 위기의 본질 / 이원재 [한겨레] 한국 기업은 이미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 위험한 것은 개인이다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경제위기’가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원화 환율이...

  • HERI
  • 2011.09.26
  • 조회수 9369

페르시아만 바닷물을 ‘사막의 생명수’로

경제 경제일반 페르시아만 바닷물을 ‘사막의 생명수’로 [한겨레] 김경욱 기자 UAE 루와이스 200만㎡거대 물공장 가동 시작 폐열·폐증기 이용한 ‘다단증발방식’ 친환경 기술 22곳에 450만톤 규모…하루 1500만명 이용 가능 무...

  • HERI
  • 2011.09.23
  • 조회수 10012

독보적 철강기술로 ‘반환경’ 용광로 허물다

경제 경제일반 독보적 철강기술로 ‘반환경’ 용광로 허물다 [한겨레] 황예랑 기자 등록 : 20110915 20:26 가루로 쇳물 만드는 ‘파이넥스 공법’으로 공정 줄여 ‘용광로 대체’ 첫 성공사례…오염물질 배출량 급감 2007년 상...

  • HERI
  • 2011.09.16
  • 조회수 10791

CO₂ 배출 0…‘절전형 도시’ 만든다

경제 경제일반 CO₂ 배출 0…‘절전형 도시’ 만든다 [한겨레] 구본권 기자 등록 : 20110908 21:01 태양광 발전·빗물 이용 ‘에코하우스’ 실용화 코앞 2018년 창업 100돌 ‘그린플랜’…에너지솔루션 주력 일본은 지난 3월 동북...

  • HERI
  • 2011.09.16
  • 조회수 9257

‘맞춤 정보’ 지금 당신의 생각을 재단중

문화 책 ‘맞춤 정보’ 지금 당신의 생각을 재단중 [한겨레] 등록 : 20110902 21:20 개인 관심정보 알려주는 ‘필터링’ 콘텐츠 편식조장 민주주의 위협 » 생각조종자들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정태ㆍ이현숙 옮김/알키ㆍ1만5000원...

  • HERI
  • 2011.09.05
  • 조회수 8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