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이재우의 산업혁신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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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퇴출 없는 산업혁신은 불가능하다

혁신은 항상 앞만 보고 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업혁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새롭게 만드는 것을 중요시하고 창업을 혁신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 나라의 경제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 기업이 유지되면서 무한정한 창업이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기존 기업에 투여된 자원들이 해체되어 새롭고 혁신적인 기업에 활용 또는 흡수되는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만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혁신 이론의 아버지인 슘페터는 혁신의 과정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한 것이다.

기업 관계자들간 암묵적 카르텔이 구조조정을 지연시킨다

파괴의 과정은 결국 기존 기업의 활동 축소, 더 나아가서는 해체, 즉 기업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이상주의적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이 도태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현실에 들어오면 존재하고 있는 기업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기업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의 저항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기업의 미래는 없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의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기업 활동의 축소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통에 대한 기업 관계자들의 두려움에 따른 저항이 일차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기업 관계자들간 이해의 균형이 자리잡고 있다.

먼저 기업 경영자의 입장으로 들어가 보자. 그들은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긍정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증 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업의 상황이 악화되어 그들에게 ‘기업 위험하지 않아요?’라고 질문을 하면 그들은 항상 지금의 어려움은 단기적인 것이고 장기적으로 기업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전망을 지지하는 여러 가지 정보와 데이터를 보여주며 구조조정을 거부한다.

다음은 그 기업에 자금을 대출한 금융기관들의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은 자신이 빌려준 자금의 회수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업 경영 상황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금융기관 경영의 현실에 들어가면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다. 금융기관에 입장에서는 자금을 대출한 기업의 어려움을 부실로 인식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지켜볼 것인지, 더 나아가서 단기적인 어려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자금 지원을 더 하여야 하는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부실로 인식한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손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은행에 입장에서 그 기업의 미래가 아직 불확실한 상황, 즉 기업의 실적이 개선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대출 자산을 부실로 인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지금의 어려움만 극복하면 된다고 판단하는 경영자의 입장을 받아들이면 기존의 대출을 넘어서 추가적인 대출도 고민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자. 정리되어야 할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정부의 개입 강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항상 자신의 집권 기간에 사건이 터지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금융시장과 고용의 측면에서 정부의 악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높고 투자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금융시장의 불안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지만 고용이라는 경제정책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을 달가워할 정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정부는 급격한 구조조정보다는 점진적인 과정을 선호하며 기업의 정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집행하는 정책금융기관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책금융기관이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 때문이다. 기업의 부실로 민간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정책금융기관은 기업 도산에 따른 정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간금융기관의 채권을 인수하고 더 나아가서는 추가적인 자금도 투입하게 되는 것이다. 종국에는 부실기업의 채무가 정책금융기관으로 집중되게 되어 기업의 구조조정 문제가 정책금융기관의 문제로 귀착되고 장기화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입장이다. 이것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기업의 구조조정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을 통한 임금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는 구조조정을 반길 노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기업을 둘러싼 모든 관계자들은 급진적인 또는 자기의 시간에 시행되는 기업 구조조정을 반기지 않기 때문에 경쟁력 없는 기업이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 중심주의적 구조조정 촉진 정책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하자. 일단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경영자와 소유자 문제부터 해결해 보자. 이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 보면 이 상황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우선적으로 기업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다음에 자신의 자산을 포기하더라도 삶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 또는 재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이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파산법이다. 이것은 사업에 실패하여도 한정된 범위 안에서 책임을 경영자와 소유자에게 부여하여 그들에게 ‘숨쉴 수 있는 여유(Breath Space)’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주식회사라는 제도에 의해서 이미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채권은행의 문제이다. 어쩌면 이 문제도 이미 해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금융이 단기 성과주의를 강조하면서 장기적 이해관계 및 이익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지분이 높지 않은 민간은행의 경우 지배구조가 투명화되며 과거와 다르게 부실채권을 객관적으로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금융업의 본질 중 하나인 대출에 따른 위험을 너무 지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일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업활력법,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채무자회생법 등을 통해 경영자 및 채권자의 권리 보장을 통한 구조조정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은 구조조정의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자본측 이해관계자만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을 넘어선 노동자 삶의 보장이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에 있어서 또 다른 측면의 중요한 관계자는 노동자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측면에서 이들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껏해야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하여 구조조정 과정에서 단기적 고용승계를 받아내거나,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것이 정부가 하는 최선의 수단일 정도다. 이것은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문제를 단순히 고용의 문제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급여 수준은 실직 후 6개월까지는 직전 월급의 75% 수준을 보존하여 OECD 회원국 평균 대비 높은 수준이지만 1년 이후의 보장 수준은 20%에 불과하여 OECD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현재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구조조정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에 빠져 있는 노동자 삶의 문제를 들여와야 한다. 노동자들의 저항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들 삶의 안정성이다. 갑자기 자기의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에게 “이제 투쟁을 그만하세요”라고 하기 위해서는 “투쟁을 그만 해도 살 수 있어요”라는 해결책을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정부도 물론 하나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후적으로 특정한 지역, 특정한 산업에 대하여 단기적으로 고용안정책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유지될 수 있는, 확실하게 보장되는 지원이다. 즉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사회안전망으로 자신의 삶을 보호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노동자 자신이 일하고 있는 기업이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크게 저항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 있고, 기업의 원활한 퇴출 속에서 혁신의 다이나믹스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냉혹한 혁신의 파괴적 과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포용성이 있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우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산업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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