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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인들은 평균 72살까지 일한다. 소득 간 격차도 심각하다. 65살 이상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생계를 위해 노동시장에 뛰어든 노인들은 오래 일하면서도 가난한 노후를 보낸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로 노후 대비에 손 놓고 있다가 연금 등에 의존해 근근이 살아가는 고령자들의 삶에는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의 회색빛 미래가 투영돼 있다. 올해는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격인 55년생이 법정 노인이 되는 해로 새로운 차원의 고령화가 펼쳐질 전망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현실로 다가온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공동으로 노년기 일자리와 소득보장 문제를 비롯해 베이비붐 세대가 ‘신중년 시대’를 어떻게 맞을 것인지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1955년생인 김영익(가명)씨는 2015년 만 60살 나이로 정년퇴직했다. 공기업에서 25년을 근무했고 고심 끝에 지난해 중소 물류회사에 재취업을 했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고도 은퇴 이후 삶이 이렇게 팍팍할 줄은 몰랐다. 자녀 학비를 대고 큰딸아이 결혼자금까지 보태고 나니 남은 건 집 한칸과 은행대출이다. 김씨는 “은퇴한 이듬해 퇴직금과 집 담보로 마련한 3억원으로 고깃집을 열었으나 장사가 안돼 2년 만에 접었다”며 “지금 하는 일마저 없으면 생활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가 속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한국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증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올해부터 이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들에게는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만만찮은 과제가 놓여 있다. 이미 많은 은퇴자들이 생계를 위해 다시 노동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퇴직한 고령자들이 노동시장에 쏟아지고 있지만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단순노무직이 많고 일자리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씨 사정은 나은 편에 속한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임계장)을 다룬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씨는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버스터미널 배차원으로 살면서 겪은 시급 일터들의 팍팍한 현실을 이렇게 말한다. “비정규직 노인 노동은 하루만 아파도 일터를 잃습니다. 노인 노동자는 지원자가 많아서 용역회사들이 이력서를 쌓아두고 있어요. 지금 한 명 잘라도 당장 내일 다른 사람이 옵니다.”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인 비정규직 노인 노동자들에게 산재 처리는 거의 불가능하다. 조씨는 버스 회사 영업부장이 일하다 허리를 다친 ‘임계장’을 해고하며 했던 말을 이렇게 전한다. “당신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니까 해주는 말인데, 버스 회사에서 업무상 재해라는 건 교통사고 하나뿐이야. 당신이 회사 버스에 치였어? 아니지? 당신이 한눈팔고 일하다 다친 거지? 그래 놓고 회사에 책임을 떠밀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산재를 당한 60대 이상 노인은 3만1661명으로 전년보다 3237명(11.4%)이나 늘었다. 같은 기간 산재로 사망한 60대 이상 노인은 827명이었다. 전체 연령을 통틀어 1위다. 정년을 넘긴 나이에 이렇게 많은 노인들이 노동 현장에서 다치고 숨지는 것은 은퇴기를 넘어서도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할 뿐 아니라 젊은 시절보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고령자들의 노동시장 재진입은 노후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탓이 가장 크다. 그러다 보니 실질 은퇴 연령은 72.1살로 오이시디 회원국(평균 64.3살)에 비해 월등히 높다.

3년마다 진행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 실태조사’(2017년 기준)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65살 이상 노인 비중은 30.9%로 나타났다. 2014년 28.9%보다 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마땅한 소득이 없고 노후 준비가 미흡하다 보니 경제활동인구가 아닌데도 노인 3명 중 1명꼴로 일터를 맴도는 실정이다. 노인들은 주로 생계비 마련(73.0%)을 위해 일을 했고 경비·청소·간병·돌봄 같은 단순노무직(40.1%)이 가장 많았다. 이들 대부분이 단시간 근로자인데다 산재를 당해도 젊은 사람보다 인정받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고 해서 생긴 신조어 ‘고다자’나 ‘임계장’에는 노인들이 처한 각박한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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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일자리는 소득보전과 함께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나이 든 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 일자리는 자기효능감과 자아존중감 같은 심리적·정서적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타인과의 교류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가장 큰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강익구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은 “국가 정책이 북유럽 같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노인들에게 소득 보충을 위한 일자리는 여전히 중요하다”며 “관건은 정책적으로 이를 어떻게 뒷받침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미성숙된 사회복지 환경에서 노인들에게 기왕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양질의 일자리로 소득보전은 물론 삶의 활력을 주어 노후 생활을 인간답게 영위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2004년 닻을 올린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은 이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재정으로 노인들에게 용돈을 쥐여주는 게 아니냐’는 실효성 논란이 일부 제기되지만, 수요와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양적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정년이 빠른 우리나라 실정을 고려할 때 노인 일자리 사업은 소득보전과 사회 참여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고령층 인구 증가와 신체능력 향상으로 노동 공급이 증가하고 있지만, 기업의 고용 기피로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며 “고령자 노동시장 확대를 위한 여건 조성과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 일자리는 2005년 3만5천개에서 시작해 지난해 63만개, 올해 74만개(8월 현재)로 늘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공급 규모를 단계적으로 늘려 2022년까지 80만개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노인 일자리 사업의 문제점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하고 싶은 노인은 많은데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와 함께 2035년 노인 일자리 수요는 158만개에 이를 전망이다. 양적 팽창에 조응할 만큼 질적 개선을 이뤄낼지도 관건이다. 노인 일자리를 좀더 다양화하고 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다운 일자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노인 빈곤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은 노인들이 처한 삶의 복잡한 현실을 말해준다. 2004년 활동비 월 20만원으로 시작한 노인 일자리 사업은 박근혜 정부 때 22만원으로 올렸고, 문재인 정부 들어 월 27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경제활동 참여를 희망하는 노인의 희망근로소득이 평균 73만2천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노동의 의미와 역할을 재설정해 소득 수준을 현실화하고 부양의 대상으로서의 노인이 아닌 삶의 주체로서의 고령 세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동에 치여 사는 게 아니라 퇴직 뒤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재사회화 과정으로 연착륙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은영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기존 연구결과는 빈곤 진입과 탈출에 은퇴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함을 보여준다”며 “은퇴 노인의 재취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요소를 중심으로 건강과 성별·지역·연령별로 맞춤화된 고용·복지 정책을 마련하고 공공일자리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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