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초고령 대한민국 : 신중년 시대]
1부 ③풍요로운 노인의 나라

스웨덴·독일 ‘노인 빈곤율 10%’
스웨덴, 낸 만큼 받는 ‘NDC 연금’
‘선별 보충급여’로 기초소득선 채워
큰 재정부담 없이 빈곤율도 개선
독일선 기대수명·생산인구 반영
연금액 조정·보장형 사적연금 병행

덜 풍요롭더라도 노후 걱정 없어야
한국 65살 이상 빈곤율 ‘절반 육박’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여력 감안
독일·스웨덴처럼 제도 합리화하고
연령별 최저임금 차등 등 취업 유인
기초생보·기초연금 통합도 고민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노후 불안 없는 삶은 많은 이들의 꿈이다. 서구 복지국가는 풍요로운 노인의 나라가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가능할까? 양재진 연세대 교수가 스웨덴과 독일 사례를 통해 가능성을 모색하는 글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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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인 빈곤과 소득불안 해소

풍요로운 노인의 나라가 가능할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서구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출할 당시 선진국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높은 경제성장률에 노인 수가 많지 않아 연금도 후하고 의료보장도 튼실했다. 은퇴 이후에도 노후 걱정 없는 복지국가의 절정기였다.


하지만 1980년대 서구 복지국가들은 경기침체와 고령화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한다. 이 나라들이 재정 위기에 맞서 우선적으로 취한 정책들은 노인 관련 복지제도를 수술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매달 받는 연금 수령액은 줄이고, 연금 개시 연령도 뒤로 늦추었다. 요양서비스를 강화해 의료수요는 줄여나갔다. 과거보다 건강해진 중고령자가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고, 직업역량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다.

스웨덴이 앞서갔고, 독일도 그 뒤를 따랐다. 과감한 개혁을 통해 이들 국가는 노인들도 큰 걱정 없이 안정을 누리면서 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8년 스웨덴의 노인빈곤율(65살 이상 노인 중 중위소득 50% 이하 소득자의 비중)은 10.9%, 독일은 10.4%이다. 두 나라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를 크게 밑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5.7%인 것과 크게 대조된다. 스웨덴과 독일 노인들의 형편이 한국보다 크게 나은 이유는 우리보다 오래 소득활동을 할 수 있고, 노후소득보장제도도 재정효율적으로 지속가능하도록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웨덴의 중고령자(55~64살) 고용률은 77.7%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독일도 72.7%로 우리나라의 66.9%보다 한참 높다. 정년을 없애는 대신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인 덕이다. 또한 이들 나라에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급이 아닌 직무급이 정착되어 있다. 근로시간을 줄여도 직무에 부합하는 임금을 받아 일정 수준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금제도 합리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스웨덴의 경우, 1999년에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그 전까지 노후소득 보장 체제는 지금의 우리 사회와 유사했다.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소득연금(ATP)이 있었고, 이에 더해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이 지급되었다. 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30년 후 재정 고갈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연금개혁위원회가 가동된 1990년대 초 소득연금기금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까지 축적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금 고갈이 불가피했다. 국민에게 약속한 급여(소득대체율)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만 했다. 평균수명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웠다. 또한 일반재정에서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전 노인에게 지급하다 보니 재정압박이 심해져 기초연금액을 인상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소득연금을 못 받거나 받더라도 급여가 적은 저소득 노인들의 기초소득보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해법은 구조적인 연금개혁이었다. 한국처럼 확정급여형으로 운영되던 소득연금을 명목확정기여(NDC) 연금으로 바꾸었다. 확정급여형 연금은 미래의 연금 수령액이 정해져 있고, 가입자들의 보험료율을 조정해 재정을 맞추는 방식이다. 반면 명목확정기여 방식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 총액에 법정이자를 더해 연금자산을 확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은 수명(잔여여명)에 따라 급여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국가는 보험료를 강제로 거두어 개인 계좌에 넣어줄 뿐, 연금액 결정은 가입자가 한다. 연금을 일찍 받기 시작하면 금액이 줄고, 늦게 받으면 연금액이 늘어나는 식이다. 또한 일을 오랫동안 해서 보험료 납부 기간이 늘어나면 연금액도 오른다. 근로소득이 일부 발생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연금의 2분의 1이든 3분의 1이든 선택해서 부분연금식으로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프리미엄 연금이라는 강제가입 방식의 사적연금이 새로 도입됐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보다 규모는 작으나, 법정 사적연금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프리미엄 연금은 명목확정기여 연금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중산층의 연금액을 보완해준다. 총연금보험료율은 소득의 18.5%로 제한했는데, 이 중 16%는 명목확정기여 연금에, 나머지 2.5%는 프리미엄 연금에 넣어둔다.

또한 저소득 노인의 기초보장을 위해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선별주의적인 기초보장연금(Guarantee Pension)을 도입했다. 개혁 전에는 1인당 월 50만원 수준이었는데, 1인당 약 100만원까지 보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모든 저소득 노인이 100만원을 다 받는 건 아니다. 만약 명목확정기여 연금과 프리미엄 연금액을 합쳐 70만원이라면 기초보장선 100만원과의 차액인 30만원을 받는 보충급여 방식이다. 연금소득이 전혀 없을 경우엔 1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모든 노인에게 무조건 50만원씩 줄 때보다 재정부담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월평균 소득 100만원 이하의 빈곤층이 사라져 노인빈곤 문제가 크게 개선되었다.

독일도 스웨덴과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2004년 소득비례형 공적연금의 외양은 그대로 두되, 기대수명과 생산인구 수를 고려해 연금액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이른바 지속성계수(Nachhaltigkeitsfaktor)를 연금계산식에 집어넣었다. 매번 법을 통과시키지 않아도 연금액이 자동으로 삭감되는 장치를 장착한 것이다. 연금 보험료율은 2030년까지 22%를 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였다. 그리고 공적연금의 지급액 삭감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리스터 연금’이라 불리는 사적연금을 도입하였다. 스웨덴의 프리미엄 연금처럼 의무가입은 아니지만 저소득자에게 유리한 정액 보조금을 지급해 가입을 유인하고 있다. 2007년에는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65살에서 2029년까지 67살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개혁을 단행했다. 기초연금이 따로 없는 독일은 스웨덴의 기초보장연금처럼 보충급여형의 사회부조를 통해 저소득 노인의 최저소득을 보장해주고 있다. 스웨덴과 독일의 은퇴자는 과거보다 덜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노인빈곤율이라는 측면에서 양호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중산층은 공적연금액이 낮아졌지만, 전보다 오래 일하고 사적연금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고 있다.

우리도 개혁 전 스웨덴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국민연기금은 국내총생산의 30% 정도에 이를 만큼 천문학적인 수준이지만 35년 후면 고갈된다. 전체 노인의 70%에게 지급되는 준보편주의적인 기초연금이 있지만 저소득 노인의 빈곤 해결에는 부족하다. 국민연금 가입자도 짧은 가입연수 때문에 실제 연금액은 기대만큼 높지 못하다. 좀 더 오래 일하고 싶어도 법정 퇴직연령인 60살까지 버티기도 쉽지 않다.

해답은 무엇일까? 먼저 스웨덴과 독일처럼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임금 연공급성을 완화해 해고 유인은 낮추고, 연령별로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는 등 중고령자 취업 유인을 높여야 할 것이다. 노후소득보장에 투입하는 비용도 한계를 둬야 할 것이다. 소득의 20% 정도로 설정하고, 비용부담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 법정 퇴직(연)금의 사용자 부담분 8.33%에 국민연금 보험료율 9%를 더하면 총 17.33%를 노후소득보장 비용으로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3% 정도 인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2019년 기준으로 퇴직연금에만 34조1천억원의 보험료가 납부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퇴직자는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무늬만 퇴직‘연금’인 셈이다. 이를 진짜 연금화해 국민연금을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

저소득 노인을 위해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을 통합해 스웨덴처럼 기초보장연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풍요롭지는 못해도 빈곤과 소득불안을 해소해 좀 더 안정적인 노후가 가능해질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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