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농촌청년여성캠프 연 해원과 들
농촌 2030 여성들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의 고민 나누는 느슨한 ‘연대’
“내 고민 말하니 사회로 연결되더라”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 모습. 4회차 테마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 모습. 4회차 테마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만나서 자기 이야기 해요. 내 역사, 상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거창한 얘기는 안 해도 ‘내 잘못이 아니구나’, ‘나만 겪는 게 아니구나’, 정말 큰 위로가 돼요.”

지난해 3월부터 충남 홍성에서 ‘농촌청년여성캠프’(캠프)를 네 차례나 연 노해원(해원·29) 박푸른들(들·30)씨. 두 사람의 목소리가 꽤나 밝다. 두 사람이 캠프를 열게 된 계기가 뭐냐고 묻자, “모여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좋아서”란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젊은 농민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자연스레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쪽에 의견이 모아졌다. 아예 1박2일 만나기로 했다. 모임이 두 번 정도 진행될 즈음 ‘농민’이라서보다 ‘농촌에 사는 젊은 여성’이라 겪는 고민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농민은 아니지만 농촌에 사는데 참여하고 싶어요’ ‘귀농을 꿈꾸는 젊은 여성인데 받아주세요’…. 모임 횟수가 늘어날수록 문의가 빗발쳤다. 농촌에 살거나 진지하게 농촌살이를 계획하는 젊은 여성으로 대상이 넓어진 이유다.

농촌청년여성캠프를 기획한 해원(왼쪽)과 셋째 아이 우리, 들(오른쪽).
농촌청년여성캠프를 기획한 해원(왼쪽)과 셋째 아이 우리, 들(오른쪽).

농촌에 사는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하나로 뭉뚱그려 말하긴 어렵다. 캠프 기획자인 해원과 들 두 사람만 봐도 그렇다. 해원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벌써 남자아이 셋을 키우는 8년차 주부다. 들은 시민단체에서 3년 일을 한 뒤 고향인 홍성에 돌아와 가족과 살며 농사짓는 비혼 여성이다. 가족과 살거나 혼자 살거나, 기혼·비혼, 농부, 공방 운영 등 다른 참가자들도 각양각색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레 이야기는 ‘젊은 여자로 농촌에서 살기’로 이어진다. 사생활이나 옷차림 간섭, 시골집에 혼자 살며 느끼는 두려움은 물론이고, 스스로 뭘 해보려고 해도 “여자가 무슨… 그냥 내가 해줄게” 식으로 동네 사람들이 보이는 친절과 무례함 사이에서 지내기 등 이야기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내 이름’보다는 ‘누구의 딸’ 혹은 ‘누구의 아내’로 받아들여지는 데서 오는 불편함도 있다.

물론 이들이라고 생각이 모두 같을 순 없는 법. “나중에 농촌에 올 또 다른 젊은 여자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항의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지만, “농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젊은 우리가 어느 정도 맞출 필요도 있다”는 온건파도 있다. ‘그냥 만나서 우리 이야기 하자’가 취지인 캠프의 매력이 발산되는 대목은 여기다. 누구나 “나는 그건 동의할 수 없어. 불편해”라며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저마다 자신이 살아온 역사, 가치관을 근거로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상대방 의견도 귀 기울여 듣는다. ‘내 불편함을 내보이되 남의 이야기도 들을 것’ ‘상대방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 캠프가 내건 원칙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3차 캠프 때 누드 드로잉 세션을 열었는데, 한 참가자가 “와! 나 이런 거 너무 불편해!”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단다. 두 기획자의 반응이 의외다. “제일 웃긴 기억이에요. 더는 못 참고 나간 것, 벗고 그림 그리는 거 불편하다고 소리친 것.” 두 사람은 솔직한 자기표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큰 이야기를 하고 커다란 방향을 제시하는 운동도 의미 있겠지만, 이제 젊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한다’, ‘이 길이 맞으니 다 같이 이리로 가라’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지지받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지 않는 스스로를 지키는 거죠. 다른 사회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봐요.”(들) “농촌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한 것 아닐까요?”(해원)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에서의 기획자 해원. 4회차 캠프의 주제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에서의 기획자 해원. 4회차 캠프의 주제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캠프는 규모도 작고 규칙도 헐렁하지만, 그래서 더 끈끈하다. 해원은 셋째 출산 한 달 뒤부터 이번 캠프를 준비했다. “원래는 일정이 안 되는데 한두 번 빠지면 캠프 자체가 없어질까 봐” 꼭 참여한다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며 건져낸 이야기를 나누고, 농촌살이를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하며, 다르게 살아도 괜찮음을 증명하겠단다. “진짜 내 고민을 말하니 사회로도 연결되던데요. 나중엔 꼭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초대해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홍성/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이런 도시 어때요?”…시민들이 그리는 ‘미래 서울’

[더 나은 사회] ‘전환도시’ 내건 ‘위 체인지’ 시민포럼 평화감수성·공유도시 등 열띤 토론 13개 열쇳말 추려 서울시정 활용 예정 지난 12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위 체인지’ 오픈 포럼에 ...

  • HERI
  • 2018.10.18
  • 조회수 25

‘나눠주기’식 이전은 안 돼…지역 스스로 마스터플랜 짜야

[더 나은 사회] 지역혁신 전문가 좌담회 김영수 “가장 효과적인 건 앵커 기업의 이전 지역에 성과관리 재량 좀 더 줘야” 류세선 “중앙정부 정책은 공급과잉 상태 중소·중견 기업 중심 생태계 만들자” 정성훈 “광역시·도 ...

  • HERI
  • 2018.10.18
  • 조회수 21

서울 같은 대도시도 해법은 마을과 골목에서 찾아야

[더 나은 사회] 박원순-데이비드 코튼 좌담 박원순 서울시장 “전환도시 방향 확고하게 정할 시점 협동으로도 경제 살릴 수 있어 1 대 99의 사회, 마을에서 눈으로 확인” 데이비드 코튼 교수 “현재의 경제체제는 ‘자살경제’...

  • HERI
  • 2018.10.11
  • 조회수 100

“장애인에게 여행은 세상에 나와도 된다는 메시지”

[더 나은 사회] 장애인여행 전문 기업 ‘두리함께’ 방대한 자료 ‘무장애관광지도’ 펴내 “도움만 받다 자기주장도 펴더라… 하고 싶은 게 있는 주체 된 거죠” 두리함께를 통해 제주 바닷가를 여행 중인 관광객들. 두리함...

  • HERI
  • 2018.09.27
  • 조회수 84

공정여행의 진화…사회운동에서 ‘주민 참여형 산업’으로

[더 나은 사회] 지역경제 살릴 해법으로 새롭게 주목 ‘구름에’ ‘제주생태관광’ ‘동네봄’ 등 마을 특색 살린 프로젝트 잇달아 선봬 “정부의 관광정책 틀 다시 세워야” 지난 8일 경북 안동 성곡동에 위치한 전통리조트 ...

  • HERI
  • 2018.09.27
  • 조회수 139

‘고용’을 넘어 ‘사회적 포용’으로…“‘청년 문제’ 바라보는 시각 바꿔야”

[더 나은 사회] 불황기에 고용 중심 청년지원 힘쓴 일본 호황에도 니트·히키코모리 등 심해져 ‘일자리 만능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주거·문화 등 사회 안전망 확충 힘써야 “교수님, 적당한 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

  • HERI
  • 2018.09.20
  • 조회수 141

“자영업 위기, ‘최저임금 때리기’로 해결될 일 아니다”

[더 나은 사회] 국회에서 ‘한국의 자영업’ 토론회 열려 해외소비 늘고 외국인 소비 감소 겹쳐 한계 자영업자에 임금인상 부담은 사실 ‘기-승-전-최저임금’은 구조적 원인 호도 “자영업자, 현 정부 급격히 ‘지지 철회’” ...

  • HERI
  • 2018.09.20
  • 조회수 219

문제는 ‘전기요금 폭탄’이 아니라 ‘에너지 불평등’

관측사상 최악 폭염에 ‘전기요금 폭탄론’ 들끓자 한시적 인하 카드 꺼낸 정부 정치권 일부선 누진제 폐지 주장도 논란 소용돌이 속에 정작 폭염·에너지 대책 논의 사라져 에너지·환경 시민단체 쪽 “누구나 공급받아야 하지만...

  • HERI
  • 2018.09.20
  • 조회수 215

‘책임 있는 자본주의법’은 묻는다…“기업, 넌 대체 누구니?”

[더 나은 사회] 민주당 대권주자 워런이 발의한 법안 ‘연방법인’ 인가제…지배구조에 칼날 재계 반대 등 당장 현실화는 힘들 듯 불평등 해결하는 ‘새로운 상상력’ 의미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민주당)이...

  • HERI
  • 2018.08.30
  • 조회수 353

동네가 미디어다…삶의 현장을 바꾸는 저널리즘의 새 얼굴

[더 나은 사회] 어반플레이·닷페이스 등의 ‘다른 문법’ ‘내 이야기’에 주목하는 마을미디어들 독자를 ‘해결자’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 사회혁신의 대표 사례로 자리잡는 중 도시 문화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는 “(도시에도) ...

  • HERI
  • 2018.08.24
  • 조회수 235

최저임금 효과 측정할 통계 절실…예산 들여 체계 갖춰야

[더 나은 사회] ‘가계동향조사 논란’ 해법 모색 좌담 강신욱 보사연 선임연구위원 “조사마다 방법 각기 달라 불평등 지표 다르게 나오는 건 당연 다양한 정책수요 충족시킬 안정적 데이터 확보·유지 필요 공개 범위도 넓혀...

  • HERI
  • 2018.08.10
  • 조회수 391

“초과세수 근거로 증세 회피해선 안 돼”

감세 기조 ‘세법개정안’ 비판 봇물 고소득층·대기업에까지 세제 혜택 재정지출 늘렸지만 ‘돈 나올 곳’ 안 보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8년 세법개정안’을 설명하는 자...

  • HERI
  • 2018.08.02
  • 조회수 332

극한 치닫는 ‘을들의 다툼’…‘갑질’ 구조 개선 등 유기적 정책 필요

[더 나은 사회]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핵심정책들 종합적 고려 없이 추진해 ‘반발’ ‘미지근’ 종부세 개편안도 여론 지지 못 얻어 원하청 거래 개선·임대료 규제 등 영세자영업자 대책 실시하고 집값...

  • HERI
  • 2018.08.02
  • 조회수 386

“같은 고민 나누니 농촌에서 계속 살아갈 힘 생기던데요”

[더 나은 사회] 농촌청년여성캠프 연 해원과 들 농촌 2030 여성들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의 고민 나누는 느슨한 ‘연대’ “내 고민 말하니 사회로 연결되더라”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

  • HERI
  • 2018.07.19
  • 조회수 497

'같이'의 가치를 찾는 청년들의 자립 실험

[더 나은 사회] 귀농·비대졸 청년 자립 돕는 활동 늘어 ‘팜프라’·‘소풍가는 고양이’ 등 대표적 다양한 계층 감싸는 지원책 아쉬운 현실 실패 부담 덜어줄 사회안전망 갖춰야 청년 농부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팜프...

  • HERI
  • 2018.07.18
  • 조회수 429

‘삶의 질’ 초점 맞춘 ‘중장기 국가 비전’ 속속 나온다

학계와 정부기구 두루 통합적 사회정책 비전 마련 분주 정책기획위, 국가 미래비전 수립 사회정책 중장기 비전도 작업중 사회보장위, 사회보장기본계획 바탕 될 ‘사회보장 2040’ 준비 박차 복지부·기재부도 각각 경제·사회 패러...

  • HERI
  • 2018.07.06
  • 조회수 514

"지역의 윤리적 소비자가 에너지 전환의 주역"

마르코스 로마노스 ‘클레너지’ COO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 활용한 에너지 플랫폼 ‘파일론 네트워크’ 소개 “윤리적 소비자 정치력 높이는 게 목표” 지난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 사회적 경제 ...

  • HERI
  • 2018.06.21
  • 조회수 532

사회적기업, 새터민 앞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가려면…

[더 나은 사회] 해주부용식품·모어댄 등 사례 주목 문화충격 흡수하는 ‘완충장치’ 역할 일자리 이동 잦고 경쟁력 낮은 건 한계 ‘취약계층 보호’ 낡은 시선 벗어나야 북한이탈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열린 한 취업지원...

  • admin
  • 2018.06.21
  • 조회수 563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도 ‘집합적 임팩트’ 성공 ‘방정식’이

【HERI 더 나은 사회】 자동차 공장유치란 구체적 목표 세우고 이해관계자가 각자 전문성으로 시뮬레이션 대화와 소통으로 목표, 방법의 공감 넓혀 ‘‘집합적 임팩트’ 방법으로 일군 사회적 대화 윤장현 광주시장(왼쪽에서 5번...

  • HERI
  • 2018.06.08
  • 조회수 683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집합적 임팩트’ 주목

【HERI 더 나은 사회】 ‘지역 균형발전과 사회공헌’ 포럼 ‘집합적 임팩트’ 협력 모델 소개 복잡한 문제에 여럿이 함께 대응 서로 배우고, 고민하고, 성장하고 지역문제 푸는 소통, 참여의 해법 기업 사회공헌 새 모델로도...

  • HERI
  • 2018.06.08
  • 조회수 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