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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_4차 산업혁명 이후의 일 대한 두 시각
노동 없는 미래, 팀 던럽 지음, 엄성수 옮김/ 비지니스맵 (2016)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토마스 바셰크 지음, 이재영 옮김/ 열림원 (2014)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독일의 여성 노동자. 위키 커먼스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독일의 여성 노동자. 위키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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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으로 공공영역부터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자리의 거의 반이 비정규직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처우가 크게 다르기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설득력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두고 일선 학교의 교사들, 학교 밖 교사 지망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보면 정규직화가 쉬운 것이 아님에 틀림없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은 수입도 좋고 안정된 직장을 말한다. 반면 비정규직은 불안, 차별, 저소득의 상징이다. 고용도 보장되고 수입도 좋아서 모두가 원하는 정규직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까? 대략 대기업에 근무하는 120만명, 공무원 160만명, 공공기관 근무자 40만명 등 300만명 남짓이다. 경제활동 인구의 10% 정도인 ‘희귀한’ 자리를 두고 청년들이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몇 년간 고시원에 들어앉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정규직화를 밀어붙이면 ‘좋은 정규직’의 비율이 늘어날 수 있을까? 기업이 태도를 바꿔 정년도 보장하고, 연차가 오래되면 임금과 복지 혜택을 올려주려고 할까?

우리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정부가 일하고 싶은 사람의 완전고용과 정규직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는 쉽게 늘어나지 않고, 있는 일자리마저 임시직, 파견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변해가고 있다. 일자리에 어떤 구조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어 그렇게 되고 있다면 ‘완전고용-정규직’이란 기대는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신기루는 아닐까? 차라리 변화하는 방향에 맞게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제도를 바꿔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일이 잘게 쪼개지고 불안정해진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새로운 빈곤>(천지인)에서 전후 복지국가의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라고 말한다. 전후 복지국가를 이룬 합의는 우연에 의한 ‘일시적’인 것이며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생산에 투입해야 하는 인력이 부족했고, 노동윤리를 갖춘 양질의 노동력을 대규모로 재교육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역할을 복지국가가 담당했다. ‘조직 노동’ ‘전일제 노동’ ‘장기근속 노동’을 전제하는 정규직은 이런 전후의 합의에 조응하는 고용형태다.

그 뒤 세상은 달라졌다. 세계화, 기술발달 등으로 “오랜 세월의 노동이 축적한 어마어마한 능력 덕택에 수많은 구성원의 개입 없이도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 사회의 엔진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로 전환됐다. “생산자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사회로, 노동윤리의 사회에서 소비의 미학이 지배하는 사회”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연히 새 주인인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고용과 노동의 형태도 변해왔다. 이른바 수시로 고용하고 해고하며, 직무를 바꾸는 시공간의 유연화가 그것이다. ‘프레카리아트’(불안정성을 뜻하는 precarious와 임금노동자를 뜻하는 proletariat의 합성어)라는 임시직 노동자층이 세계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생겨났다.

바우만은 또 다른 저서인 <유동하는 근대>(한국어 번역 <액체 근대>(강))에서 이렇게 말한다. “노동은 이제 우리의 자기 정의, 정체성, 삶의 프로젝트들을 묶어둘 수 있는 확실한 축을 제공할 수 없다. 또한 사회의 확실한 윤리적 기초로 간주할 수도 없고, 개인적 삶의 윤리적 축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변화는 자동화와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술변화로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 등 플랫폼을 통해 중개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낯설지 않게 됐다. 이런 기술변화가 생산 및 서비스의 변화를 넘어 노동, 복지, 교육 등 우리 삶 전체에 큰 변화를 몰고 오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저성장, 고령화, 노년 빈곤,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가 중첩된 속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이 촉진하는 일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이 공허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 흐름이 기술변화로 ‘여울목’이 되려는 시기다. 팀 던럽과 토마스 바셰크의 두 책은 일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대조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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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소득이 깨진 시대, 생존노동에서 벗어나자

팀 던럽은 <노동없는 미래>에서 “우리가 해 온 일과 그 하는 방식이 그 뿌리부터 변하고 있다”며 “이제 풀타임 일의 시대는 끝나고 어떤 마법 같은 순간에 일자리들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헛된 기대 또한 접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 말한다. 그는 “일이 더 이상 유용하고 신뢰할 만한 부의 재분배 방식이 아닌” 시대에 우리가 대응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나눠본다.

첫째, 지금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노동 유연화로 임금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기업의 수익이 높아지면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는 지난 30여년간 세계가 경험한 불평등과 빈곤을 볼 때 이미 바닥이 드러난 논리다.

두 번째는 저자가 ‘미래로 돌아가는 접근 방식’이라 이름 붙인 것인데 모든 국민의 완전고용, 그것도 전일제(풀타임) 고용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팀 던럽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필요한 선을 넘어 과잉인구 취급을 받는 시대에 와 있으며 심지어 선진국에서도 기술 발전은 완전고용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팀 던럽이 예측하는 세 번째 대안은 ‘탈 노동’의 미래다. 이는 일을 하지 않는 미래라기보다는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급여를 받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미래”를 말한다. 그의 주장은 다음 구절에 함축돼 있다.

경제가 필요로하는 것보다 많이 남아도는 잉여인구인 상황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분배방식을 바꾸거나 아니면 인구의 상당수는 열악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말로 못다 할 만큼 호화로운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 (…) 더 이상 유급노동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뒷받침되는 세상은 이를테면 보다 활발한 사회참여와 지역사회 참여도 가능케 해주는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재능을 소득을 올리거나 이익을 내는데 쏟지 않고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세상, (…) 가족과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세상 말이다.

팀 던럽의 주장은 ‘노동 없는 삶’에 관해 얘기되는 익숙한 3단 논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노동은 그 의미와 경제적 안정성을 잃어가고 있다. 동시에 생산성이 향상해 최소 노동으로 충분해졌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노동이 우리를 만든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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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토마스 바셰크는 ‘탈 노동’이 아니라 ‘몰입된 노동’을 옹호하며 일의 미래에 대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에서 “우리에게는 더 적은 노동이 아니라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능력과 욕구에 부응하는 뜻 있고 좋은 노동이라면 말이다. (…) 중요한 것은 더 일찍 일을 끝내고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시간을 더 낫게 개조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바셰크는 노동은 그 자체로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본다. 좋은 노동은 자기 존중의 핵심적 조건인데 자신의 능력을 믿게 하고 자신이 가치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럴 때 인간은 좋은 삶을 산다는 느낌을 갖는다.

노동은 삶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우리를 사람들과 연결해 주며,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 좋은 노동은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목적이며,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내적 재화(예-자긍심 등)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노동으로부터 우리 정체성의 일부를 얻는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거나, 여가까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으로 보는 ‘이원적인’ 노동관은 잘못됐다고 본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도 “노동과 삶을 분리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자유시간의 확장만이 아니라 노동과 자유시간을 모두 우리의 욕구에 맞게 꾸민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세크가 보기에 자동화로 “임금 노동의 종말”이 왔다거나 우리가 “노동과 작별”하게 될 것이란 얘기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 근거로 거의 모든 유럽에서 90년대 이후 취업률이 지속해서 높아진 점을 들었다. 바세크도 시간제, 파견, 미니잡 등 변칙적 고용이 늘며 일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는 점은 동의하며 그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일자리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과 진정한 관계를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바세크는 무조적적인 기본소득에도 반대한다. 핵심 이유는 “기본소득이 노동의 가치를 무너뜨린다”는데 있다. 즉 “노동과 소득이 분리되면 노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더 발전시키려는 동기가 필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에 가치와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마감 시간, 성과 같은 고통스러운 의무에서 나오는데, 기본소득을 받으면 이런 고통을 감내할 이유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바세크의 관점은 노동을 인간의 소명으로 보는 독일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올 4월 한국노동연구원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가 주최한 ‘노동 4.0과 4차 산업혁명’ 이란 국제회의에서 독일 전문가들은 독일 노동계와 학계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놓치지 말지니, 무엇이 좋은 노동인가?

팀 던럽이 제시한 탈 노동과 토마스 바셰크가 얘기한 몰입 노동은 강조점의 차이가 있지만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미래에 사회 구성원이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며, 가정과 자신을 가꿀 안정된 소득과 여가를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기술발달이 사회구조를 크게 변화시키는 시대에,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일’, ‘좋은 노동’인지를 탐색하는 사회적 과정은 필요하다. 독일은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로 생산을 어떻게 효율화할지를 탐색하는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좋은 노동’(Gute Arbeit)에 대한 합의를 찾는 ‘아르바이트 4.0’을 병행하고 있다. 이 때 광범위한 구성원에게 던지는 질문은 “디지털화되어가는 사회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는가?” 이다.

문재인 정부는 9월 중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띄운다고 한다. ‘좋은 일’에 대한 독일의 질문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087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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