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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 자극한 하이콘셉트 마케팅은 성공했지만 결국 문제는 ‘맛’

이주의 용어
하이콘셉트 마케팅(high-concept marketing)

‘콜라독립 815’를 기억하시는지. 코카와 펩시에 맞서 토종 콜라를 일으켜세우겠다며 범양식품이 내놓았던 브랜드다. 붉은 콜라캔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광고에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구호가 넘실댔었다. 그게 콜라독립 815의 애국 마케팅이었다.

콜라독립 815가 처음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8년, 이 나라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란이라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한파를 여전히 겪고 있던 와중이었다. 전 국민이 나라를 살리겠다며 장롱 속의 금붙이를 꺼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던 비장한 시절이었다.

그때 전국을 휩쓸던 뜨거운 애국심의 열기에 기가 죽어 감히 내놓지 못한 마음속의 한마디가 있다. 콜라독립의 열기가 이미 시장의 찬바람 앞에 움츠러들고 만 지금에서야 그 한마디를 조심스레 꺼내놓아 본다. “사람이 콜라를 마시는 이유는 ‘콜라 맛’ 때문인데, 왜 맛 이야기는 아무 데서도 하지 않는 거죠?”


카드에도 태극기가 펄럭여
대답은 콜라독립 815의 마케팅 전략에 있었다. 콜라독립 815는 애국을 내용으로 한 ‘하이콘셉트 마케팅’(high-concept marketing) 전략을 채택했던 것이다.
하이콘셉트 마케팅이란 제품의 내용보다는 의미를 중시하는 마케팅이다. 어떤 제품이 품질과 기능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리는 게 고전적인 ‘로콘셉트 마케팅’(low-concept marketing)이라면, 하이콘셉트 마케팅에서는 이 제품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제품의 의미를 이야기해주면서 고객의 마음을 끄는 것이다. 좌뇌보다 우뇌를 중시하는 마케팅이기도 하다.

‘하이콘셉트’라는 개념은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대니얼 핑크는 미래가 디자인, 조화, 공감, 놀이, 스토리, 의미가 중시되는 하이콘셉트 시대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실보다 이미지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는 시대가 다가온다는 얘기다. 하이콘셉트 마케팅은 이런 하이콘셉트 시대에 맞는 미래형 마케팅 전략으로 일컬어진다.

생각해 보면 콜라독립 815만 애국심에 호소한 마케팅을 펼쳤던 것은 아니다. 바로 최근까지의 LG카드 광고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LG카드는 “1천만이 사용하는 대한민국 대표선수”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신용카드의 쓰임새는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같은 곳에서 소비를 할 때 할인이 얼마나 되고, 할부가 얼마나 되고, 포인트제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등이다. “대한민국 대표선수”라는 말 속에는 이 중 어떤 항목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지 않다. 그저 이 카드를 써야 대한민국의 일원이라는 식의 이미지만 전달된다. 이게 하이콘셉트 마케팅이다.
2006년 하나카드에서 내놓은 ‘대한민국 카드’에도 태극기가 펄럭인다. 월드컵, 독도 문제, 동북공정 등으로 국토와 국가에 대한 국민적 사랑이 뜨거워진 분위기를 시의적절하게 이용한 국기 마케팅이었다. 역시 하이콘셉트 마케팅이다.

콜라시장 14%까지 점유했었지만
애국 마케팅도 그렇지만, 기업 마케팅도 역시 하이콘셉트 마케팅이다. 상품 마케팅은 그 상품의 구체적 내용, 즉 쓰임새를 알려 소비자에게 소구한다. 이건 로콘셉트 마케팅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상품은 베일 뒤로 숨고 기업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현대캐피탈의 최근 신용카드 마케팅 전략이 대표적인 기업 마케팅이다. 예를 들어 ‘놀라운 이야기’ 편을 보면, 카드가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이 무엇인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현대캐피탈이 튼튼한 회사”라는 메시지만 가득하다. 삼성 계열사에서 종종 사용하던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슬로건도 대표적인 기업 마케팅 전략이다.
애국 마케팅은 “애국한다면 믿고 사라”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던진다. 기업 마케팅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 기업을 신뢰한다면 믿고 사라”는 메시지로 소비자에게 소구한다.

사실 애국 마케팅에서 애용되는 브랜드인 태극기는 한국 기업에는 아주 중요하고 유용한 브랜드 자산이다.

브랜드의 가치를 측정할 때 브랜드 인지도와 브랜드 호감도를 같이 따진다. 태극기는 전 국민이 알아볼 테니 인지도 면에서 거의 100%이고, 호감도 면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일 것이다. 태극기는 문화관광부가 2006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족문화의 상징물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여기서 자연스레 드는 한 가지 의문. 그렇게 좋은 브랜드를 선택하고, 미래형 마케팅 전략을 채택한 콜라독립 815는 왜 결국 사라지고 말았을까?
한때 콜라독립 815의 콜라시장 점유율을 14%까지 끌어올렸던 범양식품은 결국 2005년 파산하고 말았다. 이는 가치에 호소하는 하이콘셉트 마케팅이 성공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아닐까? 결국 콜라의 ‘독립’이 무산된 이유는, 그야말로 기본으로 돌아가서, 그 콜라의 ‘맛’에서 찾아봐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한겨레21 2007/03/22 6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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