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군산·통영 등 제조업 위기 직격탄
대기업이 먹여 살리던 시대 옛말

지역주민 직접 참여하는 경제활동
산자부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대구 ‘안심팩토리’ 28일 문열어
3개 사회적경제 기업 힘합쳐
군산도 사회적경제 네트워크 발족
충북 ‘두꺼비하우징’ 등
사회적경제 17곳에 새로운 활로
지난 6일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위치한 먹거리 사회적경제 기업 공동생산시설 ‘안심팩토리’에서 직원들이 28일 열릴 개소식을 앞두고 주방 설비를 확인하고 있다.  커뮤니티와 경제 제공
지난 6일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위치한 먹거리 사회적경제 기업 공동생산시설 ‘안심팩토리’에서 직원들이 28일 열릴 개소식을 앞두고 주방 설비를 확인하고 있다. 커뮤니티와 경제 제공

대구시 동구 도동에 자리잡은 한 사무실. 지난 6일, 50평 남짓한 이곳은 부지런히 짐을 나르는 사람들로 온종일 분주했다. 대형 주방용 설비가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한쪽에선 반짝반짝 빛나는 설비를 꼼꼼히 살피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저마다 얼굴엔 기대와 설렘 가득한 표정이 묻어났다. 이곳은 오는 28일 문을 여는 ‘안심팩토리’. 대구에 터전을 삼은 먹거리 사회적경제 기업 세곳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장소다. 정식 운영은 내년 1월 시작할 예정이다.

안심팩토리로 뭉친 업체 가운데 하나가 결식아동을 돕는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다. 자연·바른·안심을 모토로 내건 동행의 출발은 8년 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시는 2005년부터 지역 내 결식아동들에게 한 끼에 3천원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종이쿠폰(2011년부터 카드로 대체)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아픈 사연이 끊이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들은 쿠폰을 들고 식당에 가기를 꺼려 매번 질이 매우 낮은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쿠폰을 모아 술안주용으로 사용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시민 몇몇이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에게 영양가 높은 한 끼 밥을 싼 가격에, 그리고 눈치 보지 않고 먹이자고 손잡은 게 동행의 시작이다. 이밖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및 저소득 주민들이 꾸린 자활기업 ㈜서구웰푸드, 친환경 먹거리 사업체인 강북희망협동조합 등도 안심팩토리로 자연스레 뭉치게 됐다.

■ 사회적경제 성장의 ‘디딤돌’ 그간 지역을 터전 삼아 열심히 활동해온 이 먹거리 업체들은 저마다 적잖은 고민을 갖고 있었다. 사업 규모가 작다 보니 수익은 보잘것없고 안정성은 떨어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학교급식이나 예비군 도시락 같은 공공급식 시장 진출은 꿈꾸기 힘들었다. 별도 폐기물 시설이나 냉동·냉장 설비 등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해썹) 인증 기준을 채우지 못한 탓이다. 강현구 동행 대표는 “지역 내에서 밥을 굶는 취약계층 가구에 밑반찬을 제공해 드리는 사업도 펼치고 있는데, 지역사회에 좀더 안정적으로 도움을 드리려면 규모를 조금 키워야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북지역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사업에 참여한 업체 직원들이 태양광 설비 유지관리 방법을 교육받고 있는 모습. 사람과경제 제공
충북지역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사업에 참여한 업체 직원들이 태양광 설비 유지관리 방법을 교육받고 있는 모습. 사람과경제 제공
안심팩토리 탄생 과정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사업’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란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경제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산업부가 올해 처음으로 추진한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사업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사회적경제 기업의 성장(scale-up)을 위해 기술혁신과 사업화 역량을 지원하는 데 그 목적을 뒀다.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경제 육성이 필요한 분야를 선정하고, 지역혁신기관과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이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회적경제 기업을 지원하는 구조다. 선정된 프로젝트에는 연간 연구개발 분야 3억5천만원, 비연구개발 분야 5억4천만원까지 지원해준다. 첫해인 올해 1차로 97억원의 예산을 들여 25개 업체를 지원한 데 이어, 현재 내년도 2차 사업지원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덩치 큰 산업을 관장하던 산업부는 왜 100억 남짓한 규모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원에 나섰을까? 지역경제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풀 새로운 해법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서다. 올해 초 한국지엠(GM)이 공장 폐쇄 결정을 내린 전북 군산은 지역경제가 맞닥뜨린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군산엔 지엠 협력사가 136곳, 관련업체 종사자만 1만7천명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으로 군산 취업자 수는 약 12만3천명. 지역에 공장을 둔 대기업의 부침에 따라 지역경제 전체의 운명이 좌우되는 경험은 거제·통영(조선업) 역시 마찬가지다.

■ “지역 살릴 잠재적 산업군으로 봤다” 그간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선 대기업 공장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다. 이른바 앵커기업(주축기업)이 지역 일자리 창출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건 숨길 수 없다. 하지만 대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이 지역으로 온전히 흘러들지 못하는데다가, 국내 주력산업들이 잇달아 위기를 겪는 현실은 최소한의 ‘위험 분산’을 위해서라도 지역경제의 자생력을 높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 조정락 전라북도경제통상진흥원 자치경제팀장은 “원래 군산은 대기업이 먹여 살리던 잘사는 지역이라 솔직히 사회적경제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최근 몇년 사이 위기를 겪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산에선 올해 사회적경제 네트워크가 발족된 데 이어 사회적경제 혁신파크 설립도 추진 중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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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를 비롯해 정부가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힘을 보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사업 초기 업무를 맡았던 정경록 산업부 세계무역기구과장은 “산업부는 단순히 산업만 육성한다기보다 지역 발전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라며 “사회적경제를 지역사회를 살릴 하나의 잠재적 산업군으로 봤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사례는 전국 곳곳에 있다. 충북의 경우엔 태양광 유지·보수 관련 분야에 사회적경제 기업이 진출하는 마중물 노릇을 했다. ‘두꺼비하우징’ 등 취약계층에게 청소나 집수리 일자리를 마련해준 사회적경제 기업 17곳에 새로운 활로가 열린 것이다. 환경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의 속성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충북지역 경로당 4071곳 중 약 3000곳에 태양광 시설이 설치되어 있음에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실정이라 시장성도 충분했다. 산업부의 지원은 전기기능사 자격증 취득이나 유지·보수 기술 습득에 큰 도움이 됐다. 사회적경제 기업에 적합한 미니 태양광 설비 기술도 개발됐고, 현재 공동브랜드 개발을 위한 시장조사가 한창이다. 충북지역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을 이끈 하재찬 ‘사람과경제’ 상임이사는 “공동브랜드 개발이 완성되면 공공시장 진출이 가능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난달 28일 한국가스공사와 대구광역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좋은 일자리 창출 및 사회적 가치 실현 업무협약’을 맺는 모습. 왼쪽부터 정광재 한국가스공사 경영협력처 상생협력부 차장, 성동현 커뮤니티와 경제 선임연구원, 김재경 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임창수 한국가스공사 경영협력처장, 임종순 한국가스공사 경영협력처 상생협력부장, 박진영 커뮤니티와 경제 총괄실장. 커뮤니티와 경제 제공
지난달 28일 한국가스공사와 대구광역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좋은 일자리 창출 및 사회적 가치 실현 업무협약’을 맺는 모습. 왼쪽부터 정광재 한국가스공사 경영협력처 상생협력부 차장, 성동현 커뮤니티와 경제 선임연구원, 김재경 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임창수 한국가스공사 경영협력처장, 임종순 한국가스공사 경영협력처 상생협력부장, 박진영 커뮤니티와 경제 총괄실장. 커뮤니티와 경제 제공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협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는다.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역의 민간 및 공공 기관이 머리를 맞대는 소중한 체험의 기회를 늘린 까닭이다. 김재경 ‘커뮤니티와 경제’ 소장은 “정부가 사업을 정하고 내리꽂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지역 현장에 잘 맞는 사업을 찾아낼 수 있었다”며 “사회적경제에 대한 협력과 이해도가 높아진 게 성과”라고 지적했다.

■ “단기간에 성과 집착 말아야”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현장에서도 ‘멀리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정락 팀장은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지역사회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 집착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도 확실한 의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강조한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역경제의 과실이 다시 지역에 돌아가는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지역의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공생하며 살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단지 연구력을 가진 집단이 기술을 제공하고 시설과 장비를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서 관계망을 형성하고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사회혁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기업연구단 연구위원은 “연구개발 영역이 사회적경제 기업의 사업을 고도화시키면서 지역의 현안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장기적으로 산업정책과 연구개발 분야 정책을 흔드는 새로운 혁신 모델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구/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커뮤니티 비즈니스란?

‘커뮤니티 비즈니스’(CB)란 ‘지역의 문제를 비즈니스를 활용해 해결하고 그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사업’으로 정의된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제활동을 통해 지역의 과제들을 해결해가는 접근방식을 일컫는 말로,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 공동체의 재생과 지역경제의 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 대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중앙정부나 대기업에만 의존해온 지역개발 방식을 벗어나, 지역 안에서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고 이익이 지역으로 환원되도록 연결하자는 취지다. 자립과 돈의 순환을 촉진하면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 기업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떠받치는 버팀목이다.

다만,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올해 처음 시행된 산업통상자원부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사업’은 소규모 영세기업의 한계를 경쟁이 아닌 협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도록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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