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화두로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과학과 진실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반지성주의 현상이 심각하다는 데는 폭넓은 공감이 있다.

분서갱유, 종교재판, 정치범 처형 등 역사엔 반지성적 상흔이 가득하지만 본격적으로 반지성주의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시대는 민주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가 보편적으로 수용된 근대 이후다. 나치 독일, 스탈린주의, 중국의 문화혁명, 미국의 매카시즘, 유신독재의 긴급조치 등이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 치료법으로 소독제 인체 주사를 검토해보자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나 과학적 근거를 배격하며 백신 거부 운동을 벌이는 유명인들도 마찬가지다.

현대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처럼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로 불린다. 시민들의 교육 기간이 늘어나고 정보의 진위를 즉각 확인할 수 있는 환경에서 왜 탈진실과 반지성의 흐름이 거세진 것일까. 정보기술 환경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전문가와 강적들>의 저자 톰 니컬스는 인터넷 환경에서 사람들은 “나도 너만큼 알아”라며 전문가를 무시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은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지니게 됐다”고 말한다. 뉴욕대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사실이 우리 가치와 충돌할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며 인터넷을 배경으로 지목한다.

윤 대통령이 반지성주의 해법으로 제시한 과학과 진실은 그 구체적 방법이 관건이다. 진실은 힘과 선전이 아니라 충분한 투명성이 제공될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과학은 논문 공개, 동료 평가를 통한 공개 비판과 검증을 핵심 도구로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일 뿐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진정 과학과 진실을 통한 반지성주의 극복을 바란다면, 더 많은 투명성을 제공하고 검증과 비판 수용적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430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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