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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알고리즘과 양극화 논란
2021년 1월 대선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2022년 재선에 실패한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도 대선 불복을 외쳤는데, 두 사건 모두 극단주의 세력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이용해 혼란을 부추켰다고 평가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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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콘텐츠 알고리즘을 바꾸며 온라인 양극화에 기여했다.”


2021년 페이스북의 전직 제품 관리자 프랜시스 하우겐의 내부고발 이후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정치 분열과 양극화를 촉발한다고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이와 배치되는 연구 결과가 실려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좋아요’를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이며 편향적인 콘텐츠를 추천해온 기존 알고리즘을 변경해, 상대 진영의 이야기 등 다양한 콘텐츠를 노출해도 이용자의 정치적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취해온 빅테크 기업들이 분열과 양극화 심화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될까?

■ 알고리즘과 정치적 태도

논란이 된 연구는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의 연구진과 학계 전문가들로 이뤄진 연구팀이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양극화에 미치는 효과를 실험한 결과다. 미국 대선이 진행되던 2020년 8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페이스북이 채택한 알고리즘, 즉 이용자의 취향·성향·행동 등을 판단해 자동으로 편향적인 게시글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대신 시간순으로 정렬된 게시글만 무작위로 노출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한 후 정치적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예상을 비껴갔다. 알고리즘이 변경돼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상이한 게시물에 노출될 때도 이용자의 정치적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양극화의 요인 중 하나로 꼽혀온 ‘게시물 공유’ 기능을 제거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 소셜미디어의 사회적 책임

페이스북·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는 이용자의 관심과 시간을 빼앗기 위해 편향적·극단적 정보를 추천하는 방식의 알고리즘을 도입해왔다. 이로 인해 ‘반향실 효과’ 즉, 이념적으로 좁고 자극적인 콘텐츠만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이용자의 확증 편향이 강화되고 정치적 분열도 심각해졌다는 점이 다수의 연구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알고리즘이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빅테크의 오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메타는 소셜미디어가 부상하기 오래전부터 정치적 양극화는 존재했다고 주장해온 터다.

여러 전문가는 이 결과를 놓고 양극화와 관련한 소셜미디어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한다. 이번 연구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짧은 기간 이뤄졌기에 조사 시점에는 이미 정치적 의견을 굳힌 이들이 많았을 개연성도 크다. 연구를 주도한 조슈아 터커 뉴욕대 사회미디어·정치센터 공동 소장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알고리즘은 이용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접하는 것과 경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조사를 통해 지난 10∼15년 동안 소셜미디어가 세상에 미친 변화에 대해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선 직전의 짧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확장해 살펴보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 주의력 착취

<사이언스>에 소개된 연구 결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시간순 알고리즘을 적용해 반대편 주장도 접하도록 했을 때, 기존 알고리즘을 적용했을 때에 견줘 이용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 시간이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빅테크들이 채택한 편향적·자극적 내용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사실상 이용자의 주의력과 시간을 착취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빅테크의 이익은 이용자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보내는 시간과 비례한다. 소셜미디어의 중독성은 매우 강력해 슬롯머신에 비유되기도 한다.

정치적 극단주의와 외로움의 관계를 연구해온 <고립의 시대>의 저자 노리나 허츠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극단주의를 조장하는 증폭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노리나 허츠는 고립감에 주목하는데, 외로울수록 타인을 밀어내고 소셜미디어로 도피하기 쉽다. 자극적·편향적 알고리즘에도 쉽게 빠져들고 음모론에 휘둘리면서 상대편을 적대적으로 인식할 가능성도 크다.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 불복을 외치며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고립감이 커질수록 소셜미디어에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극단적 주장에 쉽게 포획되고, 그 결과 분열과 양극화도 커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이언스>에 실린 결과와 달리, 여러 실증 연구들은 극단적 콘텐츠로 가득 찬 폐쇄적 공간을 깨고 반대편 주장을 들을 때 정치적 분열도 약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 편집장 바스티안 베르브너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필터 버블’을 걷어내고 ‘나와 다른 사람’과 더 많이 접촉할 때 편견이 줄어들고 극단주의도 약화했음을 방대한 사회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더 많은 차이, 이질적인 것과의 접촉이 정치적 분열, 혐오와 편견의 해독제임을 시사한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1103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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