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영화 <1987>을 계기로 그 시대 ‘주역’이던 86세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들은 20대 민주항쟁을 이끌었지만 여느 세대처럼 기성의 정치와 경제 질서에 잘 적응해갔다.

20세기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는 부모세대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청년세대의 부상과 세대교체를 따라 진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들은 시대와 불화하며 세상의 개조를 외쳤고, ‘아비’ 세대는 장강의 앞 물결은커녕 샛강도 되기 전에 쓸쓸히 밀려나곤 했다.

21세기 들어 이 세대교체의 법칙이 깨졌다. 86세대는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이들을 뒷방으로 밀어낼 새 세대는 오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한국의 청년세대는 스펙 쌓기의 무한경쟁에 내몰렸고, 아비와 싸우는 정신적 고아보다는 아비의 상속자를 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언론과 세평들은 곧잘 기득권 86세대와 빈곤한 청년세대를 대립시킨다. 특이한 것은 86세대가 포스트86세대와 제한된 자원을 놓고 갈등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동맹을 맺어왔다는 점이다. 세대갈등이 처음으로 부상한 2002년 대선에서 당시 30대였던 86세대는 2030연대를 구축해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켰다. 이들이 40대가 되자 2040연대로 확장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 86세대가 주축을 이룬 40대의 55.6%가 문재인에게 투표했다. 박근혜 투표는 44.1%에 그쳤다. 62.6%가 박근혜를 지지한 50대와는 차이가 분명했다.

이제 86세대의 3분의 2 이상이 50대에 접어들었다. 앞선 세대와 같이 ‘50대 보수화’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민주화 세대라는 정체성을 유지할지가 향후 정치 지형의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2017년 대선 결과는 어떨까? 방송사 출구조사를 보면 50대의 선택은 문재인 36.9%, 홍준표 26.8%, 안철수 25.4%. 문재인 지지만 놓고 보면 40대 52.4%, 30대 56.9%에 비해 꽤 낮다. 주관적 이념성향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 86세대의 ‘50대 보수화’를 말하기는 이르겠지만, 적어도 ‘분화’는 분명해 보인다.

탄핵과 촛불혁명의 시점에 나타난 86세대의 아이러니한 정치적 선택을 보면서 세대담론의 위험성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 86세대가 대학에 가던 1980~90년의 대학진학률은 20~30% 수준에 불과했다. 대학생은 이 세대의 소수집단이다. 86세대라는 호칭 자체가 엘리트주의적이고 협소하다.

둘째,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격차가 더 크다는 점이 여러 실증연구로 입증되고 있다. 부유한 기성세대가 가난한 청년세대를 착취한다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현실은 부유한 기성·청년세대가 한편에, 가난한 기성·청년세대가 다른 한편에 있다. 기득권으로 매도당하는 60년대생 중 대다수는 대학도 못 갔고, 좋은 직장에 다녀본 적도 없다. 평생 불안정노동에 시달리거나 구조조정 당했다.

셋째, 세대담론은 평생의 정치적 신념과 선택이 인생의 짧은 시기, 예컨대 20대 초반 몇 년에 결정된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87년 광장의 동지가 2016년 탄핵의 촛불광장에서 만날 필연성은 없다. 그것은 87년 이후 긴 인생이 결정하는 문제다.

87년 이후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변해갔다. 영화 <1987>의 몇몇 실제 인물들처럼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의 수레바퀴를 조금씩 앞으로 돌려온, 86세대로 불리지 못하는, 불리기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무수하다. 세대담론이 모두 무익하다는 건 아니다. 청년세대의 아픔에 공감하자는 이야기라면 대환영이다. 세대라는 벽을 넘어 약자들 간의 연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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