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가디언> 화석연료기업 광고 중단 선언
세계 400여개 신문·방송 공동전선 구축
<비비시> 기후변화 회의론자 인용 거부
한국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집중 비판
현 정부 들어 언론 논조 반전, 왜곡 늘어
에너지·산업전환 세계추세와 거꾸로 가기

지구기온 상승을 산업화가 시작된 시점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란 경고가 권위있는 기후과학자들에게서 나오자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활성화하고 있다.  서울그린캠퍼스 대학생 홍보대사와 서울 소재 대학생 등이 지난해 6월4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그린캠퍼스 실천을 촉구하는 ‘온실가스 감축, 고(Go)! 그린캠퍼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광장에 펼쳐진 ‘1.5℃’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의미다.  연합뉴스
지구기온 상승을 산업화가 시작된 시점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란 경고가 권위있는 기후과학자들에게서 나오자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활성화하고 있다. 서울그린캠퍼스 대학생 홍보대사와 서울 소재 대학생 등이 지난해 6월4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그린캠퍼스 실천을 촉구하는 ‘온실가스 감축, 고(Go)! 그린캠퍼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광장에 펼쳐진 ‘1.5℃’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의미다. 연합뉴스

영국의 진보언론 <가디언>은 지난 1월 말 석유,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회사가 ‘탄소중립’(배출한 만큼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함께 밝혔다. <가디언>은 독자의 신뢰에 바탕을 둔 후원제에 힘입어 온라인 뉴스 유료화 없이 지난해 약간의 흑자를 냈지만, 화석연료 기업 광고 중단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신문사 전체 매출에서 광고가 여전히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약 8억파운드(약 1조23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가디언>의 지주회사 스콧트러스트 재단은 이미 2015년부터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했다.

보도에서도 <가디언>은 9명의 기자를 배치해 기후변화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기사 작성의 지침인 스타일북을 개정해, 기후변화(climate change)란 말 대신 ‘기후위기’(climate emergency),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대신 ‘지구가열화’(global heating)란 단어를 쓰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기후위기와 연관된 문제들은 체계적이며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요구한다”며 “우리는 미래 세대의 편에 서고, 인류 보존을 위해 두려움 없이 나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 이 화석연료 기업의 광고를 더 이상 싣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의 지난 1월 29일 기사.    <가디언> 누리집
<가디언> 이 화석연료 기업의 광고를 더 이상 싣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의 지난 1월 29일 기사. <가디언> 누리집

최근 기후변화가 환경을 넘어 경제·사회의 틀을 흔드는 힘으로 다가오자 세계 언론의 보도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 주요 대책인 에너지 전환에 대한 뉴스를 더 다양하고 충실하게 보도하고, 용어도 위기의 실상에 부합하는 말로 바꾸어가고 있다. ‘탈원전’ 공방에 휘말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언론의 뭇매를 맞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 뉴스채널 <시엔엔>은 지난해 9월, 10명의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주자를 차례로 불러 기후변화 정책 간담회를 열고, 7시간에 걸쳐 중계했다. <시엔엔>은 관련 기사에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가 건강보험이나 총기규제보다 기후변화를 더 중요한 이슈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후변화가 2020년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논리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파이낸셜 타임스>도 지난해 9월 기후변화에서 뉴스의 역할을 짚어보는 9분짜리 ‘기후변화: 내가 무슨 말을 하길 원하는가?’라는 동영상을 발행했다. 2050년에 뉴스를 진행하는 가상의 앵커로 등장한 배우 니컬라 워커는 “과학적 사실을 팝송 부르듯 했으면 지금쯤 합창에 이르렀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고 반성한다.


언론의 인식 변화는 기후변화에 대한 협업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4월 세계 주요 신문, 방송, 통신, 잡지사는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라는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미국의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와 <더 네이션>이 주도한 이 단체는 온라인 누리집을 만들어 뉴스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미주의 <블룸버그>, <시비에스 뉴스>, <로이터> 등과 아랍의 <알자지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을 포함해 참여 언론사가 현재 400여곳에 이르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는 독자가 10억명에 이른다고 이 단체는 밝혔다.


언론의 이런 변화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10월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온다고 경고한 이후 본격화됐다. 위기는 분명해 보이지만 한두명이 대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구성원의 의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언론이 그간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공론장의 책무를 다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00여개 세계 신문, 방송, 통신사가 기후변화 보도를 위해 연합한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 누리집
400여개 세계 신문, 방송, 통신사가 기후변화 보도를 위해 연합한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 누리집

정치·경제적 이해에 얽힌 기후과학


사실 기후변화 보도는 과학적인 외양과 달리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는 영역이었다. 199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의 큰 정유, 가스, 석탄회사들이 보수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곳에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연구 결과가 나와 기후변화는 논쟁적인 사안이 됐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불리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아직도 미국인의 38%(2018년 조사)가 기후변화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관련된 과학자의 97%가 기후변화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지난 30년간 언론은 기후변화가 너무 기술적이고 정치적이며, 칙칙한 소식이란 이유로 보도를 소홀히 했다. 보도하더라도 ‘객관성’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했다. 그 결과 한 줌에 불과한 회의론자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언론은 그런 의도적 균형 잡기와도 결별하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는 2018년 10월 보도국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동안 기후변화 보도에서 너무 많은 잘못을 범했다”고 후회하며 “노골적으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을 불편부당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뉴스에 등장시킬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가디언>이 기후변화 회의론자(climate sceptic)란 말 대신 ‘기후과학 부인자’(climate science denier)로 바꾼 것도 더 이상 이런 논쟁이 불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전문가도, 그런 보도를 노골적으로 하는 언론사도 드물다. 그렇다고 언론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맞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없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는 11일 “외신을 인용해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다른 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보도하거나, 탄소배출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조처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이란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 한때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산화탄소 1톤당 현재 2달러인 탄소세를 2030년까지 75달러로 높여야 한다고 파격적으로 촉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기후변화 앞에서 꾸물거리는 나라는 경제와 산업이 휘청거릴 것이란 국제적 인식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한 태양광 발전시설이 늘고 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원들이 안산예술의전당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안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근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한 태양광 발전시설이 늘고 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원들이 안산예술의전당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안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쟁이 된 국내 에너지 전환 보도

최근 언론보도의 특징은 기후변화의 주요 해법인 에너지 전환(태양광, 풍력 등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증가한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생들이 지난해 하반기에 <한겨레>,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 이념지향이 다른 5개 신문 보도를 분석해 내놓은 ‘프레임으로 본 한국언론의 태양광 발전에 대한 보도 분석’ 논문을 보면, 이명박 정부 첫 2년간은 태양광에 대한 긍정적인 논조의 기사가 부정적인 기사보다 3배 이상 많았고, 박근혜 정부 2년 동안에도 긍정적 논조의 기사가 부정적 기사보다 5배 많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2년 동안에는 긍정적 기사 127건, 부정적 기사 218건으로 역전됐다. 특이한 것은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태양광 발전에 긍정적인 논조를 유지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부정적 기사가 늘어난 데 대해 이 논문은 인터뷰한 전문가 다수의 견해라며, 현 정권이 태양광 발전을 탈원전의 대안으로 제시함에 따라 “태양광에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졌고 “비효율성, 환경성, 지역 수용성 등 이슈에 휘말렸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논문도 균형 있게 언급한 것처럼 “보도 총량과 부정적 보도의 비중이 증가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드라이브에 따른 시행착오 과정에 불가피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보수 언론, 경제지의 보도에는 의도성 짙은 왜곡과 오보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5월 <조선일보>가 독일 <슈피겔>을 인용해 재생에너지의 효율 부족으로 독일의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고 한 보도가 한 예이다. <슈피겔>의 보도는 탈원전에 대한 정부의 조처가 미온적이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좀 더 과감한 에너지 전환을 촉구한 것이었는데, <조선일보>가 보도의 취지를 반대로 인용했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해외 석탄발전에 올인하다 탈석탄 역풍을 맞아 경영이 악화된 두산중공업의 어려움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리는 등 의도성 짙은 오보들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환경단체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오보를 바로잡는 보도자료를 수십 차례 냈지만 해당 언론사는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학자 존 쿡(조지메이슨대)에 따르면 (에너지 전환과 같은) 기후변화의 해결책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속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기후변화 관련 5대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중 하나이다.

지난해 9월 국제 기후 파업 주간에 서울 종로1가 사거리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기후위기가 다가오면 생존의 위협이 다가온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해 9월 국제 기후 파업 주간에 서울 종로1가 사거리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기후위기가 다가오면 생존의 위협이 다가온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글로벌 그린 뉴딜>에서 전력, 운송, 건물 등 “경제의 핵심 분야들이 빠르게 화석연료로부터 떨어져 나와 재생에너지와 결합해 3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 유럽은 그린 뉴딜이란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환경보전과 일자리를 동시에 잡으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언론의 기후변화 인식 부족과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정파적인 공격은 정부와 기업의 발을 묶어 한국을 기후 패러다임 변환의 후진국으로 만들 수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성환 의원실(민주당) 이진우 보좌관은 “세계적으로 풍력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지만 국내는 아직 시장조차 형성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 업계가 재생가능 에너지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려면 초기에는 정부가 산업 육성을 주도해야 하는데, 일부 언론이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양산해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은 1990년대 재벌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태만히 하고, 국제금융의 현실에 무지해 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가 닥치는 데 일조했다. 정파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 사회적 패러다임 전환의 발목을 잡는다면 똑같은 실책을 반복할 수 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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