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내 돈에 꼬리표가 달려 있다면?

HERI 2021. 07. 01
조회수 644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네덜란드 트리오도스·독일 지엘에스 등
고객에 투자처 묻거나 공익 창출 분야에만 투자

사회적 가치 중시하는 40개국 65개 ‘착한 은행’
경제·사회·환경 지속가능성 고민하며
윤리적 금융 생태계 구축

여윳돈이 생겨서 은행에 예금하러 갔다고 하자. 아마 당신은 이자가 얼마인지가 중요할 뿐, 은행에 맡긴 돈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은행은 당신의 돈을 차입(借入)했고, 그 대가로 비용(이자)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당신이 맡긴 돈은 이제 은행 소유이고 더는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만일 당신이 맡긴 돈이 석탄 발전소를 짓는 데 사용되거나 전쟁무기를 만드는 자금으로 쓰인다면 어떨까. 내가 맡긴 돈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에 사용되거나 제3세계 가난한 생산자를 위한 공정무역(fair trade)에 투자된다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돈은 꼬리표를 달고 있지 않아서 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가능한 방법이 있다. 좋은(good) 일에 투자하는 착한(good) 은행에 돈을 맡기면 된다. 그런 곳이 있을까? 있다. 그리스어 트리오도스(tri+hodos, 3개의 길)를 은행 간판에 새겨넣고 사람·환경·이익(people·plane·profit)이라는 3가지 핵심가치를 추구하는 네덜란드 트리오도스(triodos) 은행은 친환경, 공정무역, 소액금융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분야에만 투자한다. 트리오도스는 출범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손실을 낸 적이 없다. 사회와 생태,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의 지엘에스(GLS), 캐나다의 벤시티(vancity), 미국의 뉴리소스(NRB), 이탈리아의 방카에티카(Banka Etica) 등도 착한 은행이다. 대출심사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지엘에스 은행은 나쁜 사업엔 절대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유기농 사업, 재가 요양, 실업자 구제, 건강식품 판매, 공동주택 건설 등 사회와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은행 자금 유·출입을 100% 공개함은 물론, 예금 고객들에게 돈을 어디에 투자했으면 좋겠는지를 직접 묻는 등 예금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은행으로 유명하다. 방카에티카는 비영리단체와 사회적 경제 기업 등 제3섹터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을 위한 은행이다. 영리기업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조직에 자금을 제공해도 은행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모든 거래는 공공의 이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철학에 따라, 대출 희망자가 하려는 사업이 은행이 정한 금지 규정에 해당하는지를 엄밀히 살핀 후 대출을 실행한다.

2021년 6월 현재 GABV 65개 은행 분포 지도. 자료: gabv.org
2021년 6월 현재 GABV 65개 은행 분포 지도. 자료: gabv.org

착한 일을 하는 은행들이 연대하여 만든 협력기구인 ‘GABV’(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도 있다. 40개 나라, 65개의 착한 은행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금융이 사회와 경제, 환경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는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는 가치를 공유한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오이시디(OECD) 국가는 물론 나이지리아, 네팔, 방글라데시 등 가난한 나라의 은행들도 많다.

우리나라 은행 중 이곳에 가입한 곳이 있을까. 안타깝지만 없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인 나라에서 사회·환경적 가치를 실천하는 윤리적 은행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 살림살이(GDP)가 커지는 게 능사가 아니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꿈꾸기 전에 금융의 참모습을 갖추는 게 먼저다.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은 돈이 되는 쪽으로만 움직인다. 가난한 이들의 등골을 빼먹고, 빈부 격차를 키운다.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일에도 흘러들어 간다. 여기엔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금융회사가 자리하고 있다. 당신은 어떤 은행과 거래하고 싶은가.

문진수 서울신용보증재단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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