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이 법 제정을 열망하는 사회적 경제 단체와 사회적 경제인들이 ‘시민행동’을 결성하는 등 수년간 입법 청원 활동을 벌였다. 사진은 ‘시민행동’에 참여한 사회적 경제인들이 2018년 2월 국회에서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 시민행동 제공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이 법 제정을 열망하는 사회적 경제 단체와 사회적 경제인들이 ‘시민행동’을 결성하는 등 수년간 입법 청원 활동을 벌였다. 사진은 ‘시민행동’에 참여한 사회적 경제인들이 2018년 2월 국회에서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 시민행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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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논설위원

격랑이 몰아치는 새해 대선 정국에 희미한 봄소식 같은 흐름이 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소셜 벤처 등에 몸담은 ‘사회적 경제인’들의 오랜 숙원인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하 기본법)이 제정되리란 희망이 커지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 활동에 우호적인 정책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본법 제정이 연말부터 속도를 내고 있다. 기대와 실망을 거듭해 온 사회적 경제인들은 이번에도 ‘희망 고문’이 아니길 바라며 여의도를 지켜보고 있다.


2014년 첫 발의부터 약 8년, 19·20·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계열(유승민), 민주당 계열(신계륜, 윤호중, 강병원, 김영배, 양경숙), 정의당(박원석, 장혜영) 등 여야 의원 8명이 11차례 대표 발의했지만, 기본법은 첫 관문인 기획재정위(기재위) 법안심사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번번이 가로막았고, 민주당은 이를 돌파할 결기가 부족했다. 현 정부에서도 기본법 제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민주당의 21대 총선 공약이었지만 별 진척 없이 대통령 임기 종료를 맞는가 싶었다.

변곡점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은 그달 1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협동조합총회 개막식에서 기본법 등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시 불을 지폈다. 며칠 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정부의 역할과 지원 체계를 혁신하겠다”며 국회에 계류된 기본법 통과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 8일 기재위를 단독소집해 기본법과 노동이사제가 규정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등 4개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국회법에 따라 최장 90일의 조정을 거쳐 기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로 갈 수 있는 우회로를 튼 것이다. 하지만 기본법과 노동이사제에 반대해 온 국민의힘은 6명의 위원 중 자기 몫 2명을 추천하지 않았고, 안건조정위도 공전했다.

의외의 곳에서 돌파구가 열렸다. 1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한국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찬성하겠다고 급선회한 것이다. 후보의 약속을 지켜야 하게 된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원 2명을 추천했다. 새해 들어 4일 열린 2차 회의에서 여야는 노동이사제 관련 법안에 먼저 합의했다. 기본법 등 3개 법안은 조정을 더 해나가기로 했다. 장담은 이르지만 조정위원 구성이 기본법 찬성 4명, 반대 2명이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도 표결로 가결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이 대선 이전 단독통과를 주저해 시간 끌기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사회적 경제인들 사이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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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는 3만개에 이르는 사회적 경제 기업이 존재한다. 이들은 장애인, 고령자, 경력단절 여성 등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 자원 순환 등을 통해 시장과 국가가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를 푸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이들은 고용 조정을 자제하고 수익을 재투자하는 등 취약계층의 버팀목 노릇을 해냈다.

기본법은 명확하고 통일된 법적 근거를 만들어 좀 더 체계적으로 사회적 경제를 지원·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도 개별법에 의해 협동조합은 기재부,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가 관리하고 있지만, 부처별 칸막이 행정의 문제가 있고 지방으로 갈수록 행정 및 예산 집행의 비효율성이 심하다. 행정안전부가 관장하는 마을기업이나 중소벤처기업부가 관장하는 소셜벤처는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다.

발의된 기본법안들은 대동소이한데, 우선 사회적 경제 발전을 위한 5년 단위 기본계획을 세우고 각 부처와 지역이 이에 조응해 매년 시행계획을 만들도록 했다. 또 정책 수립과 통합적 추진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민관 거버넌스로 대통령 직속 ‘사회적 경제발전위원회’를 두고, 기재부 산하에 ‘한국사회적경제원’을 실행기구로 설립하도록 했다. 사회적 경제의 취약점인 금융 지원을 위해 사회적 금융을 활성화하고 기금도 둘 수 있도록 규정했다. 공공기관의 구매에서 일정 비율을 사회적 경제 제품으로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조항도 있다.

사회적 경제는 시장의 냉혹함과 국가 주도 복지 의존성을 모두 완화하는 대안이어서 선진국들도 힘을 기울여 육성하고 있다. 물론, 기본법에 반대하는 야당의 우려도 타당한 면이 있다. 정부의 역할이 과도해지면 사회적 경제 조직의 자생력과 혁신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법 제정 과정에서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사회주의 경제’와 같은 논리를 계속 고집하면 웃음거리만 되는 것은 국민의힘도 잘 알 것이다. 기본법 첫 발의를 유승민 의원이 하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67명이 공동발의를 것만 봐도 이 법은 원래부터 여야 모두의 법안이었다.


한겨레에서 보기 : onebyone.gif?action_id=9975c5eaa06f67e874df90f2ae48093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62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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