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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겨레 ‘사람과 디지털포럼’
기조연설 | 라이언 아벤트 인터뷰
● 라이언 아벤트
- <이코노미스트> 수석편집자, 무역 및 국제경제 에디터, 칼럼니스트
- 미 노동통계국 산업분석가 역임
- 저서 <노동의 미래> <닫힌 도시를 열어라>

새롭게 만들어질 디지털 세상의 규약을 주도하는 세력은 산업혁명기와 달리 국경과 계층을 넘어선 이용자 집단이 될 것이다.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사례다.

오는 23일 판교에서 열리는 제1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의 기조연설을 맡은 라이언 아벤트는 미래 사회계약이 어떻게 변화할지 제시할 예정이다. <이코노미스트> 수석편집자이자 경제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글로벌 경제를 분석해온 아벤트는 저서 <노동의 미래>에서 다양한 통계와 분석 자료를 근거로, 노동을 포함한 디지털 경제의 구조적 변화 요인을 다뤄왔다. 그는 디지털 혁명이 세 가지 방식으로 인간 노동에 변혁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자동화, 세계화, 그리고 숙련된 전문가를 통한 생산성 증대다. 이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규약을 필요로 하는데 그 주도세력은 암호화폐 가상자산 커뮤니티처럼 경제적·정치적 변화를 성취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모인 열정적 공동체가 될 것이다. 아벤트는 미국에서 구글·아마존·애플스토어 등 빅테크 기업에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있지만 산업혁명 때처럼 새로운 사회규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조가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아벤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당신은 패자 집단이 더 나은 몫을 요구하며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때 사회적 변화가 발생한다고 봤는데, 이는 디지털 세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사회 변화에서 소외당한 뒤 서로를 찾아나서고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해 사회변화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걸 지켜봤다. 특이한 것은 계층에 기반하거나 재분배를 겨냥한 움직임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동의 미래>에서 디지털 혁명이 산업혁명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이라며 디지털에 적합한 사회적 규약과 질서가 생겨날 것이라고 했는데?

“산업혁명은 낡은 체제가 더이상 기능하지 못하고 새로운 규범이 나타나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 디지털 혁명으로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새로 생겨날 질서는 국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정체성에 기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산업혁명 때처럼 계급 기반이 아닐 것이다. ‘이용자’가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드는 집단이 될 수 있다. 이용자 집단이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개인들간의 연대 책임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산업혁명 이후 생겨난 각종 사회제도와 복지정책은 산업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이 열악해지면서 생겨난 반작용의 측면이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도 박탈된 집단의 열악한 상황이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가속화하는 자동화는 사회운동과 정책적 대응을 촉발할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박탈당했다고 여길 집단이 조직화하기 어려워졌는데?

“지금은 계급에 기반한 노동자적 정체성이 강력하거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암호화폐 커뮤니티처럼 경제적·정치적 변화를 성취하기 위한 열정적 공동체가 눈길을 끈다. 이는 산업화 과정의 노조와 다른 방식의 사회운동이 어떤 형태일지 알려준다.”

-디지털 환경에서 노동은 자동화하고 편리해졌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대가 없이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그림자 노동’의 문제도 부각시켰다. 디지털 경제에서 그림자 노동의 확산은 불가피한가?

“디지털 시대의 흥미로운 현상인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사람이 유사노동을 하는 형태다. 산업혁명 초기에 공장 조립라인은 조잡해서 장인들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나중에 개선된 정밀 공작기계가 등장해 문제가 해결됐다. 발달된 로봇과 인공지능 또한 현재의 그림자 노동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노동 현상이 지속된다면 그 업무를 더 잘 이해하고 규제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구글, 아마존, 애플스토어 등 빅테크 기업에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빅테크 노조는 산업혁명 이후 노조처럼 새로운 사회규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술기업의 물류와 소매 부문은 노조 활동이 급증하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직업들이 20년 안에 자동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는 산업화 시대와 다르게 진행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노조 활동이 일부 성공적이라고 해도 수익성 높은 산업에서 비숙련 일자리가 확장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테크기업 노조가 대중 정치에서 새로운 기반을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에서 양극화 현상이 커지고 있으며 여론 지형에서도 마찬가지다. 양극화한 여론 사이에서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좋은 답은 없다. 산업화 시대에는 많은 사회문제가 경제 붕괴에서 비롯했기 때문에 노조와 같은 해결책을 통해 더 광범한 사회 변혁의 기초를 만들었다. 오늘날 사회적 문제는 많은 경우 사회적 위기에서 비롯된다. 일단 사회적 위기를 해결한다면 다른 많은 문제를 다루기 훨씬 쉬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회다. 하지만 사회적 위기 해결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다.”

-플랫폼과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탈진실 현상’과 ‘집단 극화’ 문제가 커지고 디지털 시대에 민주주의가 위협당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어렵지만 우리가 이 혼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의 출현을 통해서일 것이다. 예를 들면, 미디어를 이용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규범과 같은 집단행동이다. 현재처럼 온라인의 활동이 현실로 흘러드는 현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일종의 사회적 면역 반응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노조의 퇴조를 사회적 자본 감소의 사례로 얘기했는데, 디지털 경제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사회적 자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는 디지털 기술이 사회적 자본을 잠식하고 있으며 사회적 자본이 상실되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를 보고 있다. 이미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비생산적 활동’의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들 또한 사회적 자본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을 도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집에서 핸드폰 스크롤하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좀더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플랫폼과 빅테크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강력한 사회적·정치적 권력이 되고 있는데.

“정부가 문제를 잘 이해하고, 기준과 규칙을 정해 효과적 감독을 확립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쏟아야 한다. 알고리즘 의사결정에 더 의존하게 됨에 따라 이런 시스템의 실패가능성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정부는 이들 기업의 이기적 행동에만 의존하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0478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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