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제1회 한겨레 ‘사람과 디지털포럼’
기조연설 | 대니얼 서스킨드
● 대니얼 서스킨드
- 영국 총리 정책자문관 역임
-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선임연구원, 인공지능 윤리연구소(Institute for Ethics in AI) 선임연구원
- 저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20세기에는 기업의 경제적 힘을 주로 걱정했지만 21세기에는 정치적 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제1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의 기조강연자인 대니얼 서스킨드는 빅테크가 위협하는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미래, 공룡 빅테크를 규제하기 위한 정치적 감독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서스킨드는 기술혁신과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위협하는 일자리의 미래를 통찰력있게 짚어내 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최고의 전문가다. 영국 총리실에서 정책자문관을 지냈고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등의 저서를 통해 신기술이 고숙련 전문직의 일자리도 위협하는 변화의 흐름을 예리하게 짚고, 기술과 인간이 서로 경쟁하고 공존하는 시대, 인간의 가능성과 역량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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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도 위협하는 일의 미래

지난 세기는 기술 진보의 물결이 노동자를 밀어내기보다 노동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하지만 인공지능 등으로 더 똑똑해진 기계가 법률가, 의사·회계사·교사 등 전문지식, 직관력과 판단력이 요구되는 전문직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서스킨드는 일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일자리와 업무를 구분해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신기술이 도입된다고 해서 어떤 일자리도 통째로 자동화되지 않는다. “전문가 일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부속 작업으로 분해될 수 있다.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은 부속 작업으로 분해해 서비스에 요구되는 품질과 본질을 충족하는 한도에서 최대한 낮은 비용으로 잘 수행하는 사람에게 위임될 것이다.” 그 결과 “점점 유능해지고 똑똑해지는 기계, 그리고 준전문가가 실용적 전문성의 새로운 원천으로 등장한다”고 서스킨드는 말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대형 법무법인이 변호사의 법률 업무를 분해한 후 소송 서류 검토, 실사 업무, 표준계약서 초안 작성, 기초적 법률 조사 등 규칙적인 작업을 준전문가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준전문가는 절차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업무를 담당한다. 서스킨드는 “전문직의 업무는 분해되고 또 여러 직종의 전문직과 융합되고 다각화되어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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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경쟁력은?

대부분의 작업에서 기계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기계에 견줘 인간의 우월함은 무엇이며, 기계와의 관계에서 앞으로 어떤 능력이 더 주목 받게 될까?

서스킨드는 “전문직의 업무는 분해되고 다른 일과의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해체되고 재구성될 여러 가지 ‘업무’들에 능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기업 인수·합병 업무의 경우 회계사, 변호사, 기업금융 전문가, 컨설턴트의 업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단일 조직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시장 상황이나 기술 변화에 따라 업무는 언제든 재구성될 수 있다. 빠르게 배우고 적응하는 능력, 즉 ‘유연성’이 중요하다.” 또한 빅데이터 처리능력 등을 포함해 시스템 개발에 적극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지원하는 교육이 필수적이며,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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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 종말’의 시대, 정부의 역할은?

그동안 일은 경제적 번영과 부의 분배의 원천이었다. 서스킨드는 ‘노동의 시대가 끝나고’ 일이 부족한 세상에서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를 질문하면서 재분배 방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이때 반드시 자격 요건을 포함할 것을 강조한다. 경제활동으로 기여할 수 없다면 다른 활동으로 기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은 소득의 원천이자 삶의 의미의 원천이다. “일로 기여할 수 없다면 동료 시민을 돌보고 지원하는 활동, 즉, 공동체연대를 통해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분배의 정의’ 못지않게 ‘기여의 정의’도 중요하다.”

일자리 질이 위협받을수록 정부는 노동을 지원해야 한다. 서스킨드는 ‘큰 정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간호·간병·교육처럼 자동화가 어려운 직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격차가 큰 일자리의 상당수는 임금이 매우 낮다. 정부는 여기에 개입해 일정 생활 수준이 가능하도록 임금을 보장해 격차를 줄이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해진 빅테크를 규제하는 것도 ‘큰 정부’의 역할이다. 서스킨드는 “디지털이 곧 정치적이다”라며 21세기는 디지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촉발제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서스킨드는 디지털 기술 대기업, 즉 빅테크의 힘이 커지면서 자유의 한계도 정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무인자동차의 속도, 알고리즘을 통해 유권자의 선호에 맞게 정치적 정보를 제공하는 등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민주주의 미래를 결정한다. 일자리가 줄어들수록 빅테크가 우리 경제와 삶을 지배할 가능성도 커진다. “기술 대기업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정의 등의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경제적 힘 못지않게 정치적 힘을 감독할 수 있는 구체적 수단이 필요하다”며 “기술 대기업이 정치적 힘을 악용할 경우 조사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의 경제적 힘을 규제하기 위해 경쟁정책이 작동하는 것처럼 정치영역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10478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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