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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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리스를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단순히 과거에 우리가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어봤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의 현재가 한국경제의 중요한 일면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리스는 위기에 빠졌는가? 한쪽에선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를 고발하고, 다른 쪽에선 국민의 게으름을 부추기는 과도한 복지에 화살을 돌린다. 성급히 통화주권을 포기하고 유로존에 가입한 것이나 공무원들의 각종 특권을 꼬집기도 한다. 흡사 1997년 우리나라 외환금융위기 당시 ‘내인론’과 ‘외인론’의 대립을 보는 듯하다. 당시에도 위기의 원인을 두고 ‘신자유주의 대 유교자본주의’, ‘미 제국주의 대 국내 독점재벌’ 따위의 구도가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이게 지난 일만은 아니다. 최근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이런 과거의 논쟁이 재현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갔는가.

한편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위기의 거대한 뿌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소수 특권집단이다. 그리스의 경제는 물론 정치와 미디어까지 장악한 이들은 각종 범죄와 탈세를 일삼으며, 선진국 중에서는 최대 수준이라는 지하경제(국내총생산의 20-30%) 양성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현재 그리스 ‘복지병’의 사례로 거론되는 알량한 ‘특혜’들도 이 올리가르히에 대한 비판을 사회적으로 무마하는 과정에서 던져진 포퓰리즘적 ‘당근’이기도 하다.

올리가르히는 심지어 자국의 위기로부터도 이익을 챙긴다. 재정위기는 현금에 목이 마른 정부로 하여금 국유자산의 헐값매각을 강요하고, 이때 가장 가까운 구매자가 올리가르히다. 뿐만 아니다. 그리스 국내에서 유로존 탈퇴, 즉 그렉시트를 원하는 게 집권당 시리자의 급진좌파그룹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몇몇 올리가르히들은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조차 이득을 챙길 계획까지 마련해 놓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막상 그렉시트가 현실화돼 기존 드라크마화가 재도입될 경우 통화가치 저하를 피할 수 없고, 이 경우 그들은 외국에 빼돌려놓은 유로화로 훨씬 더 값싸게 건실한 국유자산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올리가르히의 그리스는 우리 자신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 정도다. 오늘 그리스에서 올리가르히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20여 년 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한국에서 ‘재벌’이라 불리는 집단이 해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렉시트에 이은 국유자산의 헐값매입’이라는 황당한 시나리오도 우리나라에선 현실이 아닌가. 론스타 등을 둘러싼 ‘검은 머리 외국인’ 논란을 보면 말이다. 우리에겐 그저 통화가치를 떠받쳐줄 ‘유로화’가 없었을 뿐이다. 한때 재벌을 서양말로 어떻게 번역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는데, 이젠 ‘oligarch’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전세계 좌파들의 환호를 업고 출발한 시리자가 이제 채권단과의 협상을 일단락짓고 있다.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지난 반년간 그들이 보여준 기백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희생’의 국내적 배분을 놓고 올리가르히를 상대로 한 진짜 전쟁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우리가 좀 더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대목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솝우화와 그리스신화에서부터 그리스인들의 이야기는 늘 우리의 ‘거울’이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등록 :2015-07-27 20:59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020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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