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요즘 기업인을 만나면 대선 후보에 대한 재계 시각을 물어본다. “그냥 납작 엎드려 있다”는 의례적 답변이 많다. 구설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보신성’ 대응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기업인들은 조심스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고 귀띔한다. 재벌은 당연히 ‘친기업 성향’의 보수정당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다.

윤 후보에 대한 재벌의 거부감은 검사 시절 경력과 관련이 깊다. ‘특수통’인 윤 후보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대검 중수부에서 굵직한 기업 수사를 다수 맡았다. 당연히 악연으로 얽힌 재벌이 한둘이 아니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 때는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을 맡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재차 영장을 청구했다. 2020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때는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를 권고했으나 검찰이 무시했는데, 당시 윤 검찰총장의 의지가 작용했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에는 에스케이(SK) 최태원 회장 형제를 횡령혐의로 기소했다. 2006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시절에는 중수부에 파견돼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했다. 윤 후보가 정몽구 회장 구속에 부담을 느끼던 검찰총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내밀며 관철했다는 일화가 있다.

윤 후보는 아마도 재계 1~3위 총수들을 모두 구속한 유일한 검사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역으로 군림해온 재벌을 수사하면서 눈치를 보거나 타협하지 않은 드문 사례이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재벌이 꺼림칙하게 여길 수도 있겠구나 싶다. 삼성이 특히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최근 윤 후보는 “기업인을 범죄인 취급하는 정부가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에 반대하는 재계를 편들었다.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제 등 (중략) 비현실적인 제도는 철폐하겠다”고도 했다. 2018년 김용균씨가 참변을 당한 뒤에도 산재 사망이 줄지 않고, 세계 최장의 살인적 근로시간이라는 오명도 여전한 현실에서 부적절한 발언이다. 윤 후보가 “나는 친재벌·친기업입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라고 ‘구애 작전’을 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권 정당에 따라 경제정책이 달라진다. 하지만 재벌이 친기업인 보수야당의 후보를 꺼리는 것은 국가나 기업에 대한 걱정보다 총수에 다시 칼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재벌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눈치보지 않으려면 총수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게 근본 해법이다.

하지만 쇄신은 말처럼 쉽지 않다. 최근 삼성전자 대표이사 3명이 동시에 교체됐다. 보수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이 “위기 극복과 뉴삼성”을 위해 “파격인사라는 승부수”를 던졌다고 대서특필했다. 이 부회장이 해외출장 귀국길에 했다는 “냉혹한 현실을 봤다”는 발언도 크게 부각시켰다.

삼성이 지난 5년 간 뇌물공여·회계부정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한 불법·편법 행위 때문이다. 위기를 초래한 책임자가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물갈이 인사를 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과 어긋난다. 이 부회장은 2017년 구속기소 당시 경영승계와 뇌물공여를 주도한 미래전략실을 쇄신 명목으로 해체했다. 하지만 ‘미니 미전실장’으로 불리는 정현호 사업지원TF장은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권한이 더욱 강화됐다. 모두 쇄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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