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나눔이 희망이다 _ ① 장집사와 따뜻한동행
‘장집사’ 회원 김동혁씨가 12월5일 서울 방화동의 한 아파트 주택에서 시각장애인 집주인의 요청에 따라 주방 환풍기 교체작업을 하고 있다.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장집사’ 회원 김동혁씨가 12월5일 서울 방화동의 한 아파트 주택에서 시각장애인 집주인의 요청에 따라 주방 환풍기 교체작업을 하고 있다.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리 와서 여기 좀 잡아주시겠어요?” 지난 5일 서울 방화동의 한 아파트 주택에서 주방 환풍기를 교체하던 김동혁씨가 집주인 이기택씨에게 말을 걸었다. 식탁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이씨는 천천히 일어나 김씨에게 다가갔다. 시각장애 1급인 이씨는 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김씨는 이씨의 손을 잡아 주방 환풍기의 스위치를 만지도록 했다.

“여기 스위치 있죠? 이걸로 환풍기를 켜는 거에요. 끌 때도 이걸 누르시고.” 김씨가 이씨를 굳이 부른 이유는 환풍기의 작동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씨가 혼자서도 안전하게 주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김씨는 이것저것 필요한 기능을 설명했다. 작업이 끝난 뒤 이씨는 장비를 챙겨 돌아가려는 김씨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씨는 냉장고에서 바게트 빵을 꺼냈다. “제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복지관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제빵기술도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오늘 아침에 만든 건데 가져가세요.” 이씨가 수줍게 웃으면서 김씨에게 빵을 건넸다. 김씨는 “이런 선물은 안 받을 수가 없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는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이 진행하는 ‘장집사’(장애인 집수리 사업) 프로젝트의 회원이다. 따뜻한동행이 올해 처음 시작한 장집사는 소상공인 인테리어 업체를 대상으로 회원을 모집한 뒤 집수리를 요청한 장애인의 집을 수리해주는 사업이다. 회원들은 장애인의 집을 관리하는 집사라는 뜻으로 ‘장집사’라 불린다. 올해는 서울 지역에 한정해 모집했는데 40개 업체가 응모했다. 이 가운데 35개 업체를 장집사로 선정한 따뜻한동행은 내년에는 수도권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집수리 한건당 20만원을 지원하고,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신청자가 부담한다. 20만원 가운데 재료비를 뺀 나머지는 장집사에게 인건비 명목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집수리에 들어가는 재료가 워낙 많아서 실제 장집사가 가져가는 돈은 거의 없다. 사실상 무료 봉사에 가깝다.

집수리 신청은 전화와 앱으로 받는다. 이씨와 같은 시각장애인도 휴대전화에 장착된 톡백(갤럭시)이나 보이스오버(아이폰) 기능을 이용하면 쉽게 신청할 수 있다. 장집사 앱에 가입하려면 장애인등록증 또는 장애인증명서가 필요하다. 가입이 승인되면 앱에서 직접 수리를 원하는 항목을 신청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음성녹음 기능으로 신청할 수 있고, 앱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은 보호자가 대신 신청할 수 있다. 올 한해 집수리를 신청한 장애인은 1000명에 이른다. 장집사 앱은 따뜻한동행의 활동가들이 현장 경험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고은미 대리는 “장애인분들이 앱을 사용할 때 불편한 점이 뭐고,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아이디어를 모은 뒤 개발자와 함께 앱을 만들었다. 지금도 장애인의 앱 접근성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뜻한동행은 건설업체인 한미글로벌이 2010년에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다. 건설업체의 특기를 살려 장애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해왔다. ‘장애는 몸이 아닌 환경에 있다’는 슬로건이 따뜻한동행이 추구하는 가치를 상징한다. 이광재 상임이사는 “장집사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외부 업체에 의뢰해 측정해 봤더니, 투입 비용의 2.3배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100만원을 투입하면 340만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따뜻한동행은 이밖에도 장애인들이 장애로 인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 학업과 사회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첨단보조기구를 지원하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도 실시해 정보통신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뜻한동행의 중요한 기능은 봉사활동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역할이다. 장집사 프로젝트는 숙련된 기술자들과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집수리 사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플랫폼이 활성화되려면 현장을 잘 아는 활동가가 중요하다.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장애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다. 지자체와 교회 등 종교기관, 복지법인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많지만, 현장 사정을 잘 모르면 기부 물품이나 서비스가 편중된다. 어떤 집에는 쌀 포대만 가득 있고, 어떤 집은 라면 박스만 쌓이는 식이다.

장집사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기반인 재원은 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조흥식)에서 나온다. 사랑의열매는 기업과 개인, 단체 등으로부터 기부금을 모아 전국의 3만1000개 파트너 기관들에게 사업비를 지원한다. 사랑의열매는 2021년 한해 동안 7619억원을 모금해 기초생계, 교육자립, 주거환경개선, 보건의료, 심리정서, 사회적돌봄강화, 소통과참여확대, 문화격차해소 등의 분야에 총 7104억원을 지원했다. 사랑의열매에 기부금이 많이 모일수록 장애인들의 주거환경은 점점 더 좋아진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711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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