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신협, 사회적 경제 지원해야

HERI 2022. 02. 03
조회수 1121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자조와 협력으로 전후 어려움 극복한 신협
세계 4위 협동조합 금융기관으로 성장했지만
민간 금융사 운영 방식 따르며 정체성 잃어

사회적 경제 특화 금융 체계 만들어
정부 정책자금에 의존 않도록 해야
지난해 열린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참여한 신협의 홍보 부스. 신협 제공
지난해 열린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참여한 신협의 홍보 부스. 신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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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크고 깊었다. 당시 남북한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6백만명이 죽거나 다쳤고 도로, 교통,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미국이 원조 방식을 무상에서 유상으로 바꾸면서 한국경제는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총 실업률은 34%에 달했다. 실업자 수가 200만명을 넘었지만,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그 시절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자조와 협동을 바탕으로 한 신용조합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사회 전반에 극심한 생활고와 불신 풍조가 만연하던 때였다. 신용조합이라니, 무엇을 믿고 돈을 맡긴단 말인가. 실패를 예견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신협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조합원들의 자율 의지와 상호신뢰가 바탕이 된 순수 민간운동이 민들레처럼 전국에 포자를 퍼뜨린 것이다.


창립 50주년이 되던 2010년. 신협은 조합원 수 558만명, 자산 규모 47조7000억원의 세계 4위 협동조합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민간의 자생적 금융협동조합으로 출발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소상공인과 서민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많은 이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룩한 값진 성과다.

어려움도 많았다. 신협의 이념과 운영기법을 복제한 새마을금고의 등장(1963년), 신협법 제정(1972년)을 둘러싼 진영 간 갈등, 일부 조합의 회계사고로 인한 이미지 추락, IMF 위기로 인한 다수 조합의 퇴출, 시중 은행들의 가계금융 진출로 인한 시장 침식 등 그간 내·외부에서 많은 시련과 도전을 겪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안전한 금융기관으로 평가를 받으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신협은 예금, 대출, 보험 등 금융상품을 취급한다는 점에서는 일반 금융회사와 다르지 않지만, 설립 목적이나 운영 원리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신협의 주인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며, 주민들이 낸 예금은 조합원들의 지위 향상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사용된다. 관계 금융을 통해 힘든 이웃의 자립을 돕고 주민과 지역이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존재 목적이다.

의사결정 방식도 ‘1인 1표’가 원칙이다. 돈을 많이 내건 적게 내건 공평하게 한 표의 권리를 갖는다. 오직 수익만을 좇고 지배주주가 결정권을 갖는 상업은행과는 성격이 다르다. ‘1명의 부자보다 100명이 잘사는 공동체 금융’을 추구한다. 자본이익에 충실한 민간 금융회사가 지배하고 있는 시장금융 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과 원리를 지향한다.

하지만 신협 본연의 신용사업보다 투자를 통한 고수익 사업에 더 치중하고 있고, 신용보다 담보를 우선시하는 영업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 등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조합원들이 고객화되는 등 인적 유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신협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 영역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경제 기업과 조직을 위한 사회적 금융을 모범적으로 실행해나가야 할 책임도 크다. 정부의 사회적 금융 활성화 정책(2018년) 추진에도, 사회적 기업은 ‘배당 제한’을 문제 삼아 투자를 기피하고 있고, 협동조합의 조합원 출자비는 부채로 간주, 융자 부적격 판정을 받는 실정이다. 역량이 검증된 사회적 경제 기업조차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다.

시장금융의 작동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 영역에 특화된 금융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조직 특성과 사업목적에 부합하는 맞춤형 금융을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일을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는 기관이 신협이다. 왜 신협일까. 협동조합 금융기관이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를 보자. 데잘뎅(Dejardin) 신협과 벤시티(Vancity) 신협 등 사회적 경제를 돕는 대표적인 금융회사들은 모두 신용협동조합이다. 우리는 어떤가.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신협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 뿐, 대다수는 일반 금융회사와 큰 차이가 없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형제들이 돕지 않는데,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 조직은 약 3만여 개로 추정된다. 새로 신설되는 사회적 경제 기업 수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전국의 사회적 경제 기업과 조직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가족들까지 더한다면 상당한 규모다. 이들이 맡긴 예금을 바탕으로 사회적 경제 기업에 투·융자를 한다면 정부 정책자금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아도 돈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의 힘은 연대와 협력에서 나온다. 한 덩어리로 뭉치는 것이 연대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힘을 합하는 것이 협력이다. 박제화된 구호가 아닌 현실에서 작동하는 힘을 만들어내려면 먼저 손을 맞잡아야 한다. 작은 차이를 내려놓고 큰 미래를 향해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신협이 걸어온 역사 안에 그 정신과 가치가 오롯이 배어있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


한겨레에서 보기 : 신협, 사회적 경제 지원해야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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