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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겨레·빠띠 주최 ‘한국의 대화’
생각이 다른 23쌍 만나 1대1 대화
다양한 이슈 관련 생각 솔직히 나눠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에서 열린 ‘한국의 대화’에서 참석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1대1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빠띠 제공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에서 열린 ‘한국의 대화’에서 참석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1대1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빠띠 제공

박유자씨는 서울 송파구에 사는 68살의 여성이다. 요즘 손녀딸을 돌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유한밀씨는 서울 은평구에 사는 32살의 청년이다.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료복지 분야의 사회적협동조합에서 팀장으로 일한다. 생면부지로 나이 차가 36년이나 되는 두 사람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KOTE)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한겨레신문이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사회적협동조합 빠띠가 주관한 ‘한국의 대화’ 자리였다.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한 10개항의 설문조사에서 서로 답변이 달랐던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 했다. 박씨는 ‘동성 간의 혼인 또는 친구와의 가족 구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구성 자유를 보장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고 답했다. 가족은 부부 중심의 친족관계로 이뤄져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이 강하다. 반면 유씨는 “매우 그렇다”고 정반대로 답했다.


 박씨는 유씨와 대화를 마치고 난 뒤 “다양한 가족 형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면서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유씨는 “평소 대화를 좋아하지만 나이 차가 많은 사람과는 경험이 없어 도전적인 일로 생각했다”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니 비슷한 부분이 의외로 많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생각이 고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런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기회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유씨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하니까 온라인 대화와는 달리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자연히 생겼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식과도 사회문제에 대한 대화는 잘 나누지 않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과, 그것도 세대 차가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면서 “다양한 취미 얘기도 하며 수다를 많이 떨었고, 대화 파트너가 말을 너무 이쁘게 해서, 힐링이 되었다”고 웃음 지었다.

‘한국의 대화’는 한겨레신문이 사회 내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1대1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관한 10개항의 사전 설문조사에는 모두 491명이 참여했다. 질문은 인공지능(AI)의 위협 가능성,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 노키즈존의 어린이 차별 여부, 다양한 가족 구성 자유 보장, 이주민 포용 여부, 남북통일 찬반, 정년 연장 필요성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설문조사 참여자 가운데 1대1 대화에 참여를 신청한 시민을 대상으로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로 23쌍의 짝을 구성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대1 대화 참여자를 대상으로 10개항의 동일한 설문에 대한 생각을 다시 물어본 결과 질문 항에 따라 생각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났다. ‘노키즈존이 어린이에 대한 차별일까요’라는 질문의 경우 긍정응답(그렇다와 매우 그렇다)이 대화 이전에는 67.4%였는데, 대화 이후에는 73.9%로 더욱 높아졌다. 반면 ‘다양한 가족구성 자유를 보장해야 하느냐’는 질문의 경우 긍정응답이 대화 이전과 이후 모두 80.4%로 같았다.

1대1 대화의 효과와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도 이뤄졌다. ‘생각의 변화와 별개로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정서적인 공감도와 이해도가 증가했느냐’는 질문에 긍정응답이 10점 척도에서 8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대화를 통해 기존의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느냐’는 질문에는 긍정과 부정의 중간 수준인 5.2점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마주앉아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긍정응답이 9.6점으로 압도적이었다. ‘이런 행사가 열린다면 또 참여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긍정응답이 9.2점에 달했다. 1대1 대화가 서로의 생각을 같게 하지는 못해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친구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효과가 확인된 셈이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에서 한겨레신문 주최로 열린 ‘한국의 대화’에서 1대1 대화 참석자들이 행사를 주관한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설명을 듣고 있다. 빠띠 제공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에서 한겨레신문 주최로 열린 ‘한국의 대화’에서 1대1 대화 참석자들이 행사를 주관한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설명을 듣고 있다. 빠띠 제공

한겨레신문은 오는 10월11일 열리는 제14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한국의 대화’의 성과를 공유할 계획이다. 개인자격으로 1대1 대화에 참여한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원장은 “사회 갈등을 봉합하고 공감대를 넓이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내년부터는 행사를 더 큰 규모로 준비해서 우리 사회가 분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화’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가 2017년 시작한 ‘독일이 말한다’ 프로젝트가 계기가 됐다. ‘독일이 말한다’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급부상 등 사회 분열이 심해지자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첫해 1만2천여명이 참여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만남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새로운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2018년에는 ‘유럽이 말한다’로 발전했다. 올해 6월에는 ‘세계가 말한다’로 확대되어 국적과 생각이 다른 전 세계 116개국 출신 5100명이 신청해, 3084명이 온라인 대화를 나누었다.

디 차이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위해 신뢰받는 독일의 슈피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쥐트 도이체 차이퉁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또 ‘세계가 말한다’에는 전 세계의 여러 언론사가 함께 하는데, 한국에서는 한겨레가 협력사이다.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는 ‘독일이 말한다’의 책임자인 요헨 베그너 디 차이트 온라인 편집장이 줌으로 참여한다.

‘한국의 대화’를 공동 주관한 빠띠는 비영리 플랫폼 협동조합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시민의 집단지성과 행동을 촉진하고 신뢰와 협력의 사회적 경험을 축적하며 다양성, 포용, 신뢰, 협력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한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1100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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