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독일, ‘에너지 전담 은행’ 통해 신재생 에너지 정책 실행에 앞장 서
‘기후악당’ 국가 선정된 한국도 은행 설립 등 적극적 전략 마련해야


독일재건은행 누리집 (www.kfw.de)
독일재건은행 누리집 (www.kfw.de)


은퇴한 60대 부부가 수도권 인근에 친환경 주택을 짓고 싶어 한다고 하자.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에너지절약형 건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에 설계를 의뢰하고 준공까지 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만일 정부가 이 부부처럼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을 돕는 정책을 펼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에너지 효율이 높은 친환경 주택 수요가 늘고, 결과적으로 주거용 건물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 추진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 모델이다.

독일 정부는 2045년에 탄소제로(net-zero)를 달성하겠다고 밝혀, 애초 계획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5년이나 앞당겼다. 독일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건물의 임대인은 기름이나 가스에 부과하는 탄소 비용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2026년부터는 새 건물을 지을 때 기름을 원료로 한 난방 시스템을 설치할 수 없다. 건물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친환경 정책 유인책도 펼친다. 독일은 친환경 주택을 짓고자 하는 이들에게 장기저리 융자와 보조금을 지급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택일수록 대출금과 보조금 지원이 많다. 친환경 주택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고자 할 경우 개인 주택은 최대 5천유로, 3가구 이상 다세대 주택은 최대 2만유로까지 자문비용을 지원한다. 독일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강력하고 불가역적이다. 차기 총리가 누가 되더라도 바꿀 수 없다. 미래 후손들을 위해 탈석유·탈핵 정책을 고수한다는 의지가 크다.


그러나 투자 위험이 커 민간에서 사업 참여를 결정하기 쉽지 않고, 기술 개발과 상업화 사이 공백도 커 투자 유인이 낮다는 문제도 있다. 또한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점도 큰 장벽이다. 정부가 위험을 떠안고 민간투자를 끌어내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게 에너지 전환 은행이다. 에너지 은행(에너지 전환은행)이란 에너지 효율화, 친환경 에너지 생산 등 탈핵·비탄소로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업에 금융자본을 투·융자함으로써 녹색경제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힘쓰는 은행을 말한다.


독일에는 친환경 정책 실행에 앞장서는 은행이 있다. 바로 독일재건은행(kfW)이다. 1948년 독일 재건을 위해 설립된 이 국책은행은 대표적인 신재생 에너지 금융기관이다. 독일재건은행은 1950년대부터 환경보호·에너지 효율화·에너지 자립마을·해상풍력 등 수많은 에너지 사업에 전방위적인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 독일 에너지 전담 은행인 셈이다.


주요 선진국은 석유·석탄에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석탄화력발전소 7기를 새로 짓는 등(현재 가동 중인 것만 63개다)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석탄발전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 환경보호단체는 2016년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으로 선정했다. 기후위기는 인류의 미래가 걸린 절박한 과제다. 탄소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경제구조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범국가적 차원의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그 첫 단추가 에너지 전환 은행 설립이다.


문진수 서울신용보증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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