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가치 추구하는 ‘진짜’ 기업 찾으려면
‘임팩트’ 평가하는 객관적 척도 필요
진정성 있는 투자·중개기관이 나서
진짜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주거, 환경, 보육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금융 사업을 위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가 지난 2017년 발족했다. 연합뉴스
주거, 환경, 보육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금융 사업을 위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가 지난 2017년 발족했다. 연합뉴스

20211007501045.jpg

모든 투자는 회수를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자선이나 기부다. ‘임팩트 투자’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 역시 수익을 추구한다. 착한 기업의 활동이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투자가 이루어진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투자를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는 가치와 수익을 함께 도모하는 건 불가능한 게임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착한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공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시장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건강, 물, 청정에너지, 교육, 의료, 돌봄, 일자리, 주거, 금융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가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들도 변하고 있다. 사회와 환경을 도외시하고 이윤만 추구하는 존재로 인식되면 언제든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CSR, CSV를 지나 ESG가 새로운 기업 행동 표준(new normal)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기업들은 좋든 싫든 지속가능 보고서를 써야 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사회와 환경에 어떤 기여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등장한다. 실제로는 사회와 환경에 관심이 없으면서 마치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처럼 꾸미는 행위, 이른바 ‘임팩트 워싱’(impact washing)에 대한 문제다. 사회·환경적 가치는 상대적이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구별하는 객관적 척도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납득할만한 수준의 국제 표준을 만들지 못했다.

향후 5년 이내의 위협요인 설문 분석 결과(자료: GIIN Annual Impact Investor Survey 2020)
향후 5년 이내의 위협요인 설문 분석 결과(자료: GIIN Annual Impact Investor Survey 2020)

임팩트 투자자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건 기우가 아니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자 단체인 GIIN이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향후 5년 이내 가장 큰 위협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압도적 다수가 임팩트 워싱을 꼽았다. 2위가 임팩트 증명의 어려움, 3위가 임팩트 비교의 어려움, 4위가 임팩트 측정표준 결여다. 모두 연결된 주제들이다.

사회·환경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유수의 평가기관들이 이 문제를 풀어보려 노력했으나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임팩트 투자·중개기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은 근접한 곳에서 누가 진짜이고 가까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투자·중개 기관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십 여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임팩트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씨앗기(seed), 발아기(start-up)를 지나 성장기(series), 성숙기(IPO)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발전 경로에 맞추어 투자와 경영지원을 돕는 중개기구들이 임팩트 생태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자본시장과 혁신기업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임팩트 시장이 크게 열리면 공공과 민간의 많은 자금이 이 영역으로 유입될 것이다. 가치 투자에 무관심하던 일반 창업투자회사(VC)와 사모펀드(PE)들이 수년 전부터 이 영역에 뛰어들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사회와 환경을 이롭게 하는 사업에 돈이 몰린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남은 과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고 진짜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무늬만 임팩트인 가짜에 돈이 흘러들어 가지 않도록 하려면 한국적 맥락의 임팩트 평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유사 기업들의 창궐을 막을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기준을 만들 수는 없다. 일단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 완성도는 경험이 쌓일수록 높아질 것이다.

임팩트란 영향력이란 뜻이고, 소셜 임팩트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임팩트를 창출하는 진짜 기업이 늘어난다는 건 그들이 내뿜는 선한 영향력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지구를 살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과 같다. 이것이 임팩트 투자가 지향하는 비전이다. 이 일은 오직 진짜만이 할 수 있다. 비슷한 건 진짜가 아니라는 말처럼, 가짜는 금방 본질이 드러난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유레카] 재벌의 ‘아빠 찬스’ / 곽정수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우리나라가 ‘청년층의 무덤’으로 전락했는데 여야 대선 후보들은 나랏빚으로 환심을 사겠다는 무책임한 대책만 내놓는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올해 상반기 청년층(15~29살)의 ...

  • HERI
  • 2021.11.25
  • 조회수 103

[유레카] 프롬프터와 소크라테스 / 구본권

말할 때 눈앞에서 내용을 띄워주는 프롬프터(자막 노출기)는 현대 정치의 핵심 도구다. 일상화한 도구는 부재 시 존재감이 드러난다. 2014년 4월 한-미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 기자의 질문에...

  • HERI
  • 2021.11.24
  • 조회수 127

수익 잔치 은행은 ‘생산적 금융’했나?…시민이 대안금융 열자

임팩트 투자 플랫폼, 사회의 미래에 투자하는 문화 조성 사회 가치 창출하는 프로젝트·사업에 돈의 흐름 이어줘 임팩트투자 플랫폼 비플러스 누리집(benefitplus.kr) “내 돈이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 쓰였다니 기쁘네요.” 온라인...

  • HERI
  • 2021.11.22
  • 조회수 95

“평생기술일 줄 알았는데…” 카센터 사장님의 ‘투잡’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대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무어의 법칙’은 디지털 세상의 속도와 변화의 폭을 규정한다. 약 24개월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가 된다는 이 법칙은 기술 발전의 속도가 지수함수라...

  • HERI
  • 2021.11.15
  • 조회수 358

지역에 사회적 금융 전문 중개기관을 만들자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지역에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 설치해 사회 가치 실현하는 기업과 사업에 투자한다면 지역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지역 밀착 금융 기관으로 발돋움 할 수 있어 수도권은 진공청소기처럼 사람과 돈...

  • HERI
  • 2021.11.05
  • 조회수 516

[아침햇발] 산업화·민주화·탈탄소화 / 이봉현

문재인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국제메탄서약 출범식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봉현|경제사회연구원장, 논설위원 대한민국은 ‘네다바...

  • HERI
  • 2021.11.05
  • 조회수 210

[유레카] 최태원과 기업가정신 / 곽정수

에스케이(SK)에서는 지난 10월 말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이오(CEO) 세미나가 끝난 뒤 격론이 벌어졌다. 최태원 회장이 폐막 연설에 ‘2030년 기준 전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 210억톤 가운데 1%인 2억톤을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

  • HERI
  • 2021.11.04
  • 조회수 316

[유레카] 항공기 사고와 소프트웨어 사고 / 구본권

1983년 9월26일 밤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소련 핵전쟁 관제센터에 경보가 울렸다. 미국으로부터 소련 본토로 5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였다. 핵탄두 탑재 전폭기를 24시간 공중 체류시키며 즉각적인 ‘상호확...

  • HERI
  • 2021.11.03
  • 조회수 179

자조 금융이 만들어내는 집단지성의 힘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미국 뉴욕시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지역밀착신협(CDCU) 활동을 소개하는 누리집(lespeoples.org) ‘보조금 24’라는 누리집이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지원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온라...

  • admin
  • 2021.10.26
  • 조회수 214

[유레카] 법조공화국 / 곽정수

한국 근대사에서 변호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구한말이다. “1906년 법무령 제4호에 의해 홍재기 등 3명이 변호사 인가증을 받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0년 뒤인 2006년 변협에 등록한 변호사가 1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 HERI
  • 2021.10.14
  • 조회수 259

[유레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에 실린 것 / 구본권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오는 21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2010년 개발이 시작된 누리호는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이 국내 기술로 이뤄졌다. 로켓 1단부는 75t급 액체엔진 4기를 묶어...

  • HERI
  • 2021.10.14
  • 조회수 290

진짜와 가짜 ‘임팩트 기업’ 구별하려면?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가치 추구하는 ‘진짜’ 기업 찾으려면 ‘임팩트’ 평가하는 객관적 척도 필요 진정성 있는 투자·중개기관이 나서 진짜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주거, 환경, 보육 등 다양한 사...

  • HERI
  • 2021.10.07
  • 조회수 243

로지, 미켈라…사고 안치는 ‘가상인간’ 모델계 대세될까

AI ‘버추얼 인플루언서’ 본격화 가상세계 익숙한 젊은층에 인기 명품모델 기용되며 높은 수익성 “과거엔 기술이 사람 따라했지만 현재는 사람이 가상인간 모방” “줄리엣·심청의 불멸은 스토리덕” 국내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

  • HERI
  • 2021.10.04
  • 조회수 393

[HERI 칼럼] 해운사 담합 면죄부 법 / 곽정수

곽정수 선임기자 미국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루스벨트 행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산업별로 ‘공정경쟁 협약’을 맺을 수 있는 ‘국가산업부흥법’을 제정했다. 과도한 시장경쟁을 막는다는 미명 아래 기...

  • HERI
  • 2021.10.04
  • 조회수 304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며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경제 기업, 소셜벤처 지원하는 지자체 기금 손실 보전 장치 부재·융자 중심 운용 문제 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하는 기업 성장 도와 엑셀러레이터가 투자자로 참여하거나 민간기...

  • HERI
  • 2021.09.23
  • 조회수 448

[유레카] 뉴 브랜다이즈 운동 / 곽정수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뉴 브랜다이즈 운동의 3총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조나단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지명자 신분), 미국 정부의 경제정책...

  • HERI
  • 2021.09.15
  • 조회수 536

[유레카] 안전하지 않은 ‘안전 극장’ / 구본권

20년 전 일어난 ‘9·11 테러’는 민간 항공기가 최고의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인시키며 항공여행의 풍경을 완전히 바꿨다. 강화된 몸수색과 알몸 스캐너를 거쳐야 하고 액체는 휴대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의 보안 ...

  • HERI
  • 2021.09.15
  • 조회수 404

살아있는 실험의 장이자 오래된 미래 ‘공제’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조상들의 상부상조 전통 담긴 ‘공제’ 정부·시장 주도 사회보장체계 형성되며 밀려나 2010년 소비자 생협 공제사업 법적 근거 마련에도 정부 무관심으로 10년간 발 묶여 소비자 피해 막기 위한...

  • HERI
  • 2021.09.09
  • 조회수 364

허드렛일 처리 ‘인간형 로봇’ 꿈…100년만에 실현될까?

일론 머스크 “내년에 시제품 공개” 성인 몸집에 짐 들고 걷는 기능도 “지루하고 위험한 일 사람대신 처리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로봇” 튜링 “사람닮은 로봇 어리석은 일” ‘범용’대신 기능별 로봇이 ‘대세’ 테슬라...

  • HERI
  • 2021.09.06
  • 조회수 388

[유레카] 집권 탈레반이 마주친 ‘새로운 적’ / 구본권

지난 15일 탈레반 지휘부는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 집무실을 점령한 사진으로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음을 알렸다. 소총을 든 무장대원들과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하는 조직원들이 함께 담긴 사진이었다. 2001년 ...

  • HERI
  • 2021.08.30
  • 조회수 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