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그곳에 가면 ‘마을공화국’이 있다

HERI 2018. 08. 30
조회수 360
김영배 전 성북구청장의 <마을민주주의 시대, 마을공화국>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 청소년 ‘동행카드’…
‘포퓰리즘’ 비판 이겨내고 전국 최초 생활임금제 도입
8년간 성북구에서 이뤄낸 ‘마을 만들기’ 역사 담아내 
성북구-정릉아동보건지소를 찾은 김영배 성북구청장(당시)과 엄마들. 남은주 기자
성북구-정릉아동보건지소를 찾은 김영배 성북구청장(당시)과 엄마들. 남은주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한 곳은 어딜까? 바로 서울시 성북구다. 성북구에는 ‘국내 최초’가 몇 가지 더 있다. 0∼6세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전문 보건소를 만들고, 그와 궤를 같이하는 어린이 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도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이런 노력 덕택에 유니세프(UNICEF)로부터 2016년 아동 친화도시 인증까지 받았다. 역시 전국 최초다. 주민들이 지자체 일에 직접 의견을 내는 ‘마을 총회’를 도입하고, 지자체 내 청년 지원 전담팀을 만든 최초의 지자체이기도 하다. 청년 지원 기본조례 제정, 사회적경제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에 관한 조례, 생활임금 시행 등 의미 있는 제도도 성북구가 처음 시행했다.

이처럼 성북구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마을 공동체 활성화, 주민참여, 사회적경제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곳으로 손꼽힌다. 한마디로, 인구가 45만 명이 넘는 자치구를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동네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래서 내건 슬로건도 ‘동행’이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에너지를 절감한 비용으로 경비노동자 일자리를 지켜낸 아파트 주민과, 그에 화답하려 주민들을 위해 칼을 갈아주는 경비반장 등 각종 매체에서도 주목한 성북구의 미담은 그래서 나왔다.


과연 성북구엔 무엇이 특별하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당연히 가장 큰 공은 함께 살아가는 동네 만들기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옳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잘 뿌리내리도록 땅을 다듬고 물을 준 지자체의 노력도 소중한 역할을 한 게 틀림없다. “일반 대중들에게도 사회적경제, 마을 공동체를 이해시키기 어렵지만, 공무원과 이야기할 때 가장 답답하다. 그래도 성북구는 좀 말이 통한다.” 한 사회적기업가가 건넨 이야기 속에 그 진실이 담겨 있다. 모든 공을 지자체장이 차지하는 건 분명 경계해야할 터이나, 2010년부터 8년간 성북구를 이끌어온 김영배 전 구청장의 활동이 유독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우선 전국 최초로 2013년 시행한 생활임금제와 청소년 대상 ‘동행카드’ 발급. 생활임금이란 물가상승률, 가계소득과 지출 등을 고려해 실제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결정된 올해 성북구 생활임금은 193만 4000원(시급 9255원)으로, 내년도 최저임금(8350원)보다 1000원 가까이 높다. 요즘에야 생활임금이 서울시를 포함한 12개 광역단체와 79개 지자체에서 시행되며 널리 퍼졌지만, 당시만 해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성북구민 중 중학교 1학년이거나 만 13살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동행카드’를 도입했을 때도 “선심성 예산으로 성북구 혼자 튀려고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동행카드는 극장·서점·미술관·학원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연간 10만 원가량의 포인트를 제공하는 제도다. 당시 성북구는 가정환경뿐 아니라 학교를 다니거나, 어떤 학교를 다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청소년이 최소한의 문화적 경험을 누릴 수 있어야 마을 공동체나 국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으로 자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밀어붙였다. 두 제도 모두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지자체나 광역단체에서도 쉽게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여론의 뭇매가 무서워 다들 눈치만 살필 때, 성북구가 용기 있게 이른바 ‘총대’를 멘 셈이다.

김영배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전 성북구청장). <한겨레>자료사진
김영배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전 성북구청장). <한겨레>자료사진

최근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김영배 전 성북구청장이 지난 6월 출간한 <마을민주주의 시대, 마을공화국>(백산출판사, 2018)엔 그간의 생생한 경험이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정치인이 자신의 경험과 색깔을 널리 알리고자 펴낸 책은 흔하다. 이런 책일수록 그다지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마을 만들기나 사회적경제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간 성북구에서 진행된 다양한 실험이 소개된 이 책을 꼭 한 번 들여다봄 직하다. 행정단위인 ‘구’를 살맛 나는 ‘동네’로 만들기로 결심한 지자체장의 꿈이 과연 어떻게 하나하나 실현돼 왔는지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사람이 만든 건 사람이 허물 수 있어” 망가진 인터넷 재설계 꿈

팀버너스리의 ‘솔리드’ 시도 의미 “인터넷이 불평등과 분리 되레 키워” 개인통제권의 탈중앙형 웹플랫폼 시동 시도 성공 여부는 생태계 형성에 달려 버너스리 “해커는 자유 갈망” 기대 팀버너스리가 개발하고 있는 솔리드...

  • HERI
  • 2018.10.10
  • 조회수 182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자산격차 지수, 소득격차의 3배 육박"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①격차에서 장벽으로 자산·소득·소비 결합해 불평등 정도 측정하는 ’다중격차지수’ 지난해 0.54 자산 격차가 가장 큰 영향 자산 불평등이 ‘불평등의 구조화’에 가장 큰 영...

  • HERI
  • 2018.10.10
  • 조회수 212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통합소득’ 지니계수 0.5 넘었다…자산 불평등 ‘매우 심각’"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① 격차에서 장벽으로 근로·자산소득 더한 ‘통합소득’ 2016년 지니계수 구해보니 0.520 근로소득만 떼낸 0.471보다 높아 “불평등 더 심각하다는 증거” 복지제도가 미약한 한...

  • HERI
  • 2018.10.10
  • 조회수 202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2016년 통합소득 분석"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① 격차에서 장벽으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2016년 통합소득 분석 상·하위 10% 격차 보니 근로소득만 따지면 46배 금융·부동산소득 합치면 68배 일부층에 편중된 자산소득 기...

  • HERI
  • 2018.10.10
  • 조회수 188

[한겨레 21] 조·중·동, 소득주도성장 집요한 공격…이 기시감 뭐지?

[한겨레21] 15년전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비판 받아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부처럼 실패하려는가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다를 수 있을까. 2003년 6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

  • HERI
  • 2018.10.10
  • 조회수 149

“엄마와 사회인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꿈”

[HERI-서울연구원 공동기획] ‘We Change’ ③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 아내, 엄마, 딸, 대표…“나는 그냥 조성실” 육아·출산 등 문제 고민하러 모였다가 혐오 표현까지 고민 넓힌 단체로 성장 “혼자 짊어져...

  • HERI
  • 2018.10.02
  • 조회수 308

“소득주도 성장, 단기 효과보다 장기 성장기반 강화에 집중해야”

김태일 고려대 교수 보고서 문재인 정부 초기 단기 내수 진작책으로 본 듯 최저임금 같은 외생변수의 분배 개선 효과는 불명확 이론적 난점에도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 처방은 필요 민간부문 분배 개선 못지 않게 복지확대에도 ...

  • HERI
  • 2018.10.02
  • 조회수 233

“일자리 패러다임의 변화 이끌어내야 대안될 수 있어”

[제7회 사회적경제 정책 포럼 지상중계] 하위직 임금 일반 기업에 견줘 높고 일에 대한 만족도 높게 나타나지만 “복지 확대와 산업의 재편을 위해 담론 이끌어가는 세력 돼야” 목소리 전북 완주 고산미소시장에 위치한 동네...

  • HERI
  • 2018.09.28
  • 조회수 268

“한국은 약한 사람들의 고통 이해하는 나라…연대의 정신 보여달라”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 이후 2개월 메콩강 개발 감시 타이 시민단체 활동가 방한 “무조건 한국 기업·정부 나쁘다는 뜻 아냐… 참사에 책임 있는 태도 보여달라 요청하는 것” 한국을 찾은 타이 시민단체 활동가들. ...

  • HERI
  • 2018.09.20
  • 조회수 300

“제가 바뀌니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HERI-서울연구원 공동기획] 회계사 그만두고 대안적 삶 택한 김정연씨 추상과 가상 벗어나 몸 움직여 해결하는 삶 ‘비전화공방’에서 살아가는 적절한 기술 익혀 “이룬 것 아깝더라도 ‘지금 행복한지’ 물어야” 김정연씨는 ...

  • HERI
  • 2018.09.20
  • 조회수 305

“모두 답 없다 할 때 정공법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맞섰죠”

[짬]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사람 중심의 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동의하는 지방자치단체장님들은 꼭 모시겠습니다. 사회적 경제는 단순한 경제 패러다임이나 경제조직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일이고, 그 일...

  • HERI
  • 2018.09.20
  • 조회수 327

“사회적경제 교육은 신뢰와 협력의 ‘사회자본’ 쌓는 일”

[사회적경제 포럼 지상중계] ‘경제교육 패러다임 전환’ 주제로 5일 열려 정부, 나눔·공유의 가치 교육 강화 움직임 인재 양성 시스템 부족 등 한계 극복해야 “미래 세대에 다양한 가치 제시하는 일” 지난 5일 서울 영등포...

  • HERI
  • 2018.09.20
  • 조회수 331

‘지역 혁신’ 성공사례 한 자리에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 개막 대전컨벤션센터에서 8일까지 사흘간 지역의 사례 공유하는 자리 대폭 확대 6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균형발전 박람회’의 참가자들이 광역지자체의 혁신성장 사례 전시를 살펴보고 있...

  • HERI
  • 2018.09.20
  • 조회수 268

그곳에 가면 ‘마을공화국’이 있다

김영배 전 성북구청장의 <마을민주주의 시대, 마을공화국>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 청소년 ‘동행카드’… ‘포퓰리즘’ 비판 이겨내고 전국 최초 생활임금제 도입 8년간 성북구에서 이뤄낸 ‘마을 만들기’ 역사 담아내 성북구...

  • HERI
  • 2018.08.30
  • 조회수 360

“라오스댐 붕괴는 분명한 인재” 아시아 시민사회가 움직인다

타이·일본 이어 국내 단체들도 성명 발표 “책임 가장 큰 한국이 더욱 적극 나서야” ‘피해 조사에 독립된 제3자 참여’ 한목소리 아시아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응 움직임 주목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7개 시민사회단체가 라오...

  • HERI
  • 2018.08.10
  • 조회수 540

“협동조합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안적 기업”

‘일의 미래와 노동자협동조합’ 국제컨퍼런스 ‘1인 1표’의 민주적 운영원리 협동조합 돌봄·플랫폼 노동자들의 권익보호 가능 파산 위기 기업 인수하는 사례도 늘어 조합원 사회보장권 등 제도 보완은 과제 지난 12일 오후, 서...

  • HERI
  • 2018.08.02
  • 조회수 578

장하준 “앞으로 3~4년 적자 보더라도 복지지출 과감히 늘려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인터뷰 “세금은 부담 아닌 회비, 복지서비스 공동구매하는 것”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초청포럼에서 강연하는 장하준 교수. 사진 신소영 기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 HERI
  • 2018.07.26
  • 조회수 644

“더 과감해지지 않으면 성장과 삶의 질 둘 다 놓치고 말 것”

‘장하준 초청 포럼’ 현장 중계 “혁신과 경제성장은 100미터 달리기 아닌 ‘축구’, 경쟁하며 결국엔 협력하는 팀 경기나 마찬가지” 정치권, 재정지출 확대 주장 등으로 호응 나서 김경수, “포괄적 산업정책 구상 추진할 것”...

  • HERI
  • 2018.07.26
  • 조회수 649

“촛불 집회는 직접 민주주의 확산 이끈 성공한 혁명이죠”

[짬] 경희대 미래문명원 임채원 교수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촛불집회는 인류 역사에서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또한 한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부분에서도 성장한 나라라는 걸 보여주고요. 한...

  • HERI
  • 2018.07.20
  • 조회수 675

임팩트 투자 시장을 키우는 ‘숨은 조력자’

영국 BSC 클리프 프라이어 대표 인터뷰 1조2천억원 규모로 조성된 임팩트 투자 도매기금 중개기관에 자금 지원하거나 교육 프로그램 제공 평균 수익률 4~6%대로 시중 금융상품에 안 밀려 “기금 설립·운영도 사회 문제 해결에 ...

  • HERI
  • 2018.07.19
  • 조회수 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