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빠르게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 
열악한 종사자 처우 개선 시급
사회적 경제의 역할 기대 커져
가사 등 플랫폼 협동조합 등장
초기자금·전문인력 부족 한계
생태계 조성 및 정책지원 절실

지난 6월 ‘사회적협동조합 행복한돌봄’ 등이 주최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사노동자들로 구성된 협동조합 임원, 조합원들이 직무능력 향상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제공
지난 6월 ‘사회적협동조합 행복한돌봄’ 등이 주최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사노동자들로 구성된 협동조합 임원, 조합원들이 직무능력 향상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제공

대리운전을 하는 양아무개(55)씨는 지난해 5월 고객의 차를 몰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수리비는 보험 처리를 했으나 자기분담금 50만원을 급히 구할 수 없었다. 이때 힘이 된 것이 협동조합이었다. 양씨가 조합원인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은 2013년 한 독지가가 기부한 500만원을 종잣돈으로 상호부조 사업을 하고 있다. 급한 돈이 필요한 조합원에게 50만원까지 무이자·무보증으로 빌려준다. “50만원이 큰돈이냐?”고 할 수 있지만 대리기사 중에는 다른 일을 하다 신용불량이 되는 등 생계의 막장에 몰린 이들도 적지 않다. 대리기사가 많이 모이는 길목에는 이런 처지를 노리는 불법 대출업체의 전단지가 수북하다. 이들은 대리운전 앱의 운행기록을 담보 삼아 월 24%의 이자로 소액을 빌려준다. 대리기사들이 중개 앱을 통해 신분이 노출돼 있다는 걸 방패로 삼는 것이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은 사고 처리 비용을 빌려주고 10개월에 걸쳐 나눠 갚도록 해 대리운전자가 불법대출의 덫에 걸리지 않게 하면서, 다 갚은 뒤 내는 10%는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전환해준다. 이 출자금은 다른 조합원과 회원을 위한 무이자 소액대출의 재원이 된다. 이는 대표적 플랫폼 경제인 대리운전 영역에서 운전자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서로를 돕는 사례다.

플랫폼 노동 종사자 47만~54만명 추산

디지털 플랫폼이 경제의 틀을 바꾸고 있다. ‘타다’ 등 새로운 운송 수단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이 플랫폼 경제는 신구 산업 간 갈등, 노동 및 분배 체제의 재구성 같은 묵직한 숙제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플랫폼을 통해 일을 얻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면서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 개선이 긴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대리운전, 배달, 가사·의료도우미 등 호출형 노동과 문화·예술, 정보기술(IT·아이티) 분야의 프리랜서 노동이 주를 이루는데, 국내 종사자는 8월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약 47만~54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취업자의 1.7~2.0% 수준이다. 하지만 조사에 따라 편차가 크고, 경제의 다양한 영역에서 플랫폼화가 급속히 진행돼 실제 종사자는 더 많을 수 있다.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이전에도 이들은 특수고용 또는 비공식 부문으로 불리며 노동법이나 고용·산재보험 같은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디지털 앱이 들어온 뒤 설상가상으로 여러 중개업체에 내는 수수료가 늘고, 일회성 호출은 증가해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앱에서 이뤄지는 고객평점에 의한 근무 관리는 과도한 감정노동을 강요한다. 특히 한국은 플랫폼 노동이 부업이 아니라 주 생계인 종사자의 비중이 높고, 플랫폼 업체와 종사자 간의 위계·종속관계가 외국보다 강하다. 또 유럽의 복지 선진국과 달리 노동법 적용이 안 되면 사회보장제도 전체에서 배제되는 구조여서 플랫폼 노동의 심각성이 더 크다.

가사노동플랫폼 ‘우렁각시’ 회원이 의뢰인의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제공
가사노동플랫폼 ‘우렁각시’ 회원이 의뢰인의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제공

이런 가운데 상호성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를 통해 플랫폼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을 통해 수행되는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가치를 조직의 핵심 목표로 추구한다. 수익은 적지만 공익이 큰 영역에서 책임 있게 활동하고, 이용자와 종사자를 함께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사회적 경제의 대응은 협동조합의 장점을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6년 이후 미국·유럽에서 확산하는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은 그런 흐름 속에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노동자, 생산자, 소비자 등 핵심 이해관계자가 소유해 고용 및 소득안정을 꾀하고, 일하는 보람을 지키자는 취지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기업 운영, 성과의 공정한 배분 등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가사노동자, 번역가, 문화예술 종사자 등과 고용계약을 맺어 사회보험 혜택을 주고, 세무 등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프랑스의 ‘사업고용협동조합’이나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벨기에의 ‘스마트’(SMart), 미국 뉴욕의 가사서비스 플랫폼 ‘업앤고’, 우버에 대항하는 미국 덴버 택시노동자들의 ‘그린택시쿱’ 등 대안을 보여주는 플랫폼 협동조합이 최근 몇년 사이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올 6월 현재 세계에 약 280곳의 플랫폼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반년 전에 비해 그 수가 30곳 증가한 것이다.

규모와 경쟁력 갖추는 게 숙제

한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이 등장하고 있다. 가사노동자들의 라이프매직케어협동조합, 대리운전자들의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의 한국아이티개발자협동조합, 프리랜서 문화예술인들의 씨엔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역점을 두는 것은 자체 플랫폼 개발과 운영이다. 플랫폼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서비스 형태나 조합원 처우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사 영역의 사회적 기업 및 사회적 협동조합 9곳을 조합원과 가맹점으로 둔 경기도 부천의 소셜프랜차이즈 라이프매직케어는 지난해 10월 프랜차이즈의 공유 플랫폼 ‘우렁각시’를 출시했다. 플랫폼 구축 비용 1억8천만원은 조합원 및 참여기업의 출자금과 분담금 등으로 조달했다. 앱 출시 뒤 7개월간(2019년 1~7월) 새로운 고객 1683명이 가입했으며, 이 기간 중 서비스 주문율(앱을 내려받은 사람 중 실제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초기의 9%에서 25%로 상승했다.

공공이 제공하는 고용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플랫폼 종사자에게 체계적인 산업안전교육 및 직무교육을 제공하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통해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고 지속성을 높여가자는 것이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은 협동조합 기본교육은 물론 매출 관리, 오지 탈출 방법 등 현장과 밀접한 직무교육을 카드뉴스같이 이해가 쉬운 방법으로 제공한다. 대리기사가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게 하려는 노력이다. 이 밖에 플랫폼 협동조합은 고립되어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에게 온·오프라인 모임을 결성해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이용자와 일대일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처우에 맞설 수 있도록 집단적 이해 대변 활동을 하며, 사회보험에서 배제된 종사자를 위한 공제사업(배상보험과 자조금고)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초기인 만큼 한계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기업으로서 영속할 수 있는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는 게 숙제다. 큰돈이 들어가는 플랫폼 구축뿐 아니라 이용자가 늘어 네트워크 효과가 생기기까지 3~5년은 버틸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럴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공제회 설립,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이나 산업재해 등에 대비한 1인 1보험 가입도 숙원 사업이지만 전담인력 부족과 제도의 미비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한국의 플랫폼 경제는 가사, 대리운전, 배달 등 모이기조차 쉽지 않은 취약계층이 일하는 영역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 종사자들의 협동조합 설립이 부진하다”며 기술 기반 플랫폼 경제에서도 협동조합이 대안이 되려면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가사노동 플랫폼 협동조합인 미국의 ‘업앤고’도 비영리재단과 은행의 설립자금 지원, 노동조합연맹의 조직 활동가 파견, 아이티 사회적 기업의 기술 지원으로 일어서게 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5일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경제의 대응 세미나 열려

제도나 정책적 지원도 긴요하다. 현재는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정부 정책이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어 효과적인 수립과 집행이 어렵다. 또 큰 규모의 연구개발(R&D) 자금은 사업경력과 고용인원 등 자격을 갖춘 일반기업 위주로 집행돼, 사회적 경제 기업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은 “이 영역에서 공공의 개입이 없으면 대자본을 가진 이윤추구형 플랫폼 기업의 독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회적 경제 기업이 플랫폼 종사자의 고용안전망 및 사회안전망, 그리고 사회보장 전달 통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관심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오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중구 서소문로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 수펙스홀에서는 ‘확산되는 플랫폼 노동, 사회적 경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등이 주최하는 이번 포럼에서는 가사, 대리운전, 아이티, 문화예술 분야 관계자가 해당 영역의 플랫폼 노동 실태와 사회적 경제 측면의 대응을 소개하고, 해결 과제를 발제한다. 이후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사회로 기획재정부 및 고용노동부 관계자들도 함께하는 전체 토론이 이어진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92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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