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신생 기업 저비용 자금 조달받는 ‘메자닌 금융’처럼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할 수 있는 임팩트 투자 늘려야

사회 투자자에 인센티브 주거나
기업 수익 일정 부분 사회 투자 강제하는 법 등
정책 수단 활용해 사회 투자 생태계 구축해야

제주시 애월읍의 올바른농민상회 연합뉴스
제주시 애월읍의 올바른농민상회 연합뉴스


건축 용어 중에 메자닌(mezzanine)이라는 말이 있다. 층과 층 사이에 있는 공간을 뜻하는데, 테라스나 발코니 같은 1층과 2층 사이 작은 공간을 일컫는 이탈리아어다. 금융 용어 중에서도 ‘메자닌 금융’이라는 말이 있다. 부채(대출)와 자본(주식) 사이의 중간 성격을 가졌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주식연계 채권’을 들 수 있다. 신생 기업이 주식 발행이나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때,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주식에 대한 권리를 제공하는 대신, 담보 없이 필요한 자금을 받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기업과 투자자에게 어떤 이익을 줄까. 기업은 저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담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고 채권의 약정 이자만 부담하면 된다. 투자자는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 채권 매입 시점부터 이자를 받다가 만기 때 주식 전환 옵션을 선택하면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투자이익과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현실에서 메자닌 금융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곳은 성장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이나 규모와 업력을 두루 갖춘 큰 회사들뿐이다. 아무리 좋은 옵션이 달린 회사채를 발행해도 투자자들은 회수(손실) 위험 때문에 업력이 짧거나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 문진수 원장 정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 문진수 원장 정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메자닌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는 없을까. 공개 시장에서는 어려울 것이다. 대다수의 사회적경제 기업은 안전성이나 수익성 면에서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하는 투자자가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회적경제 기업, 소셜 벤처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에 자금을 투자하는 이들을 사회 투자자(social investor)라 부른다. 영미 국가에선 흔히 ‘임팩트 투자자’(impact investor)라 불린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곳에 투자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 수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조건 없이 돈을 쾌척하는 기부나 자선과 다르고,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투자행위와 차이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적경제 영역이 활성화되려면 이런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 투자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문제는 이런 투자자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거다. 이유가 뭘까. 투자하고 싶어도 수익성이 의심되거나 성장 잠재력이 큰 투자처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투자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사회적경제 기업에 투자하는 이들에게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법률로 강제하는 방법도 있다. 은행 등 사회적 혜택을 누리면서 고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에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적경제 영역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경제 기업과 사회 투자자를 중개하는 전문기관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 무척 고무적이다. 아직 우리나라 사회투자 시장(social investment market)은 걸음마 수준이다. 정부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사회적 투자자 수를 늘리는 한편, 사회투자 전문 중개기관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사회투자 시장 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사회 투자자와 전문 중개기관 그리고 지역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분투하는 소셜 벤처,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함께 공존해야 한다. 작은 묘목이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려면 토양이 좋아야 한다. 금융은 땅을 기름지게 할 수도, 척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

한겨레에서 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자조 금융이 만들어내는 집단지성의 힘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미국 뉴욕시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지역밀착신협(CDCU) 활동을 소개하는 누리집(lespeoples.org) ‘보조금 24’라는 누리집이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지원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온라...

  • admin
  • 2021.10.26
  • 조회수 18

[유레카] 법조공화국 / 곽정수

한국 근대사에서 변호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구한말이다. “1906년 법무령 제4호에 의해 홍재기 등 3명이 변호사 인가증을 받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0년 뒤인 2006년 변협에 등록한 변호사가 1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 HERI
  • 2021.10.14
  • 조회수 115

[유레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에 실린 것 / 구본권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오는 21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2010년 개발이 시작된 누리호는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이 국내 기술로 이뤄졌다. 로켓 1단부는 75t급 액체엔진 4기를 묶어...

  • HERI
  • 2021.10.14
  • 조회수 143

진짜와 가짜 ‘임팩트 기업’ 구별하려면?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가치 추구하는 ‘진짜’ 기업 찾으려면 ‘임팩트’ 평가하는 객관적 척도 필요 진정성 있는 투자·중개기관이 나서 진짜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주거, 환경, 보육 등 다양한 사...

  • HERI
  • 2021.10.07
  • 조회수 112

로지, 미켈라…사고 안치는 ‘가상인간’ 모델계 대세될까

AI ‘버추얼 인플루언서’ 본격화 가상세계 익숙한 젊은층에 인기 명품모델 기용되며 높은 수익성 “과거엔 기술이 사람 따라했지만 현재는 사람이 가상인간 모방” “줄리엣·심청의 불멸은 스토리덕” 국내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

  • HERI
  • 2021.10.04
  • 조회수 214

[HERI 칼럼] 해운사 담합 면죄부 법 / 곽정수

곽정수 선임기자 미국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루스벨트 행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산업별로 ‘공정경쟁 협약’을 맺을 수 있는 ‘국가산업부흥법’을 제정했다. 과도한 시장경쟁을 막는다는 미명 아래 기...

  • HERI
  • 2021.10.04
  • 조회수 185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며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경제 기업, 소셜벤처 지원하는 지자체 기금 손실 보전 장치 부재·융자 중심 운용 문제 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하는 기업 성장 도와 엑셀러레이터가 투자자로 참여하거나 민간기...

  • HERI
  • 2021.09.23
  • 조회수 316

[유레카] 뉴 브랜다이즈 운동 / 곽정수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뉴 브랜다이즈 운동의 3총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조나단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지명자 신분), 미국 정부의 경제정책...

  • HERI
  • 2021.09.15
  • 조회수 400

[유레카] 안전하지 않은 ‘안전 극장’ / 구본권

20년 전 일어난 ‘9·11 테러’는 민간 항공기가 최고의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인시키며 항공여행의 풍경을 완전히 바꿨다. 강화된 몸수색과 알몸 스캐너를 거쳐야 하고 액체는 휴대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의 보안 ...

  • HERI
  • 2021.09.15
  • 조회수 263

살아있는 실험의 장이자 오래된 미래 ‘공제’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조상들의 상부상조 전통 담긴 ‘공제’ 정부·시장 주도 사회보장체계 형성되며 밀려나 2010년 소비자 생협 공제사업 법적 근거 마련에도 정부 무관심으로 10년간 발 묶여 소비자 피해 막기 위한...

  • HERI
  • 2021.09.09
  • 조회수 228

허드렛일 처리 ‘인간형 로봇’ 꿈…100년만에 실현될까?

일론 머스크 “내년에 시제품 공개” 성인 몸집에 짐 들고 걷는 기능도 “지루하고 위험한 일 사람대신 처리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로봇” 튜링 “사람닮은 로봇 어리석은 일” ‘범용’대신 기능별 로봇이 ‘대세’ 테슬라...

  • HERI
  • 2021.09.06
  • 조회수 274

[유레카] 집권 탈레반이 마주친 ‘새로운 적’ / 구본권

지난 15일 탈레반 지휘부는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 집무실을 점령한 사진으로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음을 알렸다. 소총을 든 무장대원들과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하는 조직원들이 함께 담긴 사진이었다. 2001년 ...

  • HERI
  • 2021.08.30
  • 조회수 372

균형 잡힌 투자 생태계는 어떻게 만들까?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정부, ‘사회적 금융’ 필요성 인정했지만 자금 공급 계획은 목표치 절반에 그치고 ‘사회적경제 기본법’은 국회서 장기 표류 수요-공급자 특성 맞춘 매칭 거래 등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에 ...

  • HERI
  • 2021.08.27
  • 조회수 372

기능차별 어려워진 스마트폰 성숙기 새 경쟁

스마트폰은 디지털 세상의 풍경을 바꾼 혁신의 상징이다. 2007년 아이폰 이후 스마트폰 업체들은 해마다 새 모델을 통해 혁신 경쟁을 벌여왔고, 기술과 보급률은 빠르게 올라갔다. ‘생필품 스마트폰’은 어떠한 차별화를 지향할...

  • HERI
  • 2021.08.23
  • 조회수 359

[말 거는 한겨레] 한국언론과 ESG 경영 / 이봉현

기후환경 분야 정상회의로 5월 말 열린 ‘2021 피포지(P4G) 서울 정상회의’에 깜짝 등장한 ‘김갑생할머니김’의 이에스지(ESG) 경영 선포 영상. 시가 총액 500조원, 코스피 1위의 가상기업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은 기...

  • HERI
  • 2021.08.18
  • 조회수 386

사회적경제 기업은 비옥한 금융 생태계에서 자란다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신생 기업 저비용 자금 조달받는 ‘메자닌 금융’처럼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할 수 있는 임팩트 투자 늘려야 사회 투자자에 인센티브 주거나 기업 수익 일정 부분 사회 투자 강제하는 법 등 정...

  • HERI
  • 2021.08.12
  • 조회수 422

‘촉매 자본’으로 금융사에 ‘넛지 전략’ 펼치자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금융소외 계층 구제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듯 사회·환경 가치 큰 사업 위한 촉매기금 조성 필요 사회적 가치 창출 무관심한 금융사에 인내 자금 제공해 더 나은 사회 위한 협력 파트너십...

  • HERI
  • 2021.07.29
  • 조회수 661

[유레카] 비운의 브로드피크 / 구본권

8000m대 봉우리 14좌 중 사람 발길에 너그러운 곳은 없다. 한국인 최초로 14좌에 오른 박영석 대장이 2011년 숨진 안나푸르나1봉(사망률 25%)을 비롯해, 등반 사망률이 10~20%를 넘는 곳이 숱하다. 파키스탄-중국 경계를 이루는 ...

  • HERI
  • 2021.07.28
  • 조회수 636

[말 거는 한겨레] “현장에 가봤어?” / 이봉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지난달 말 사퇴한 김기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2017년 매입해 보유하고 있던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의 토지. 도로가 바로 앞에서 끊겨 건축이 가능하지 않은 ‘맹지’이지만, 주변의 개발 상황 등을 면밀...

  • HERI
  • 2021.07.22
  • 조회수 565

[유레카] 해고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 구본권

로봇이 실험실을 나와 영업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바리스타 로봇, 서빙 로봇, 안내 로봇이 속속 배치되고 있다. 인건비 절감과 서비스 효율화를 내거는 만큼 일자리 불안이 뒤따른다. 일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는 2014년 휴머노...

  • HERI
  • 2021.07.20
  • 조회수 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