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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케이(SK)에서는 지난 10월 말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이오(CEO) 세미나가 끝난 뒤 격론이 벌어졌다. 최태원 회장이 폐막 연설에 ‘2030년 기준 전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 210억톤 가운데 1%인 2억톤을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넣으려 하자, 일부 경영진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막아선 것이다. 결국 최 회장의 의지가 관철됐다.

최태원 회장은 상의 회장으로서 회원사의 탄소 감축 부담을 걱정하면서도, 기업이 가야 할 이에스지(ESG) 경영 방향은 분명하게 말한다. 10월 초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간담회에서도 “탄소 감축은 회피하고 낮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총·전경련이 정부의 탄소 감축 계획에 반대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러다 보니 “에스케이 혼자 잘났냐”는 보이지 않는 견제가 많지만, 최 회장은 뚝심을 보인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2050년 탄소중립’ 시점을 못박지 못하고 진통을 겪자, 보수언론은 일제히 문재인 정부를 ‘탄소 감축 과속’이라고 공격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정부안을 맹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미 중인 최태원 회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고, 이 중 절반을 친환경 분야에 집중해 미국의 탄소 감축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장의 탈탄소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확신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 예로 유럽연합(EU)은 2023년부터 탄소를 기준치 이상으로 배출한 제품에 매기는 ‘탄소 국경세’를 도입한다. 애플과 구글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을 100% 사용하는 ‘RE 100’을 선언한데 이어 거래업체들에도 동참을 요구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선택은 자명하다. 최태원 회장의 탄소중립 드라이브는 한국 경제와 전체 기업을 위한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탄소중립을 오히려 새로운 투자 기회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앞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사업이 어렵다면 탈탄소 사업 중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은 빠를수록 유리하다. 최 회장은 2억톤의 탄소 감축 목표 중에서 1.5억톤은 배터리·수소 등 친환경 미래 신성장사업에 100조원 이상을 투자해 달성한다는 복안이다. 그는 말랑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과감한 승부사인 셈이다.

최태원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은 1993년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뒤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강조했다. 시장 개방 충격을 우려해 농업 분야는 물론 중소기업계도 강하게 반대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중소기업도 미래를 내다보는 두뇌가 필요하다며, 중소기업연구원 설립자금 30억원을 지원했다. 최고경영자의 능력은 남보다 먼저 미래를 내다보고 비전을 제시하는 통찰력이다. 기업 역량을 총동원해서 비전을 달성하는 강한 추진력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웬만한 역풍은 견디어 내는 뚝심도 요구된다. 이것이 진정한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고, 기업가정신의 발현이다.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선언’, 2000년대 중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글로벌 톱 5’를 겨냥한 ‘품질경영’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최태원 회장의 과거는 분식회계와 횡령사건으로 인한 두 번의 옥고가 보여주듯 그늘이 짙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 제기한 사회책임경영과 2011년 과감한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성과마저 가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탄소중립과 이에스지 경영을 선도하는 지금의 모습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계 3~4세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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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최태원과 기업가정신 / 곽정수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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