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도쿄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월17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대행(윤 대통령 왼쪽),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윤 대통령 오른쪽) 등 한·일 경제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도쿄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월17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대행(윤 대통령 왼쪽),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윤 대통령 오른쪽) 등 한·일 경제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4대그룹이 결국 전경련으로 회귀했다. 7년 만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정경유착 결별과 전경련 탈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는 비난이 거세다. 전경련도 해체 여론을 모면하려고 내놓은 쇄신안마저 공염불에 그치고도, 4대그룹 복귀를 요청하는 후안무치를 보였다. 모두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당할 일이다.

하지만 놓쳐서는 안 될 게 또 있다. 전경련 부활과 4대그룹 복귀의 중심에 살아 있는 정치권력이 도사리고 있는 점이다. 4대그룹은 사석에서 “전경련 복귀는 ‘윤심’인데, 거스를 수 있겠느냐”고 토로한다. 윤석열 정부가 공식적으로 4대그룹 복귀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뒤에는 ‘윤심’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 회장은 6개월 전 등장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전경련 62년 역사에서 비기업인 회장은 경제관료 출신인 유창순 딱 한명이었다. 그것도 30년 전 일이다. 김병준은 정치학을 전공한 교수 출신 정치인이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와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용산과 사전 협의 없이 전경련행을 결정했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전경련 안에서조차 ‘와이에이치(YH·용와대) 대리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병준 체제의 전경련 행보는 그 말이 억측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윤 정부는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빠진 ‘강제동원 배상 제3자 변제안’을 앞세워 한-일 정상회담을 강행했다. 이때 전경련은 일본 경제계와 손잡고 적극적으로 도우미 역할을 했다. 역사·외교 문제가 주된 이슈인 한-일 관계에 경제단체가 앞장선 것은 전례가 없다. 김 회장은 물러난 뒤에도 상임고문을 맡는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김 고문이 용산을 대리해서 ‘상왕’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경유착의 일반적 형태는 기업이 정치권력에 검은돈(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정치권력이 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경련은 검은돈은 아니지만, 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재벌을 동원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윤 정권은 반대급부로 비리 경제인 특별사면, 법인세 인하, 반도체 투자세액 공제 확대 등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정경유착의 본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전경련은 태생부터 박정희 군사정권과 비리축재 혐의 기업인 간 정경유착의 산물이다. 간판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지 의문이다. 류진 신임 회장은 “부끄러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해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그는 20여년간 전경련 부회장을 맡아왔다. 정경유착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사 윤석열’은 2017년 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국정농단세력과 재벌의 기소를 주도했다. 재판부는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정경유착)”이라며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전경련을 활용해서 ‘권력주도형 정경유착’을 위해 판깔기를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명백한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검사 윤석열’에게 기소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뢰의 표상이어야 할 대통령의 자기부정은 역사적 퇴행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는 2023년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같다.

4대그룹이 현실적으로 정권의 뜻을 거스르는 게 쉽지 않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전경련 복귀의 명분이 없다. 스스로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각 기업의 내부통제장치가 강화되어 과거와 같은 정경유착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각 기업의 전경련 복귀 절차가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 신뢰하기 힘들다. 에스케이·현대차·엘지는 삼성 뒤에 숨고,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뒤에 숨었다. 준감위는 정경유착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각사 이사회와 경영진에 최종 결정을 미뤘다. 하지만 전경련에 복귀한 4개 삼성 계열사 중에서 이사회에서 어떤 논의와 결정이 이뤄졌는지 투명하게 밝힌 곳은 없다. 이게 무슨 코미디 시리즈 같은 일이란 말인가?

상당수 보수언론은 4대그룹의 전경련 복귀를 진작부터 응원했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 비판 여론에 대해 “정경유착은 낡은 프레임”이라고 공격하고, 전경련을 향해 “자유시장 경제의 파수꾼이 되라”는 시대착오적 주문까지 한다. 7년 전 전경련의 정경유착을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은 언론이 맞는지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전경련 부활과 4대그룹의 복귀야말로 윤석열-재벌-보수언론의 ‘자기부정’ 카르텔 아닌가?

jskwak@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056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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