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초고령 대한민국 신중년 시대

2부 베이비붐 세대가 여는 신중년 시대
1회 신중년층의 행복 조건

베이비붐 세대 ‘신중년’으로
학력 높고 경제적 풍요 세대
이전 세대보다 ‘삶의 질’ 관심
“5060 행복도 상승 이들 때문”

내 삶 결정할 자유
경제 안정이 중요한 전제조건
기초연금 등 소득보장책 필요
“인생 선택범위·자율성 높아져”

내 옆 있어줄 사람
가족간 관계 점차 약화 추세
행복 위해 ‘사회적 친구’ 필요
“운동클럽·평생교육 활성화를”

올해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맏형 격인 55년생부터 법정 노인 대열에 합류하는 해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년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차원의 고령화가 펼쳐질 전망이다. 신중년으로 불리는 5060세대는 이른바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모작을 넘어 3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은퇴 뒤에도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와 경제 활동에 나선다는 점에서 이전 실버세대와 뚜렷이 구분된다. 신중년층은 대략 1500만명으로 인구의 29%를 차지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공동 기획 ‘초고령 대한민국 신중년 시대’ 2부에선 급속한 고령화 추세 속에 신중년층의 삶의 질과 행복 조건, 사회·경제 활동, 지역사회와의 공생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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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관련 자영업을 하는 허지철(57)씨는 1963년생으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다. 충남 서산의 산촌 마을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교육열 높은 부모 덕분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느라 졸업이 늦었지만 고도성장기 일자리가 넘쳐나던 시절이라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30대 후반에 시작한 사업 덕택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요즘 허씨의 인생 화두는 ‘행복’이다. 부모님 부양과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면 그 역시 불안하다. 출판업이 불황인데다 모아둔 자산도 없다. 그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헌신한 부모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다. 은퇴 이후의 인생 2막을 위해 조류해설사를 준비 중이다. 수입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행복은 한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 태도, 가치를 보여주는 종합 지표다. 행복이라는 렌즈로 비춰본 우리 사회는 늘어난 경제적 풍요에 견줘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한참 낮다. 특히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도가 낮아져 허씨가 속한 신중년층의 행복도는 전체 연령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2019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행복도가 가장 높은 연령층은 30대로 6.7점이었고 60대는 6.2점으로 가장 낮았다. 2018년 조사에서도 비슷해 30대(6.7점)에서 정점을 찍고, 나이가 들수록 낮아져 60대는 6.5점으로 전 연령 중 가장 낮았다. “귀하는 어제 어느 정도 행복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행복감이 가장 낮은 상태는 0, 가장 높은 상태는 10으로 응답한 결과다. ‘사회통합실태조사’는 삶의 질과 관련한 공식적인 국가지표이자 국제비교의 기준이 되는 자료로 19~69살을 대상으로 한다. 대개 경제 수준이 높은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 유소년기에 행복도가 높고 중년으로 갈수록 하락하다가 노년기에 다시 행복도가 반등하는 U자형이지만 한국은 역U자형의 독특한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흔히 노인은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 어떤 상황도 소화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와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시기라고 한다. 물론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취약한 사회안전망 탓에 실업, 노후, 질병 등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사회적 위험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50~60대의 노후 불안감이 유독 높고 행복도가 낮은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깔려 있다.

지난 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50~60대 신중년층의 평균 퇴직 연령은 50.5살이지만 근로활동에 참여 중인 신중년의 근로 지속 희망 연령은 평균 69.2살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신중년의 경제활동 실태와 향후과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인데, 특히 50대는 89.3%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강력한 근로 욕구는 일을 통한 자기실현 욕망과도 관련되지만,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현실도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공적 소득보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을 그만두고 난 뒤의 사회·경제적 공백을 개인이 전부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삶의 안정감이 확보돼 국민 전체는 물론 노인의 행복도도 높다. 국제기구 행복지수 조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덴마크를 취재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펴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자유”를 덴마크 사회 행복의 비결로 꼽은 바 있다.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가능한 것은 국민들이 소득의 많은 부분을 기꺼이 세금으로 지불하기 때문이다. 사회제도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한다는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행복은 사회의 질과 깊은 관련을 지닌다는 게 행복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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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근래 들어 한국인의 행복도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도 잡힌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함께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의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최유석 교수에 따르면 50~60대 신중년층의 행복도는 점차 상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연령층과 비교해도 상승폭이 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3년에는 20대의 행복감이 6.54점으로 가장 높았고 전 연령 중 가장 낮은 60대는 6.0점으로 두 집단의 격차는 0.54점이었다. 하지만 2018년에는 모든 연령층에서 행복도가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행복감이 가장 높은 30대와 60대의 격차도 0.25점으로 2013년에 견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2019년에는 60대의 행복감이 6.2점으로 다시 하락하기도 했지만 50대는 6.6점으로 전년도 수준을 유지했다. 최 교수는 “이 기간 동안 모든 연령층에서 행복감이 증가했지만, 특히 50대 신중년층의 행복도가 크게 상승했고 60대도 과거에 비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며 그 이유로 “기초연금, 국민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 강화되면서 소득보장이 과거보다 두터워졌다”는 점을 짚었다. 경제적 안정은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세적 물질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소득은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평가다.

신중년층의 상당수가 베이비붐 세대로 교체되고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이들이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는 고도성장기로 자산 축적과 안정된 소득을 위한 기회가 이전 세대보다 컸다. 최 교수는 “앞 세대보다 학력도 높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베이비붐 세대가 신중년층에 진입하면서 이 연령층의 행복감도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며 “베이비붐 세대는 삶의 질을 중시하고 행복에도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근래 들어 ‘인생 3모작’ 지원으로 특징지어지는 신중년 정책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저출생으로 생산인구가 줄어들면서 신중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 시대, 신중년층의 삶의 질과 행복이 담보될 때 우리 사회가 져야 하는 부양 부담도 줄고 국가 전체의 행복도도 높아질 수 있다.

신중년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사회통합실태조사’를 통해 신중년층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살펴보면 소득, 가족관계, 건강, 주거 등 여러 요인이 꼽힌다. 이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사회적 관계 요인인데, 아플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울할 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수가 많을수록 행복감도 높아졌다. 최 교수는 “1인가구가 증가하고, 가족 간 관계가 점차 약화되는 추세는 행복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약화된 가족의 지지를 대신할 수 있는 사회적 지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구체적인 정책방안으로 활동성이 강한 신중년층을 위해서는 운동클럽 등 취미생활을 지원하고 평생교육원의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했다. 고령의 노인이나 질병으로 거동이 어려운 노인을 위해서는 주간보호센터나 복지관의 서비스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또한 행복도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귀하는 자신의 삶을 결정함에 있어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생각하십니까”로 측정한 ‘실질적 자유’는 일정 수준의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60대는 20대와 함께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높다고 응답한 층에서 행복도도 높았다. 60대는 은퇴로 인한 소득 감소, 20대는 일자리 부족과 취업난으로 경제적 불안정성이 높은 연령층이라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경제적 위험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소득 보장은 실질적 자유와 행복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최 교수는 “기초연금 등 소득보장정책이 강화되면서 노후의 삶이 안정되고, 그 결과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와 자율성도 높아졌다”며 “사회안전망 강화 등 사회보장정책이 행복과 어떤 연관을 지니는지, 왜 중요한지 정당성을 입증하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신중년층은 격동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세대로, 노인 세대와 거리를 두는 경향도 나타난다. 지난 2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중년의 노후 인식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신중년층의 52.6%는 노인의 연령 기준을 ‘70~74살’로 생각한다고 답했고 ‘75~79살’이라는 응답도 20.8%나 되었다. 기초연금, 지하철 경로 우대 등 주요 복지제도가 65살을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신중년층의 약 3분의 2는 이보다 노인 기준을 더 높게 잡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노인 세대와 대비되는 신중년층의 고유한 특성에 주목하는 섬세한 정책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신중년층의 성격과 정책적 과제에 주목해온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신중년을 노년층, 청년층과 구분되는 단일한 연령층으로 보는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며 “생애주기상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고 자기실현을 위한 인생의 결실기일 수도 있기에 이들이 잉여 세대, 잔여 세대로 전락하지 않고 주역 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여건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개인의 행복 증진이라는 실존적 차원에 더해 국민의 행복감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행복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낮아 혁신이 가능하며 경제 활력도 높아진다. 불평등과 격차가 적고 신뢰가 뒷받침되어 사회의 질은 물론 개인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베이비붐 세대가 주축이 된 신중년층은 민주화와 정보화 등 사회변동을 이끌어온 세대다. 이들이 노인이 되면 가족관계, 여가활동, 노동에 대한 태도도 바뀌고 사회 전체도 변화할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신중년층의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것이 우리 사회 고령화 문제 해결의 관건일 것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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