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20200116503371.jpg


한귀영 l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참 기묘한 선거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이 도처에서 무력감을 호소한다. 코로나19가 다른 이슈를 몽땅 집어삼킨 특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선거 공간에서 표출되기 마련인 정치적 열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례 하나만 짚어보자. 모든 정치세력이 앞다투어 내세우던 청년 이슈가 아예 실종됐다. 총선은 한 사회의 총노선을 정하는 총회다. 총회 뒤에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까? 무지한 채 투표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중후반기의 총선은 통상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를 겸한다. 심판 욕망이 위력을 떨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악화하던 3월 초까지만 해도 역시 그런 듯했다. 경제 불만족,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공정성 논란은 상수였다. 비례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돌출 변수까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조차 이탈하는 흐름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금 각종 지표는 더불어민주당 우위를 점친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과 10~15%포인트의 지지도 격차로 고공행진 중이다. 코로나19 대응에서 한국이 세계의 모범국으로 부상하면서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프레임이 힘을 얻었다. 반면 공동체의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던 무책임한 야당은 존재감을 상실했다. 보수 야당·언론은 사실상 정권 붕괴를 선동했다. 공동체의 재난에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다고 자인한 셈이다. 자업자득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과반 승리는 무난해 보인다. 보수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저 세력의 패배는 사필귀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총선 결과가 우리 정치의 품격을 높이고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지는 미심쩍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정치가 대개 정략과 공학, 꼼수와 협잡으로 얼룩진 건 사실이다. 정치 혐오의 근거다. 그 진흙탕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이 정책과 노선 속에 희미하게 빛나곤 했다. 정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번 총선에선 그 희미한 빛마저 사라졌다. 통합당은 코로나 사태에 편승해 증오와 공포를 부추기다 자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탄핵 세력이 1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공포를 조장했다. 자기가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성정당으로 파탄 냈다. 그래도, 어쩌면 그래서 승리할 것이다. 왜 승리해야 하는지 불분명한 채로.


애초 이번 총선의 핵심 의제로 예상되었던 것 중 하나는 ‘청년’이었다. 청년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가로지르는 핵심 이슈라는 데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 게다가 만 18살로 선거연령도 낮아졌다. 지금 총선에서 청년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김종인, 이해찬, 손학규 같은 이들이 있다. 선거에 대한 청년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23~24일 전국 18살 이상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적극적인 투표 의사를 나타낸 비율이 다른 연령층은 4년 전보다 상승한 데 반해 20대만 55.4%에서 52.8%로 하락했다.


양대 정당의 이번 총선 전략은 ‘작은 정치’였다. 공포를 선전해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소외된 이들, 대표되지 않는 갈등들, 배제된 이슈들로 정치를 넓히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종됐다. 정치에 대한 열망과 의지의 고양이라는 정공법 대신 환멸을 조장하고 냉소를 방치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놀랍기도 하다. 정치가 환멸을 조장하는 시기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놀랍게 역동적이다. 코로나19로 세계의 질서가 붕괴하는 와중에 시민사회는 자기 절제와 연대의 윤리를 고양했고, 정부는 최대한 투명하게 시민사회의 요구와 소통하며 책임을 감당했다. 외부를 향한 혐오가 없지 않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 같다. 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의 저변은 깊고 단단했다. 바로 촛불혁명의 지반이다.


그래서 총선 이후가 정말 중요하다. 승리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코로나19 방역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야 한다. 거대한 경기침체와 사회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실업자가 쏟아지고 시민들이 고통받을 것이다. 과감한 예산 편성, 공공성의 획기적 증대 등 그야말로 정치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의 시간’이다. 정당이 답해야 한다.


hgy4215@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6382.html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50대의 선택, 국가의 효능감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총선 더불어민주당의 180석 차지라는 압도적 승리에는 50대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구조사에서 50대는 더불어민주당 49.1%, 미래통합당 41.9% 지지로 밝혀,...

  • HERI
  • 2020.05.11
  • 조회수 297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코로나 총선, 실종된 정치를 찾아서

한귀영 l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참 기묘한 선거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이 도처에서 무력감을 호소한다. 코로나19가 다른 이슈를 몽땅 집어삼킨 특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선거 공간에서 표출되기 ...

  • HERI
  • 2020.04.10
  • 조회수 749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공포 프레임’에 점령당한 총선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밑바닥 민심이 심상찮다. 2017년 탄핵을 지지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상당수가 돌아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코로나 사태에 편승해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는 보수 야당...

  • HERI
  • 2020.03.13
  • 조회수 904

[유레카] 코로나19 대응, “가장 무서운 약점” / 이창곤

코로나19 사태가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경제·사회적 피해 또한 막심하다. 초유의 상황이라고들 하나 이미 우리가 겪은 역사적 경험도 적잖다. 1919년 1월 <매일신보>는 스페인 독감으로 무려 742만명의...

  • HERI
  • 2020.03.05
  • 조회수 763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능력마저 세습되는 사회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주말 20대를 함께 보낸 지인들이 십여년 만에 모였다. 고3 학부모 노릇에서 해방된 이들이 여럿이라 자축을 겸한 자리였다. 역시나 화제는 교육으로 모였다. 아이 둘을 의대...

  • HERI
  • 2020.02.18
  • 조회수 580

[유레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이해관계자 복지 / 이창곤

지난달 21일부터 나흘간 열린 올해 다보스포럼의 열쇳말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세계경제포럼이 이 해묵은 개념을 소환한 데는 일련의 흐름이 있었다. 지난해 8월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

  • HERI
  • 2020.02.10
  • 조회수 707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기성 정치문법 흔드는 밀레니얼 세대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선거의 시간이 다가온다. 혼돈은 여전하다. 바뀐 선거제도, 불능의 정치에 대한 심판 정서 등이 얽히면서 21대 총선이 어느 방향으로 귀결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선거...

  • HERI
  • 2020.01.17
  • 조회수 1083

[유레카] 한반도 기후위기 / 이창곤

지난 주말 ‘학부모 졸업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의 졸업을 앞두고 학부모끼리 뭉친 것이다. 학부모들은 적게는 고교 3년, 길게는 중학 시절부터 6년가량을 ‘학교 공동체’ 일원으로 동고동락한 사이다. “낮에는 아이들이, ...

  • HERI
  • 2020.01.16
  • 조회수 955

[칼럼] 문제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재정정책: 재정이 장벽이 아닌 마중물이 되려면

문제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재정정책 : 재정이 장벽이 아닌 마중물이 되려면   * 칼럼 내용은 아래 자료 첨부

  • HERI
  • 2020.01.13
  • 조회수 842

[유레카] ‘국가 미래비전’의 쓸모 / 이창곤

우리나라에서 국가 차원의 중장기 미래비전이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7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한국미래학회가 함께 만든 <서기 2000년의 한국에 대한 조사연구>를 그 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당시 초점은 과학기술...

  • HERI
  • 2019.12.26
  • 조회수 791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공정과 평등이 충돌할 때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얼마 전 만난 공공기관 노조위원장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난달 9일 전태일 열사 49주기에 열리는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집회 참여를 독려했더니, 젊은 조합원 여럿이 ...

  • HERI
  • 2019.12.20
  • 조회수 919

[유레카] 반복지 재정포퓰리즘 / 이창곤

재정(public finance)이란 말은 라틴어의 ‘법정 판결로 결정한 벌금(fine)’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에선 15세기 국왕이 부리는 조세징수 청부인을 지칭했고, 독일에서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오늘날 나...

  • HERI
  • 2019.12.03
  • 조회수 1056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여론조사 불신, 언론도 공모자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여론조사 신뢰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수상한’ 여론조사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한 언론사의 기사가 발단이 됐다. 특히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

  • HERI
  • 2019.11.25
  • 조회수 1086

[유레카] ‘개혁과 권력의 시계추’ / 이창곤

“짐승들조차 쉴 동굴과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공기나 햇빛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로마공화정 시대, 대지주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개혁을 추진하다 죽임...

  • HERI
  • 2019.11.11
  • 조회수 1044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울분사회 한국, 지속가능한가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울분사회’,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새로운 수식어다. 한국인의 43.5%가 만성적인 울분 상태이며 심한 울분을 기준으로 하면 독일의 4배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 HERI
  • 2019.10.25
  • 조회수 1284

[유레카] 화석연료 없는 복지국가 / 이창곤

2019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소년을 꼽으라면 아마도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2019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선보인 그의 연설은 압권이었다. ...

  • HERI
  • 2019.10.16
  • 조회수 1160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촛불을 들지 못한 20대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소위 ‘조국 사태’ 이후 20대 청년세대의 박탈감과 분노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일부 명문대생들은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며 촛불을 들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 HERI
  • 2019.09.27
  • 조회수 1322

[유레카] ‘조국 논란’의 종착점 / 이창곤

‘조국 논란’의 끝은 어디인가? 언론 보도는 연일 차고 넘친다. 하지만 공론(公論)은 없다. 검찰 수사는 마침내 ‘자택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장관과 직접 연계된 객관적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지와 ...

  • HERI
  • 2019.09.25
  • 조회수 1308

[유레카] 절실한 정책결정의 ‘관제탑’/ 이창곤

대부분의 공항에는 컨트롤타워, 즉 관제탑이 있다. 관제탑의 허가 없이는 어떤 비행기도 뜨고 내릴 수가 없다. 관제탑은 항공기의 위치와 고도를 확인해 필요사항을 지시한다. 비행 전에는 조종사가 제출한 비행계획을 점검하고 ...

  • HERI
  • 2019.09.03
  • 조회수 1349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조국 정국’ 독해법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조국 정국’이 심상치 않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태풍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에서 조 후보자가 지니는 상징성이 큰 탓에 핵심...

  • HERI
  • 2019.08.23
  • 조회수 1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