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장관실에서 이창곤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세종 /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다. 그 역사적 임무는 엄중하고 자명하다. ‘기울어진 민주주의’를 곧추세우되 궁극에는 그 안에 사는 국민의 삶을 바꿔야 한다. 5월이면 출범 만 2년에 이르는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이게 나라냐”는 촛불의 외침에 어떻게 응답해왔는지 대답할 때가 됐다.
국민의 삶과 가장 직결되는 정책은 보건복지 분야다. 지난 2년간 여러 정책이 도입됐고, 추진됐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치매국가책임제, 아동수당, 기초연금 인상 및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완화 등이 속속 실행됐다. 이들 정책이 헐겁고 부실한 국민의 집을 조금은 더 튼실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보편적 삶이 뚜렷이 나아지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좀체 개선되지 않고, 노후와 빈곤, 실직과 간병 등 일상에서 직면하는 삶의 불안 또한 획기적으로 해소되고 있지 않다. ‘포용국가’라면 가장 먼저 끌어안아야 할 최저소득층은 소득이 되레 줄었다. 문재인 정부 복지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박 장관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복지 확충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소득 분배 악화 등 대책과 관련해 “내년도 수립하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겠다”고 밝혔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극빈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아들과 딸 등 부양의무자가 소득·재산이 있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계 및 의료급여 등을 받을 수 없도록 한다. 이 때문에 이 기준은 극도로 가난한데도 정부 지원을 못 받는 이른바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하는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래 중증 장애인 및 노인 등 일부 가구에 이 기준을 폐지 또는 완화하는 조처를 단계적으로 취해왔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 기준의 ‘전면 폐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장관과의 인터뷰는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장관실에서 1차로 이뤄졌으며, 15일 서면 질의를 통해 추가로 진행했다.
- 오는 5월이면 문재인 정부 출범 만 2년을 맞아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스스로 성과에 학점을 매겨본다면?
▶ “원래 학점을 후하게 준다. 에스플러스(S+) 있습니까?(웃음) 에이(A)는 되는 것 같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도 같은 물음에 A라고 답했다) 복지부는 정부 업무평가에서도 지난 2년 연속해서 우수 부처로 선정됐다. 물론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는 걸 잘 안다.”
- 그렇게 자부할 수 있나? 어떤 정책이 그러한가?
▶ “보건 분야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꼽고 싶다. 치매국가책임제도 그렇게 반향이 클 줄 몰랐다. 올 연말엔 전국 256개 지방자치단체 모든 곳에 치매안심센터가 갖춰질 것이다.”
- 아쉽고 미흡한 정책도 있을 것이다.
▶ “스마트 진료(원격진료)다. 이게 ‘누가 필요하다’라는 게 아닌, 보수와 진보로 나뉜 이념 싸움이 되었다. 진보에서는 막연한 공포 속에서 무조건 저지하려 했고, 보수에서는 떼돈 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찬성했다. 이 싸움이 끼칠 여파가 두려우니 공무원도 (정책을) 진척시키지 않는다.”
- 인식의 간극이 큰 것 같다. 복지 분야는 어떤가?
▶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완화 정책이 있다. 또 현장을 다니면서 착안해 장관 과업으로 직접 내세운 커뮤니티 케어(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이 살던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도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호응이 높다. 이는 앞으로 우리나라 돌봄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데 중심 제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도입 등도 언급할 만하겠다. 장관은 일찍이 포용적 복지를 천명했다. 지금 정부의 미래 비전 또한 혁신적 포용국가 아닌가. 문제는 이런 조처들이 국민 삶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얼마나 이뤘는가다. 이 점에서 보면 의문이 많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동향조사 결과, 최저소득층(소득으로 전체를 10분위로 나눴을 때 1~2분위에 분포하는 계층)의 소득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오지 않았는가.
▶ “하나의 정책을 시행했을 때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차가 있다.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소득 분배 전공자로 볼 때,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분석한 ‘2018년 가계동향조사’ 결과(미발표 자료)를 보니, 그해 네 분기 동안 1분위층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던 이들은 (1분위) 전체의 70%였다. 이들 70%는 소득 변화가 거의 없이 1분위에 계속 있었다. 나머지 30%가 과거보다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의 진폭이 커 불안정을 보이면서 (2~3분위 계층 등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이 둘을 합해서 살피니 외형적으로는 전년도보다 소득이 감소한 거로 나타난 것이다. 사실 1분위의 70%는 기초연금 등 정부에서 지급하는 공적 이전소득이 더 늘었다. 이것이 해당 계층의 빈곤을 메우는 등 긍정적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쯤 다시 측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실직 등으로 인한 신중년층(50~64살)의 소득 감소가 최근 1분위 소득 악화의 새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총근로자 수가 줄지 않았고, 최저임금으로 근로자들의 임금이 높아졌기에 전반적 소득 분배는 더 나빠질 수가 없다. 올 2~3분기에 결과를 보면 알 것이다.”
-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아무튼 청와대에서 이달께 소득 분배 악화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 “각 부처에서 아이디어를 짜고 있으니 조만간 발표할 것이다. 복지부는 주로 공공부조 대책과 저소득층 일자리 대책이다. 당장 이달부터 (저소득 하위 20% 계층에 한해) 기초연금이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오르지 않았는가. 그 위에 있는 계층(소득 분위 하위 40% 계층)까지 3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조기 시행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기초연금 받다가 생계급여를 받을 때 고스란히 삭감돼 수령하는 이른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논란이 됐다. 이제는 답을 내야 하는 게 아닌가?
▶ “삭감된 전액을 되돌려 주지는 못하더라도 5만원이라도 지급하는 방안을 시행하려고 한다. 청와대는 찬성하는데 재정당국이 예산 문제로 난색을 보인다.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 형평성 차원에서는 (빈곤하지만 정부의 공적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빈곤층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먼저 없애고 이런 조처를 하는 게 순서다.”
- 포용국가라면 취약계층 보호는 기본적이어야 하는 만큼 더 체감도 높고 과감한 정책이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닌가?
▶ “내년도에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3년)을 짠다. 3개년에 한번 짜는 이 계획에 과감한 안을 넣겠다. 부양의무자 조건을 더 빠른 속도로 완화하고, 내년도에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이 계획의 로드맵에 부양의무자 기준의 전면 폐지를 담겠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지 않은가. 자기 부모를 안 돌보는 게 현실인데, 그것을 우리가 자꾸 묵과하고 자녀가 돌봐라, 형제가 돌봐라 얘기하는 건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연도별 기초보장수급자 수 (단위: 만명 ) 자료: 허선 순천향대 교수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으려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자가 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한 자격 기준 중 하나다. 신청자에게 아들이나 딸 등 부양의무자(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능력 즉 소득이 없음을 증명해야 지원받을 수 있는 일종의 조건이다. 송파 세 모녀, 2012년 거제시청에서 음독자살한 할머니 등 수많은 극빈층을 국가 보호로부터 배제하도록 한 ‘복지사각지대의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그동안 빈곤사회연대 등 진보 복지단체들이 줄기차게 ‘전면 폐지’를 주창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 그 적용 기준이 지속해서 완화돼왔다. 복지부는 전면 폐지에 따른 예산 소요액을 대략 4조원 안팎으로 추산한다.
- 문재인 정부에서 미흡했던 정책 중 하나가 신중년층(50~64살)에 대한 대책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