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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public finance)이란 말은 라틴어의 ‘법정 판결로 결정한 벌금(fine)’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에선 15세기 국왕이 부리는 조세징수 청부인을 지칭했고, 독일에서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오늘날 나라살림을 의미하는 재정은 두 개의 돈주머니, 즉 예산과 기금으로 꾸려진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513조5천억원이다. 지난해에 견줘 9.8% 오른 수치다. 국회는 예산안 심의를 법정 시한인 2일까지 끝내야 했지만 올해도 스스로 법을 어긴 꼴이 됐다. 졸속 심의는 불가피하다.

예산안 관련 논란 가운데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재정 포퓰리즘’ 담론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초슈퍼 예산” “재정 중독” “재정 포퓰리즘”이란 주장이 그렇다. 이 프레임은 해묵은 ‘재정건전성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개발연대 재정 패러다임’과 뿌리가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총지출 비율을 살펴보자. 2018년 기준 오이시디 국가의 평균은 40.1%다. 그러나 한국은 기껏 31.5% 수준에 그친다. 우리의 재정 규모는 ‘초슈퍼’가 아니라 ‘슈퍼 예산’이라 칭하기에도 겸연쩍다.

한국은 전형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다. 한국이 진정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재정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정부를 비판해야 할 지점은 증세나 사회보험료 인상 등 재정 확충을 위한 노력을 왜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가, 내년도 예산 구성은 과연 적절한가 등일 것이다.


재정 포퓰리즘은 반복지 담론인 복지 포퓰리즘과 쌍생아다. 복지 때문에 재정건전성이 붕괴했으며, 특히 “현금 꽂아주는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재정이 파탄났다”는 주장이다. 재정의 궁극적 목표는 돈이 아니다. 삶의 질 향상, 즉 시민의 행복이다. 복지는 이를 달성할 핵심 정책 및 사업이다. 더욱이 우리는 저출산 고령화, 4차 산업혁명, 불평등 악화 등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려면 확장 재정과 그 전략적 배분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재정지출의 건전성 확보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193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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