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여 시민들 참여 속에 성공회대서 열려
그가 떠난 자리 아쉬워하며 삶 되돌아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동시대의 삶과 다음 세대의 삶에도
오래도록 선생님이 함께 계시도록
좋은 관계, 훌륭한 관계 일구어가겠다”

박원순 서울시장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더불어숲의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선생님 꿈꾸셨던 사회 만들어갈 것”

푸른숲도서관 착공, 신영복 인문학 강좌 예정
8월 안에 생애와 사상 정리한 평전 출간도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은 신영복 선생(1941~2016)의 3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200여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2016년 1월15일 2년여에 걸친 암 투병 끝에 신영복 선생의 75년 생은 마감됐지만, 그의 책과 강연, 인간적인 만남 속에서 깨달음과 위로를 얻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3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추도식 1부는 성공회대 교목실장 김은규 신부가 별세 기도를 집례했고, 2부에서는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신영복 선생을 기억하는 추모행사가 이어졌다.

추도사 낭독에 나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변화시켜 신영복 선생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다고 말했다. 신영복 선생은 한 개인의 변화는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변화를 통해 완성된다고 말해왔다. 유시민 이사장은 “더 많은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다음 세대의 삶에도 오래도록 선생님이 함께 계실 수 있도록 저 자신부터 좋은 관계, 훌륭한 관계를 일구어가겠다 다짐한다”며 진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 신영복 <담론> 중에서

15일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에서 열린 신영복 선생 3주기 추모식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15일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에서 열린 신영복 선생 3주기 추모식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그리고 감옥 이후 20년이라는 3개의 20년 하나하나 모두 ‘대학’이었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는 세 번째 대학인 성공회대를 ‘주류 사회의 환상이나 냉전 논리로부터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간적인 공간’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신영복 선생의 3주기 추도식을 주최한 성공회대 김기석 총장은 “성공회대학교는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지만, 권력에 의해 추방당한 지식인들을 모실 수 있었던 품이 너른 대학이었다”며 “신영복 선생님께서 몸담으셨던 이 학교를 기억하고 살려나가는 일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써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 신영복 <강의>에서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의 첫발은 2000년 3월 신영복 선생이 ‘대학을 거점으로 한 노동교육 기관’ 설립을 주도하면서 ‘노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노동대학 1기 졸업생인 류방상 노동아카데미 제자는 추도사에서 “선생님은 노동자들에게 하방연대(下方連帶)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며 “바다처럼 노동자들을 품어주셨던 선생님이 그립다”고 회고했다. 신영복 선생은 취약한 역량을 소통시키고 조직화하기 위해선 강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 ‘하방연대’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은 추도사에서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각자의 영역에서 신영복 선생의 뜻을 실천할 것”이라며 “서울 교육의 방향으로 ‘더불어숲’의 관점을 표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한경쟁, 각자도생,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와 교육 현장 속에서 ‘더불어숲’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합니다. 교육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더불어숲이 되는 어울림의 과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5일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에서 열린 신영복 선생 3주기 추모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15일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에서 열린 신영복 선생 3주기 추모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마지막 추도사를 위해 단상에 선 박원순 서울시장은 “절망과 역경이 깊어질수록 우리 시대의 실상을 대면하고, 사회의 뿌리를 튼튼히 해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다”며 “더불어숲의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선생님이 꿈꾸셨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 신영복 <담론>에서

추도식의 마지막 순서로 신영복 선생의 삶과 뜻을 기리는 사업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경과보고도 있었다. 경과보고에 나선 김창남 사단법인 더불어숲 이사장은 “성공회대학교와 일부 주민들의 제안으로 가칭 항동 푸른숲도서관(신영복기념도서관)이 착공을 앞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성공회대학교는 아모레퍼시픽의 후원으로 선생의 저서를 외국어로 번역·출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컬로퀴엄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뒤편으로 이어진 ‘더불어숲길’ 초입엔 신영복 선생을 추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뒤편으로 이어진 ‘더불어숲길’ 초입엔 신영복 선생을 추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사단법인 더불어숲은 청소년 인문학 교재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난해 시범교육을 진행했으며, 올해엔 교사들을 위한 신영복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신영복 선생과 인연을 맺었던 사회 각계 인사들의 구술 기록을 정리하는 아카이브 사업도 진행 중이다.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하는 평전 작업은 늦어도 8월 안에 출간될 예정이다. 김창남 이사장은 “3주기를 기점으로 내년부터 1월이 아닌, 5월 스승의 날에 맞춰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선생님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약력】

고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사건에 연루돼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청구회 추억>,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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