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성공의 로드맵을 짜자 ①과거에서 배우자
국내도 공론화 역사 오래됐지만 
기획·진행과정 갈등 겪으며 파행 

전문가 “시민 통찰력 등 믿어야” 
“공론조사 공정성·투명성 중요”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건설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지난 24일 출항의 닻을 올렸다. 3개월 동안 이어질 공론화위의 ‘항해’는 앞으로 치열하게 이어갈 ‘탈핵 논쟁’의 전초전 성격이기도 하다.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험장이 될 공론화위가 성공적인 결실을 맺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점검해보려고 한다. 국내 공론화 사례와 일본의 ‘에너지와 환경정책에 관한 공론조사’, 독일의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한 ‘동반위원회’, 그리고 전문가의 조언 등을 살펴보고 모두 네 차례에 나눠 싣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준 뒤 악수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준 뒤 악수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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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의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찬반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추진될 공론화 방식에 대한 관심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공론화 작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과거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정부 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정부가 투명성과 공정성, 전문성 등을 담보하기 위한 논의 틀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찬반 팽팽할때 공론화로 의사결정

‘공론화’는 일반적으로 공공의 영역에서 찬반이 팽팽하거나 여론수렴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작업이다. 합의회의와 공론조사, 시민배심원, 규제협상 등 다양한 의사결정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소규모 공론조사의 한 예로, 2011년 5월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은 ‘3색 화살표 신호등’ 설치 계획을 세운 뒤 시민들의 의견 수렴에 나섰다. 당시 경찰은 좌(우)회전 화살표 신호등을 세 가지 색으로 안내하는 ‘3색 화살표 신호등’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 여론이 끊이지 않자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가 열리기 전만 해도 참석자들은 찬성 26명·반대 67명으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공청회를 거친 뒤에는 찬성 48명·반대 47명으로 역전됐다. 참석자들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을 벌이도록 했더니 의견 분포도가 바뀐 것이다. 다만 조 전 청장은 “이 정도 찬성률로 전면 도입 추진은 무리다. 3색 화살표 신호등 확대 설치 계획을 무기한 보류하고 시간을 두고 재검토하겠다”며 사실상 백지화 선언을 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경우, 더 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방식으로 공론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공론조사 방식으로 모두 350명의 참가자를 선발할 계획이다. 대표성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를 한 뒤, 현안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 뒤 2차 여론조사를 진행해 이들의 여론 변화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공론조사 전문가인 김춘석 한국리서치 상무는 지난 25일 한겨레-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원전 문제 공론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공론조사는 일반 여론조사보다 충분히 숙의하고 토의한 결과를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여론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공적 기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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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새롭지 않은 오래된 역사

사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공론화 시도가 있었다. 1998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정책 제언을 위해 ‘합의회의’를 처음으로 연 데 이어, 1999년 생명복제기술, 2004년 전력정책 전반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모으는 시민배심원 논의가 이루어지는 등 이미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민단체 주도의 ‘실험’에 머물던 공론화 시도가 정부 주도로 넘어온 건 참여정부 때부터다. 여러 개혁 정책이 추진되면서 갈등과 대립을 겪는 사례가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을 빼들었던 참여정부는 2005년 후속조처로 시장 안정화를 뼈대로 한 ‘8·31 부동산 대책’ 발표를 앞두고, 여론 수렴을 위한 공론조사에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시민 511명을 선정해, 세제 개편과 거래 투명화, 중·대형 아파트 공급 확대 등의 과제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하는지를 물었다. 2007년 7월에는 부산항만공사가 부산 북항의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부산 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개발계획에 대한 공론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사패산 터널 공사(2003년)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2007년)도 공론조사에 부치려 했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사용후 핵연료의 공론화 추진 작업에 참여했던 김은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제도개선사무국 기획팀장은 당시 정부가 미군부대의 평택 기지 이전(대추리)과 새만금 간척사업 추진, 경주 핵폐기물 처분장 확정 등 갈등을 겪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공론화 필요성이 부각됐다고 강조한다. 그는 “정책의 입안자나 결정자가 전문가의 이야기만 듣고 결정한 뒤, 이를 국민에게 설득하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방식에 대한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 ‘원전 문제 공론화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우자’ 사회정책포럼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호 전 한수원 제도개선사무국 기획팀장, 황용수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김춘석 한국리서치 상무,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김창섭 가천대 교수,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 ‘원전 문제 공론화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우자’ 사회정책포럼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호 전 한수원 제도개선사무국 기획팀장, 황용수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김춘석 한국리서치 상무,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김창섭 가천대 교수,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시민 능력 믿어야…논의 주제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은 공론화 운영 경험과 달리, 전문가들은 과거 공론화 사례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공론화나 사회적 합의로 에너지 문제 갈등을 해결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며 과거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나 2013년 밀양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 꾸렸던 ‘전문가 협의체’ 사례가 논란을 봉합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공론조사 전문가인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지난 7월 정책브리핑에서 “우리나라 사례를 검토해보면, 문제는 공론조사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당국의 투명성, 전문성, 설명책임 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춘석 상무는 “당국의 공론조사 진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기관 주도의 공론조사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으로 이어질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 방식에 대해,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있는 이슈이므로, 전 국민이 학습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룬 뒤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공적인 공론화를 위해서는 ‘시민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황우석 전 교수의 줄기세포 논란 당시와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시민들이 보여준 사회적 논의와 빠른 학습 확산 속도가 공론화 과정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합의 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논의 주제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황용수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신고리 5·6호기의 영구중단 여부로 주제를 좁혀 논의하고, 원자력의 장래에 대한 논의는 별도의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최하얀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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