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하이라이트

캐서린 깁슨 워크숍 참관기 
인간·지구 위한 경제 ‘탈환’ 
지불노동 외 노동 가시화 강조

지난 15일 ‘도시공동체의 탈환: 시민이 경제의 주체다’란 주제로 서울시립대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포럼 장면. 조현경
지난 15일 ‘도시공동체의 탈환: 시민이 경제의 주체다’란 주제로 서울시립대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포럼 장면. 조현경

봄빛이 짙어가던 지난 15일, 서울시립대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을 찾았다. 페미니스트 경제지리학자 캐서린 깁슨 웨스턴시드니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날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가 연 ‘도시공동체의 탈환: 시민이 경제의 주체다’ 포럼에 참석해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하기: 실천과 기술’이라는 발제를 했다. 깁슨 교수는 <그 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The End Of Capitalism, 1996),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Take Back The Economy, 2013) 등으로 공동체 경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해온 호주 학자다.

자신의 저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깁슨 교수는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의 생존이 타인이나 타자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자. 경제는 복종해야 하는 기계가 아닌 윤리적 실천의 공간이 될 것이다.” 통화량과 노동시장의 조절을 통해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 곧 ‘성장’이 유일한 생존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기계적 경제’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경제’의 용어로 탈환하자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경제’의 표준 모델은 ‘자본주의’ 자체였다. ‘경제=자본주의’인 것처럼 여겨온 것이다. 이날 두번째 발제를 맡은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이현재 교수는 “오늘날 경제에 자본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 가장 적대적이라고 알려진 마르크스의 공”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사회적 관계의 근간을 이룬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에 근거,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 체제라고 일컬어져온 것이다.

한국의 대안경제 활동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한 캐서린 깁슨 교수.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제공
한국의 대안경제 활동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한 캐서린 깁슨 교수.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제공

<그 따위…>에서 캐서린 깁슨과 줄리 그레이엄(2010년 줄리 그레이엄이 사망한 후에도 ‘깁슨-그레이엄’이라는 공동 필명을 사용한다)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경제의 판을 새롭게 짜고자 했다. 자본주의 담론 자체가 비자본주의적인 실천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깁슨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도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이 일으킨 변화를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이를 종합하면, 페미니스트들은 1960~80년대에 걸쳐 여성의 삭제된 노동을 알리는 캠페인과 행진을 조직했다. 1998년 뉴질랜드의 메릴린 웨어링은 <무를 위한 계산>(Counting for Nothing)이라는 책을 통해 여성의 노동이 국가 경제에서 계산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가 발전과 좋은 삶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덩컨 아이언몽거 등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여성의 노동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작업에 나섰다. 오늘날 돌봄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자는 논의는 이들 부불노동(unpaid work)의 발견과 측정, 표준화된 데이터 수집 같은 사회기술적 성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회운동이 오랫동안 문제제기하고 지지해온 것들이다.

페미니즘은 이처럼 경제가 지불노동만으로 구성된다는 상식에 도전해왔다. 깁슨 교수는 ‘경제’에서 빼앗긴 몫을 도로 찾아오는 ‘탈환’의 주된 출발점으로 ‘다양한 경제’(diverse economy)를 빙산의 이미지로 가시화할 것을 제안했다. 수면 위에는 자본주의 기업에서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지불노동이 자리한다. 반면,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있고, 비자본주의적인 공동체 집단들이 있으며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 공동체, 봉사활동, 협동조합 등 경제흐름 자체가 비시장적인 것들도 존재한다. 지불노동의 이면에 삶을 지탱하는 다양한 실천과 장소, 흐름이 숨겨져 있다는 페미니즘의 통찰을 반영한 얘기다.

또 깁슨 교수는 호주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아주 적은 장애연금으로 살아가는 조지프의 사례를 들려줬다. 조지프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돌보고, 동네 학교의 양계장을 관리하며, 자신이 만든 사회적 기업 ‘플레이’를 무보수로 운영하고 있다. 플레이(PLAY: Pleasure, Labor, Yakka)는 정신질환을 겪는 남성들의 네트워크로서 동료애를 키우고 공동체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 하지만 그의 삶은 지불노동과 소비자로서의 시민만을 특별히 대우하는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깁슨 교수는 조지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호주에 더 많아지기 위해선 ‘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늘리며 먹거리를 자급하고, 환경을 복원하면서 자연과의 접점을 늘리자는 제안이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가정, 공동체, 일터, 환경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제에 기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한겨레에서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선거 여론조사, 황금유무선비율은?

[HERI 쟁점진단] 19대 대선 여론조사 해부 (KBS) 본관에서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왼쪽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

  • admin
  • 2017.06.23
  • 조회수 60

공공혁신의 지렛대, 사회적가치기본법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HERI 쟁점진단] 공공구매에서 사회적 가치 고려하는 사회책임조달이 출발 공공사업의 계획, 실행, 평가에 사회적 가치 우선 고려 지난 10일 충남 천안의 아름누리 아카데미 ...

  • admin
  • 2017.06.23
  • 조회수 50

어느 인구학자의 선택 “내 아이는 과외 끊었다”

Weconomy |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정해진 미래> 조영태 지음, 북스톤(2016) 저출산 등의 이유로 전교생이 180여명에 불과한 서울 강서구 개화초등학교 1학년 한반 학생 9명이 지난해 담임선생님과 함께 수학, 체육 수업을 하...

  • admin
  • 2017.06.23
  • 조회수 51

몸집 커진 ‘착한 경제’, 인증·평가방식 개선해야 ‘날개’

사회적기업 10년, 새로운 모색 ① 국내 사회적기업 현황 ‘자립 가능성’ 우려 많았지만 정부지원 끝난 기업 75% 생존 영업이익·재정 건전성 개선 고용인원의 62%가 취약계층 사회적 성과도 꾸준히 향상 “10년간 쌓은 성과 바...

  • HERI
  • 2017.06.15
  • 조회수 104

막대한 어린이집 지원금, ‘누군가의 공돈’이 되지 않으려면…

자료사진" alt="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한다. 뇌는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억도 오래 한다. 2015년 11월18일 서울 금천구 독산3동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 모인 ‘꾸러기 어린이집’ 원아들이 동화 구연을 지켜...

  • admin
  • 2017.06.14
  • 조회수 103

선거제도 개혁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개혁보다 중요한 이유?

Weconomy | 이창곤의 복지국가 이야기 발족식 겸 기자회견을 열고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이제 국민의 힘으로 정치를 바꾸자”며 비례대표제 확대 강화를 뼈대로 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alt="전국 220여개 노동...

  • admin
  • 2017.06.14
  • 조회수 101

[HERI의 눈] 문재인 정부 ‘도시재생 뉴딜’ 정책에 부치는 제언

[HERI의 눈] 문재인 정부 ‘도시재생 뉴딜’ 정책에 부치는 제언 서울역 북서부 중림동 일대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이 지난달 25일 발표됐다. 이 지역의 오래된 이야깃거리를 관광 및 역사 자원으로 만드는 것이 이번 계획의 뼈...

  • HERI
  • 2017.06.12
  • 조회수 124

공공기관 간접고용 늘린 주범은 효율성 위주 경영평가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HERI 쟁점진단] 공공기관 비정규직 ㅁ 공공기관 비정규직 88%가 간접고용 간접고용 확대는 경영 여건과도 무관 인건비 통제·정규직 전환 부담 없어 공공기관 입장선 간접고용...

  • admin
  • 2017.06.02
  • 조회수 225

[HERI 쟁점진단] 택시협동조합이 일자리 두배, 소득 두배 만든 비결은

페이[HERI 쟁점진단] [HERI 쟁점진단] 한국택시협동조합, 기사 74명 늘리고도 소득은 월 134만원 증가 사회적경제 통해 일자리의 양과 질, 두 마리 토끼 잡은 모델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은 일자리창출이다. 문재인 대통...

  • HERI
  • 2017.06.02
  • 조회수 388

“문재인 정부, 민생개혁·증세로 복지국가 밑돌 놓아야”

“문재인 정부, 민생개혁·증세로 복지국가 밑돌 놓아야”등록 :2017-06-01 17:59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한겨레·복지학회·노조 토론회서 기초생활보장·연금·아동수당 등 새정부 보건복지개혁 로드맵 제시 “꼼...

  • admin
  • 2017.06.01
  • 조회수 207

슈퍼우먼방지법·청년주거수당…‘아깝다, 이 공약!’

대선 공약 시민 눈높이 검증 한겨레 ‘시민정책 오디션’ 패널 ‘버리기 아까운 낙선자 공약’ 선정 파파쿼터제·기본소득 등 ‘호평’ “상대 후보 정책도 돌아보길…” (MBC)에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대선 후보...

  • HERI
  • 2017.05.18
  • 조회수 362

“국정운영 잘할 것” 87%…TK서도 72% 기대감 커

[한겨레] 한겨레 창간 29돌 여론조사 문재인 정부 국정 평가와 기대 대선 투표율의 2배 넘는 수치 20·30·40대 90%대 압도적 “잘못할 것” 우려는 9%에 그쳐 “이미 잘하고 있다”도 78% 전체 국민의 86.9%는 문재인 정부가...

  • HERI
  • 2017.05.18
  • 조회수 311

사람 중심의 경제를 원하세요? 사회적 경제에 투표하세요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포용적 성장’ 유력 수단 각광 노동 형태 급변 디지털 시대 사람 중심 경제 대안 떠올라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대통령 직속 위원회 구성 등 3대 핵심 정책 과제 제안 지...

  • admin
  • 2017.05.04
  • 조회수 410

문재인 39.7%-안철수 18.9%-홍준표 13.7%

한겨레-리서치플러스 여론조사 보수층 결집 ‘1강2중2약’ 확연 5·9 대통령 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양강 체제’가 보수층의 결집으로 인해 ‘1강-2중-2약’ 체제로...

  • admin
  • 2017.05.04
  • 조회수 233

김상조 교수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한 이유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HERI의 눈] 문재인 경제 브레인 김상조의 ‘개혁 방법론’ 2일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대선후보 캠프 초청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와 청년 중소상인 민생정책 토론회...

  • admin
  • 2017.05.04
  • 조회수 281

문재인 대 안철수…‘캐스팅보터’ 50대 속마음을 들어보다

캐스팅보터 50대 표적집단좌담 문 지지자 “경험있고 귀 열려…과거와 한번 끊어줘야” 김대중·노무현 거쳐 표심 확실 “살아온 길 일관 주변사람 짱짱” “남북관계 개선·언론개혁 될 것” “안철수는 재산이 너무 많다” 안 ...

  • admin
  • 2017.04.28
  • 조회수 304

“가사·돌봄·공동체 노동은 왜 경제가 아닌가”

캐서린 깁슨 워크숍 참관기 인간·지구 위한 경제 ‘탈환’ 지불노동 외 노동 가시화 강조 지난 15일 ‘도시공동체의 탈환: 시민이 경제의 주체다’란 주제로 서울시립대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포럼 장면. 조현경 봄빛...

  • admin
  • 2017.04.28
  • 조회수 371

‘교육통제부’를 ‘교육지원부’로 바꿔야 합니다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⑦교육거버넌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19대 대선 의제를 짚어보는 온라인 기획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청년·노동·교육 등 각 분야 현장 전문가들이 주요 후보 공약을 ...

  • admin
  • 2017.04.28
  • 조회수 306

재벌개혁, 참여정부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HERI, 대선 의제를 말하다]-⑥재벌개혁 정권 초기에 선택과 집중 필요 경제위기론, 외자 침탈론 등 극복 과제 개혁 의지 강한 경제팀 진용 짜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19대 대선 의제를 짚어보는 온라인 기획 ‘HER...

  • HERI
  • 2017.04.26
  • 조회수 247

심 ‘시원한 팩트 폭격’ 문 ‘성공적 수비’ 안 ‘네거티브 갇혀’

-한겨레 시민평가단 23일 토론회 평가- 유 ‘색깔론에 묻힌 보수의 품격’ 홍 ‘대선후보 자격 있는지 의문’ 중앙선거방송토론회 주관으로 열린 23일 밤 텔레비전 토론회를 본 지켜본 시민들의 평가는 어떠할까. <한겨레>와 한겨...

  • HERI
  • 2017.04.25
  • 조회수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