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하이라이트
138414679068_20131111.jpg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최근 두 가지 동영상을 봤다. 하나는 충격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상적이었다. 앞의 충격적인 동영상은 사무실에서 팀장이 직원들을 거리낌 없이 때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텔레마케터 업무를 하는 이곳은 성과급제로 운영되는 아웃소싱업체로 보인다. 10년 가까이 영업을 해오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실적 향상이 예전만 못해지자 팀장이 영업 독려라는 미명 아래 폭력을 써왔다. 벌로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리며 ‘정신 차리자’고 구호를 외치게 하기도 하고, 팀장이 우산으로 직원의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리기도 한다. 때리는 사람, 맞는 사람 모두 여성들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 이어지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이 먹먹해진다. 도대체 왜 그들은 맞고만 있었을까?

다른 동영상은 스위스 사업가와 독일 예술가가 2008년 만든 <기본소득, 문화적 충동>이란 다큐멘터리다.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복지에 비판적인 쪽으로부터는 극단적인 사례로 폄하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기존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영상은 기본소득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전한다.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시작해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줘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부터 현대사회에서 일의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있고, 이런 가운데 기본소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를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기본소득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사무실 폭력 장면이 겹쳐진다. 팀장의 폭력에 수년간 시달렸던 이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굴욕적인 상황이 이어졌을까.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은 경제적 어려움을 악마에 비유했다. 악마가 제일 뒤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듯 경제가 어려우면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의 사람부터 희생된다. 센은 결과와 수치에만 집중하는 양적 성장을 경계하고, 대신 ‘사람다운 삶’을 우위에 둔 양심적인 경제관점을 지향했다. 그래서 사회안전망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마르티아 센의 관점은 청년, 비정규직, 실업자, 해고자, 영세자영업자 등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 울림을 준다. 사회적 안전망을 주장하는 아마르티아 센의 대안에는 기본소득제도 당연히 포함된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사람에게 기초적인 생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나온 개념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20만원도 일종의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영유아 보육수당도 특정 연령대의 아동에게 주는 기본소득이기도 하다.

일요일인 23일 서울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기본소득공동행동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국제조직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한국지부다. 기본소득공동행동은 2016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열어 사회적 관심을 넓혀갈 계획이다. 또한 서명운동 등 실천 활동에 역점을 둬서 기본소득운동을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려 한다.

기본소득은 삶의 불안정성을 줄여주고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노동과 활동을 만들어낼 것이다. 물론 막대한 재원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많다. 또한 기본소득만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모두 풀 수는 없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처럼 우리 삶터의 최소한의 존엄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더 많은 상상과 실천이 이어졌으면 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hslee@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싱크탱크 시각] 사회적 경제, 지방선거 이슈로 뜬다

6·4 지방선거가 80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의 핵심이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지방선거에서 뽑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은 지방정부를 구성해 지역 살림을 꾸려나간다. 아주 소박...

  • admin
  • 2014.03.17
  • 조회수 7381

[싱크탱크 광장] “6·4 지방선거 ‘사회적 경제’ 본격 이슈화 할 것”

전국사회적경제매니페스토실천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은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과 김현대 <한겨레> 기자가 5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싱크탱크 광장] 사회적경제 매니페스토실천협 유승민 상임대표전국사회적경제매니페스토실천협의회(이하 협의...

  • admin
  • 2014.03.10
  • 조회수 9182

[싱크탱크 시각] “왜 그들은 맞고만 있었을까”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최근 두 가지 동영상을 봤다. 하나는 충격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상적이었다. 앞의 충격적인 동영상은 사무실에서 팀장이 직원들을 거리낌 없이 때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텔레마케터 업무를 하는 이곳...

  • admin
  • 2014.02.24
  • 조회수 8922

[싱크탱크 시각] 중소기업 사회책임경영의 길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흔히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돈 많은 대기업이나 할 법한 걸로 여겨진다. 돈 벌어 월급 주기도 빠듯한 중소기업에 사회책임경영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사회책임경영은 꼭...

  • admin
  • 2014.02.03
  • 조회수 10902

[열려라 경제]신흥국 ‘중산층 빅뱅’ 눈앞… 세계경제 균형자 될까

산업혁명이 미국 중산층 키웠듯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중심 2030년 32억명으로 급증 전망 소비 늘리며 투자와 성장 견인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 열쇠 쥐어설 명절이 다가오니 경제도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난주 스위...

  • admin
  • 2014.01.28
  • 조회수 12041

[싱크탱크 광장] “사회책임경영 환경,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 ‘한국 사회책임경영의 현주소와 갈 길’을 주제로 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사회책임경영...

  • admin
  • 2014.01.24
  • 조회수 12057

[HERI Review 제31호] “절약이 곧 생산”…절전으로 에너지 자립 성큼

[헤리 리뷰] 스페셜 리포트 로컬에너지 기업-서울 ‘마을닷살림’ 협동조합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김소영 성대골어린이도서관 관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전북 부안 출신으로 2003년 벌어진 부안...

  • HERI
  • 2013.12.31
  • 조회수 11795

[HERI Review 제31호] “노후까지 함께하는 직장 만들고 싶어요”

현장에 나가 함께 일하며 어려움을 즉각 해결해 '현장을 뛰는 사장님'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유현주 대표 /두메산골 제공 [헤리 리뷰] 헤리 비즈 HERI가 만난 사람 / 유현주 사회적기업 두메산골 영농조합 대표두메산골 영농조...

  • HERI
  • 2013.12.31
  • 조회수 12732

[HERI Review 제31호] 에너지 위기 시대, 지역에서 답을 찾다

자연에서 얻어 지역에서 소비 ‘지속가능’ 구현 새 방식 주목희망찬 새해가 밝아온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여전히 위험과 위기의 연속이다. 급격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계에 이른 석유 증산(오일 ...

  • HERI
  • 2013.12.31
  • 조회수 14232

(이봉현의 신뢰경제) 2014년 경제, 희망을 걸어보지만...

새해에는 누구나 희망을 품어본다 지난 한 해를 고단하게 보낸 국민들은 “내년에는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으면” 하는 기원을 한다. 변수가 많긴 해도 2014년의 경제는 전년 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보여 다행이다. 우선 세계 경...

  • HERI
  • 2013.12.31
  • 조회수 17671

(이봉현의 신뢰경제) G2 대응 잘못하면 우리 경제 '그로기' 된다

방공 식별 구역쯤 뒤통수를 맞아도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만 잘하면 사는데 별 지장 없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세계화 시대, 국제정치적 역학의 변화는 교역과 금융시스템을 통해 한 나라의 경제사정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 HERI
  • 2013.12.10
  • 조회수 24195

(이봉현의 신뢰경제) 올해는 사회적 경제 성탄절을 만들어보자

1978년 이탈리아. 정신병원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핏기 없는 얼굴의 무리가 내리쬐는 햇빛이 버거운 지 고개를 모로 꼰 채 걸어나왔다. 얼마 전 의회를 통과한 ‘바자리아법’ 에 따라 정신병원이 폐쇄되고 수용돼 있던 환자...

  • HERI
  • 2013.11.26
  • 조회수 26081

(이봉현의 신뢰경제) 전관예우는 공익에 대한 범죄다

1차 대전으로 1천여 만 명이 사망하는 미증유의 참화를 겪은 인류는 더 이상의 전쟁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국제연맹을 만든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6천만 명이 사망하는 2차 대전에 다시 휘말려 든다. 역사의 익숙한...

  • HERI
  • 2013.11.21
  • 조회수 24833

(이봉현의 신뢰경제) 수능시험과 새로운 경제학의 탄생

요즘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 보다 속 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난 주 치러진 수학능력시험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데 주말이면 수시 대학별고사(논술 등)에 응시하러 대학들을 순례해야 한다. 몸만 고되면 견딜 만 하...

  • HERI
  • 2013.11.12
  • 조회수 37622

(이봉현의 신뢰경제) 독일 배우기 바람. 진짜 배워야 할 것은?

최근 우리사회에 독일을 배우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에서 온 연사의 강연에는 청중이 몰린다. 대학에는 독일과 유럽모델을 다루는 연구소와 야간 특수 과정이 등장했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올 초 독일에 가서 8개...

  • HERI
  • 2013.11.05
  • 조회수 52599

(이봉현의 신뢰경제) 무관심의 세계화와 사이코패스 사회

송전탑과 관련해 같은 지면에 실린 두 개의 기사가 눈길을 잡는다. 한국전력이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경남 밀양의 주민들은 악이 받쳐 “죽는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 그 곳에 시집와 평생을 보냈을 서 아무개(80) 할머니는...

  • HERI
  • 2013.10.23
  • 조회수 68015

(이봉현의 신뢰경제) 로컬푸드 먹고 로컬에너지 쓰니 행복이 퐁퐁

근처에서 나는 먹거리로 신선하고 안전한 식탁을 꾸리자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이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북미의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그러하고, 국내에서도 전북 완주군의 성공모...

  • HERI
  • 2013.10.15
  • 조회수 79628

(이봉현의 신뢰경제) "잘못하면 회장님 서울역 노숙자 됩니다"

러시아에서 발생한 내전의 와중에 구 소련 강경파 손에 들어간 핵미사일 기지. 이에 대응해 러시아 근해로 출동한 미국 핵 잠수함 앨러바마호. 적의 어뢰공격을 받아 선체 일부가 부서지고 본토 국방부와의 통신이 끊긴 조종실...

  • HERI
  • 2013.10.08
  • 조회수 66662

(이봉현의 신뢰경제) 사람도 자연도 즐거운 고딩들의 도전

경남 산청군에 있는 대안학교 간디학교의 지주환군은 올해 고3이 되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친구들과 교내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저녁 식사 뒤 기숙사 방에서 뒹굴거릴 때 한 친구가 “요즘 협동조합 창업 바람이 분다는...

  • HERI
  • 2013.10.01
  • 조회수 49117

(이봉현의 신뢰경제) 처칠이 한 일, 우리는 못하는 일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는 ‘공약 재판소’ 가 있다. 여기서는 정치인이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유권자의 제소를 받아 최고 재판관들이 심리하고 판결한다. 양형은 정치인의 임기를 단축하는 것.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 HERI
  • 2013.09.24
  • 조회수 4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