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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에 ‘안전규정’ 주주제안한
박유경 APG 이사 인터뷰

“산재 못 줄이면 기업가치 떨어져
중대재해 줄이려면 오너가 중요”
박유경 에이피지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이사. 박유경 제공
박유경 에이피지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이사. 박유경 제공

지난해 7월과 올 1월 광주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현산)은 지난달 8일 네덜란드 연금 투자회사 에이피지(APG)로부터 정관 변경에 관한 주주제안을 받았다. 연금자산 규모가 850조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인 에이피지는 현산의 지분 1.5%를 보유한 대주주다. 에이피지는 △지속가능경영, 안전경영 등에 관한 회사 의무를 명문화하는 전문 신설 △이에스지(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이사회 내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및 안전보건 전문 사외이사 1명 이상 선임 △지속가능경영 공시 도입 등을 요구했다. 이 제안의 수용 여부는 이달 안에 열릴 예정인 현산의 주총에서 최종 결정된다.

에이피지는 안전경영 책임을 요구하고 나선 배경에 대해 “주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에이피지 아시아·태평양지역 책임투자부 박유경 총괄이사는 지난 2일 <한겨레>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현산의 주주로서 광주 붕괴 사고 피해자 유족과 시민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주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현산이 안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경영진과 이사회를 최대한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평가는 어떤가?

“언빌리버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런 사고는 선진국이라면 2000년대 이후에는 나오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현산의 지배주주(정몽규 에이치디씨그룹 회장)에게 묻고 싶다. 계속 이렇게 경영하고 싶냐고. 그런 게 아니라면 경영진 뒤에 숨지 말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 산업재해를 막는 것은 무엇보다 지배주주의 의지가 중요하다. 사고를 대하는 경영진의 자세가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다’는 식이면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은 이 정도 사고가 나면 당장 최고경영자가 쫓겨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인데 산재를 분석해보면 후진국이다. 단지 사고가 많아서가 아니라 경영진의 마인드가 후진국이라는 얘기다.”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는데?

“이번 사고로 현산은 굉장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 산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기업에 장기적으로 굉장히 좋지 않다. 안전경영을 하지 않는 회사는 기업가치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산의 경우에, 앞으로 이 회사가 지은 아파트에 누가 살겠다고 들어가겠나. 산재가 많은 회사는 공사 수주를 할 때 경쟁업체들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뭔가를 더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는 결국 지배주주의 책임이다. 지배주주의 의지가 없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업을 도와준답시고 언론들이 ‘중대재해법으로 기업을 몰아세우지 말라’는 식으로 쓰는데, 이런 보도는 기업을 도와주는 게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등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게 기업을 진짜 돕는 거다.”

―에이피지가 현산에 주주제안을 한 배경은?

“에이피지는 노동자가 몇십년 동안 일하고 퇴직할 때까지 번 돈의 일부를 맡긴 연금으로 투자를 한다. 이 돈에는 노동자 개개인의 희망이 담겨 있다. 그분들은 일하는 동안에는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인간 대접 받으면서 일하고, 퇴직한 뒤에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런 바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돈을 사람이 죽고 다치는 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

―이사회에 안전보건위원회 설치도 제안했는데, 이미 그런 역할을 하는 조직이 회사에 있지 않나?

“예전에 현대중공업 쪽에 안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그때 확인한 것이 안전 관련 책임은 중간관리자 단계에 머물러 있고 최고경영자, 지배주주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사회 명의로 사죄를 한 것도 없었다. 이사회가 하는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게 경영진 감시인데 그걸 안 한 거다. 이사회 내에 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면 거기서 정기적으로 산재 관련 보고를 받고 경영진에 추궁할 수 있다. 현산이 비슷한 사고를 두번이나 일으킨 것은 이사회가 제 역할을 안 한 탓도 크다. 이사회에 참석해서 그냥 도장만 찍고 가는 식이다. 특히 사외이사분들이 제 역할을 안 한 것 같다.”(현산의 사외이사는 신제윤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김진오 전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이방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은 생소한 개념인데?

“우리나라는 어떤 기관투자자가 주주제안권을 행사하면 엄청 놀란다. 그걸 회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은 주주제안이 있으면 주총에서 표 대결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쪽과 주주가 사생결단식으로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은 이렇게 표 대결을 하지 말자는 거다. 권고적 주주제안권을 정관에 규정하면 주주의 제안에 대해 경영진이나 이사회가 검토를 한 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아니면 합리적 이유를 밝히고 거부하면 된다. 이는 주주와 경영진의 충돌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주주들이 제안을 많이 하는 이슈에 대해 미리 대응할 수 있는 거다. 삼성전자와 엘리엇의 충돌 같은 사례도 이전부터 기존 주주들이 숱하게 제기한 이슈였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이슈를 주주들이 많이 제안한다. 현산도 권고적 주주제안권이 정관에 있었다면 지난해 사고가 났을 때 ‘사고 원인을 조사하라’는 제안을 했을 것이다. 권고적 주주제안권은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 자본시장 선진국에는 대부분 보장돼 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녹취 김슬아 보조연구원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346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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