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대한민국 : 신중년 시대]
1부 ② 소득·건강 불평등의 늪
아프고 외롭다해서 늘그막에 달라붙는 가난이 반갑겠는가
OECD 회원국 본인빈곤율 비교.
OECD 회원국 본인빈곤율 비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들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기준으로 1177만원이다. 소득 구성을 항목별로 보면,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대표적 사회보장제도라고 할 수 있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같은 ‘공적이전소득’이 435만원으로 전체 소득의 37%를 차지한다. 65살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40%를 약간 웃도는데 프랑스 등 선진국의 70~80%에 견주면 크게 뒤처져 있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다 가입을 했더라도 그 기간이 짧아 연금 수령액이 적은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하면서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65살 이상 노인 빈곤율 43.8%
OECD 평균의 3배…생계난 극심
연평균 소득 1177만원에 그치고
연금 등 대체비율도 39.9%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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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서 퇴직한 이기영(가명·67)씨는 지난해 서울 변두리에 편의점을 열었다. 아들딸 결혼시키려고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긴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장인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상황이 안 좋아졌다. 아내는 식당 일을 그만두고 간병에 나섰고 점포 개설로 돈이 급했던 이씨는 퇴직금을 털어넣었다. 이씨는 “연금으론 생활이 어려워 시작했는데 편의점도 포화상태라 인건비 정도 챙길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고령자들의 실질 은퇴 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데다 연금을 통한 노후보장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늦게까지 일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돌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연금에 의한 소득대체율(은퇴 전 소득 대비 은퇴 후 연금소득의 비율)은 2017년 기준 3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5.9%에 한참 못 미친다. 사적연금 가입률은 24.0%였고 퇴직급여의 연금수령 선택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거나 연금 개시 전에 연금저축을 해지해 자녀 교육과 결혼 자금 등 다른 목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까지 가세하면서 고령층에게 재취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렸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 구조로 인해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빈곤율은 2017년 기준 43.8%로,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14.8%)의 3배에 이른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다른 나라의 노인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동산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를 소득으로 환산해 계산해도 노인빈곤율은 30%를 넘는다. 주목할 것은 오이시디 평균 전체 빈곤율과 노인빈곤율 격차는 1%포인트대로 은퇴 전후 격차가 크지 않은 반면 한국의 격차는 26%포인트나 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형편이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인빈곤율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40세 이후부터 점차 우리나라의 빈곤율이 오이시디 평균을 넘어서기 시작해 은퇴 시점이 집중된 51~65세의 빈곤율은 오이시디 평균을 상당폭 상회한다”며 “특히 65~75세 연령층의 빈곤율이 급격히 상승해 40%에 육박한다”고 했다.

서울역 근처 동자동에 사는 홀몸노인 김호태(73)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김씨는 “동네 사람 중 나처럼 기초수급자들이 많은데 벌이도 변변찮고 몸도 안 좋아 나라에서 주는 돈에 의지해 살아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매달 53만원 정도의 생계급여를 통장으로 받는데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23만원이다. 기초연금 30만원이 소득으로 잡혀 그 금액만큼 깎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기초연금 지급일인 매달 25일 통장으로 들어왔다가 생계급여 지급일인 다음달 20일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정부의 공공지출에 의존해 살아가는 노인들은 의외로 많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65살 이상 노인 수는 769만명이다. 이 가운데 70% 노인이 기초연금을 받는다. 수급 대상자는 대략 540만명 정도다.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 때 ‘기초연금’으로 이름이 바뀐 뒤 월 지급액이 10만원에서 20만원, 25만원, 지금의 30만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최저 빈곤층에 해당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 40만명은 이 혜택을 보지 못한다. 공공부조의 ‘보충성’ 원리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생계급여는 정부가 정한 기준선과 가구 소득을 비교해 부족액을 보충해주는 현금복지이기에 새로 기초연금을 받거나 인상되면 그만큼 삭감돼야 한다는 논리다. 보충성 원리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학계에서도 고수하는 논리다. 복지시민단체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하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운용하면 오히려 어려운 사람이 차별받는다. 기본 원리로 삼되 대상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년째 겉돌고 있는 기초연금 문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참여연대와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으로 산정할 때 30%의 소득공제율을 적용하자”고 정부에 공동 제안할 계획이다. 30만원의 30%인 단 10만원이라도 최저 빈곤 노인들에게 지급하자는 일종의 타협안이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 양상은 소득 불평등 구조 속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많은 데서 기인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65살 이상 노인의 지니계수는 0.422로, 칠레 0.428에 이어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두번째로 높다. 지니계수는 소득 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0에 가까우면 소득 분배가 균등하게, 1에 가까우면 불균등하게 이뤄진다는 뜻이다.

가난은 결국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켜 노년의 삶을 파괴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출생아가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인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 소득 상위 20%는 85.1살, 하위 20%는 78.6살로 6.5년 차이가 났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한 상태로 사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은 각각 72.2살, 60.9살로 두 집단 간 격차가 더 컸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기대수명은 물론 건강수명까지 큰 차이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소득 수준은 발병에도 영향을 끼쳐 우울증과 고혈압, 당뇨병 등 유병률에 큰 격차를 보인다. 연구진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져온 이런 결과는 건강 불평등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은 “다양한 건강 조사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뚜렷이 관찰되는데, 이는 의료보장 강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료와 건강 차원을 넘어 소득·취업·노동·주거와 같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함께 다루고 보건의료 시스템 측면에선 공공의 역할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황혼기에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한국 노인들의 처지에는 비할 바 못 된다. 고령에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다 끝내 목숨을 끊는 상황이 끊이지 않는 현실은 이를 방증한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증가를 보이는데 특히 노인 세대에 집중되고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2020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2018년 65살 이상 노인 자살률은 53.3명으로 오이시디 회원국(평균 18.4명) 중 가장 높았다. 늦은 나이에 노동시장에 떠밀려와 가장 많이 삶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대안적 해법은 공적이전소득과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나이 든 이들이 자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본적으로 노후보장제도의 중심인 국민연금 제도가 제 역할을 하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기초연금을 보완적인 수단으로 하고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확대하면서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향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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