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외국인 대학생 유치를 위해 온라인 한국유학박람회를 열었다.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은 2004년 교육부가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6만7천여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학생 수가 늘어난 데 걸맞게 교육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립국제교육원 누리집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외국인 대학생 유치를 위해 온라인 한국유학박람회를 열었다.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은 2004년 교육부가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6만7천여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학생 수가 늘어난 데 걸맞게 교육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립국제교육원 누리집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3년 만에 코로나 부담을 털고 개강한 대학가에 봄의 생기가 돈다. 그런데 비대면 수업을 할 때는 가라앉아 있던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바로 외국인 유학생 급증에 따른 수업과 학생 지도의 난맥상이다.

대구의 ㄱ 사립대 사회계열 대학원 수업. 강의실에서 얼굴 보고 하는 수업인데도 말이 아닌 ‘필담’이 오간다. 교수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열어 수업 내용을 적으면 학생들은 얼른 번역기를 돌려 무슨 뜻인지 파악한다. 질문이나 대답도 번역기를 돌려 한국어로 올린다. 이 수업은 중국, 중앙아시아 등에서 온 유학생 3명을 포함해 5명이 듣는데 유학생이 한국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담당 교수는 “학생이 영어라도 하면 영어 강의를 하겠는데, 그도 어려워 궁여지책을 냈다”며 “그래도 외국인 학생들이 있어서 대학원이 유지된다”고 말한다.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에 있는 ㄴ 사립대 경영대학은 학부 정원에 육박하는 수의 유학생이 정원외로 입학했다. 대학 전체로 올해 외국인 학생 입학이 부쩍 늘었는데, 취업을 고려해서인지 경영대에 특히 쏠렸다. 교수, 학생 모두 난감한 상황이다. 한 교수는 “맡은 과목 중 유학생이 80% 이상인 수업도 있다”며 “그간 토론식으로 수업을 이끌어왔는데, 질문도 이해 못 하는 유학생이 많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했을 뿐 한국 대학에 오는 유학생은 해마다 늘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학에 다니는 유학생(학위과정·교환학생)은 16만7천여명이다. 1년 사이 9.6% 증가한 것인데, 입국이 자유로워진 올해는 더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대는 학부의 10~20%, 대학원은 90%까지 유학생이 점유하고, 서울의 큰 대학에도 2천~6천명씩의 유학생이 있다. 나라별로는 중국(40.4%), 베트남(22.7%), 우즈베키스탄(5.2%), 몽골(4.4%), 일본(3.4%) 순이다.

한국이 선진국이고, 음악·드라마 등 문화의 매력도 강해 한국 대학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많다. 하지만 재정을 둘러싼 대학과 교육부의 일치된 이해를 빼놓으면 반쪽짜리 설명에 그친다. 학령인구가 줄고 등록금도 2011년 이후 동결되다시피 하면서 대학은 정원 충족과 재정난 타개의 돌파구를 유학생 유치에서 찾았다. 교육부도 ‘옆문’을 열어줬다. 2023년까지 유학생 20만명 유치를 내걸고 유학생의 정원외 입학을 허용하고, 유치 실적을 대학평가에도 반영했다. 

유학생이 늘어나는 것을 색안경 끼고 볼 일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인 캠퍼스가 한층 건강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 이들이 졸업 뒤 한국에 남아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고, 귀국해서는 ‘지한파’로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 ‘공공외교’가 따로 없다. 실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논문을 쓰는 외국인 학생도 많다.

문제는 공부할 준비가 안 된 학생까지 마구잡이로 받아 적응 실패, 중도 탈락, 불법 체류 등의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지방의 일부 대학은 정원 미달이 현실이 되자 총장 등 보직 간부가 겨울방학 동안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을 돌며 학생 유치에 나서는 추세다. 몇몇 대학은 브로커를 끼고 학생을 모집해 온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교육부는 한국어능력시험 3급 등 입학 기준을 제시하지만, 이 정도로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고, 이마저 권고 사항이어서 샛길이 많다. 실상은 적지 않은 유학생이 한국어 실력을 거의 늘리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다.

일부 대학은 수업 내용을 필기해 전해주는 한국 학생 도우미를 지정하고, 유학생만 모아 한국어와 기초 교양 수업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유학생이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으면 뾰족한 수가 없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수업 중에 스마트폰만 보고, 시험은 문제를 반복해 써내고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과는 조별 과제에서 협조가 안 돼 갈등이 증폭된다. 이러다 보면 자칫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자랄 수 있다. 유학생도 ‘게토화’되어 지내는 생활이 즐거울 리 없고, 한국에 대한 불만을 안고 귀국할 수도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에 생존의 문제다. 정원은 47만명인데 입학 자원은 올해 40만명, 내년 39만명으로 감소한다. 서울의 큰 대학도 이젠 유학생 유치에 팔을 걷고 있다. 이렇게 뽑고 책임지지 않는 것을 ‘대학의 국제화’라 포장할 수 없다. 교육부는 체계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bh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55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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