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로마노스 ‘클레너지’ COO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 활용한
에너지 플랫폼 ‘파일론 네트워크’ 소개
“윤리적 소비자 정치력 높이는 게 목표”
지난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 사회적 경제 국제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스페인의 에너지 스타트업 ‘클레너지’의 마르코스 로마노스 최고운영책임자.
지난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 사회적 경제 국제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스페인의 에너지 스타트업 ‘클레너지’의 마르코스 로마노스 최고운영책임자.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전세계 국가들의 선택이 아닌 의무다. 에너지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에너지 피라미드의 맨 하위 층인 지역 재생에너지 협동조합과 개별 소비자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스페인의 에너지 스타트업 ‘클레너지’(Klenergy)의 마르코스 로마노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중앙집권적이고 일방적인 현재의 전력 공급 체계를 바꾸기 위해선 에너지산업 거버넌스부터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해 지난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 사회적 경제 국제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로마노스 최고운영책임자는 “오랫동안 에너지 이권을 차지해온 일부 전력회사, 정부 중심의 대규모 전력체계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며 “클레너지는 지역 재생에너지 협동조합과 조합원, 소비자와 같은 지역 내 윤리적 에너지 소비자들을 연결해 지역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소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기업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클레너지가 윤리적 에너지 소비자들이 에너지 시장 거래에 적극 참여하게 만드는 방안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점이다. 개별 소비자들 혹은 소규모 재생에너지 협동조합들 사이의 모든 거래 내역을 네트워크 장부에 실시간으로 기록·공유하게끔 함으로써 거래 투명성을 최대한 높인 것이다. 중간 거래 비용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전력회사들이 소비자에게 전가했던 ‘묻지마 비용’의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린 셈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네트워크 내에서 이뤄진 개인 거래 정보가 분산적으로 기록되고 임의로 변경할 수 없어 보안성을 확보하는 장점도 있다.

마르코스 로마노스 클레너지 최고운영책임자가 스마트폰에 탑재된 에너지 교환 플랫폼 ‘파일론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르코스 로마노스 클레너지 최고운영책임자가 스마트폰에 탑재된 에너지 교환 플랫폼 ‘파일론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게 클레너지의 ‘파일론(Pylon) 네트워크’ 프로젝트다. 가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기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생산량을 모니터링하고 전자제품의 전력 사용량을 조절하는 원격 전력 점검 및 관리 장치인 스마트미터를 갖추고 있다. 클레너지는 스마트미터를 생산하는 업체 4곳과 업무제휴를 맺고, 소비자들이 기존 스마트미터에 블록체인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도록 했다. 블록체인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스마트미터는 개별 가정의 전력 생산량과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네트워크에 기록하고, 소비자들이 정보를 검색·공유하도록 지원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력회사의 송전망·배전망 사용권을 가진 지역 재생에너지 협동조합들도 개별 가정의 에너지 정보를 공유하고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재생에너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에너지를 사고파는 에너지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 바로 파일론 네트워크의 뼈대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없진 않다. 로마노스 최고운영책임자는 “블록체인의 가장 큰 숙제는 참여자가 늘어났을 때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파일론 네트워크 프로젝트도 실시간 개인 대 개인(P2P) 지불 시스템의 안정성, 에너지 생산 및 공급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게 향후 과제”라고 밝혔다.

클레너지는 지난해 스페인 지역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고잉에너’(GoiEner)와 파트너십을 맺고 조합원 500명을 대상으로 파일론 네트워크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스페인 바스크에 위치한 고잉에너는 8900명의 조합원을 둔 스페인의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이다. 클레너지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조합원 수를 내년까지 2천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유럽 전역의 재생에너지 협동조합과 협업을 통해 시범운영에 참여하는 조합원 수를 10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윤리적 에너지 소비자들이 기존 에너지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갖춰 기후변화,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 제안 등 정치력을 갖도록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또 유럽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관련해 “지역 중심의 소규모 협동조합과 개별 소비자들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지역 단위로 추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에너지 산업의 문제점과 클린에너지의 필요성을 아는 윤리적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지자체 혹은 지역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교육도 중요하다.”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고다.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