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유레카] 비운의 브로드피크 / 구본권

HERI 2021. 07. 28
조회수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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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m대 봉우리 14좌 중 사람 발길에 너그러운 곳은 없다. 한국인 최초로 14좌에 오른 박영석 대장이 2011년 숨진 안나푸르나1봉(사망률 25%)을 비롯해, 등반 사망률이 10~20%를 넘는 곳이 숱하다. 파키스탄-중국 경계를 이루는 카라코람산맥엔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고드윈 오스틴산(일명 K2봉, 8613m)을 비롯해, 가셔브룸1봉(8070m), 가셔브룸2봉(8036m), 브로드피크(8047m)가 몰려 있다. 브로드피크는 정상이 널찍해 붙은 이름이다.


브로드피크 최초 등정(초등)은 1957년 6월9일 오스트리아 원정대에 의해 이뤄졌는데, 고산 등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쟁탈전처럼 대규모 병참 지원을 통해 진행되던 고산 등정 경쟁에 등로주의와 알파인 스타일이라는 새 가치를 구현한 덕분이다. 브로드피크 초등은 산소통 없이 이뤄졌다. 셰르파의 도움도 없었다. 등반대 4명이 짐을 직접 운반하고 짊어졌다. 4명 등반대원 모두 정상을 밟았는데, 8000m대에선 첫 기록이다. 그중 헤르만 불은 1953년 7월 낭가파르바트산(8128m)에서 죽음을 무릅쓴 비박 끝에 단독 초등에 성공해, 8000m대 봉우리 2곳을 초등한 첫 산악인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로체봉(8516m)에 오르며 최초의 8000m 14좌 등정, 무산소 등반이라는 대기록이 만들어졌고 알파인 스타일은 새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알프스에서 행해지던 알파인 스타일을 8000m대에서 추구한 혁신적 등반의 출발점은 브로드피크 초등인 셈이다. 그 주인공 헤르만 불이 누린 영광은 찰나였다. 32살의 불은 단숨에 등반계 별로 떠올랐지만 브로드피크 초등 뒤 곧바로 인근의 미등정봉 초골리사(7665m) 도전에 나섰다가 악천후 속 추락해 실종됐다.


브로드피크는 한국에도 뼈저린 곳이다. 첫 도전인 악우회(1988년) 때부터 광주원정대(1995년), 경희대산악회(1996년), 연세산악회(1999년)의 시도에서 희생자가 나왔다. 손가락을 모두 잃은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씨가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 8000m 14좌 완등을 이루고 하산하다 실종된 곳도 브로드피크다. 22년 만에 눈 속에서 발견된 한국 산악인의 주검도 안타까움을 더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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