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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토요일, 내가 사는 경기도 파주에서는 한 시민단체의 지역역사올레 행사가 열렸다. 한국전쟁을 주제로 올레길을 걸으며 참가자들은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고, 미래의 평화를 기약했다. 이제 두 번째 행사였지만 신청자가 넘쳤다. 지역 소속감이 아무래도 약한 편인 신도시 주민들도 지역의 역사를 알고 싶다며 꽤 많이 참가했다.

자기 지역 역사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당연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 당연한 현상에도 사실은 약간의 수고가 깃들어 있다. 이 시민단체는 올해부터 지역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 몇 가지를 시작했다. 학부모라고 제 자식 성적에만 관심이 있을 거라는 편견을 버리자 제법 호응이 왔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교육 현장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구체적인 개선점들을 찾아나가는 방식을 취한 것도 나름 성과를 낳았다는 전언이다. 여기 참여한 주민들이 다른 주민들에게 역사올레를 홍보했다. 올레걷기의 ‘소박한 대박’에는 이런 수고의 밑거름이 있었다.

이 수고 앞에 놓인 또 다른 수고도 상기하고 싶다. 파주는 오랫동안 보수의 아성이었다. 작년 총선 때, 지역 시민단체들이 연대해서 사상 처음으로 접경지 선거구의 보수후보에 대해 낙선운동을 펼쳤다. 시민들이 호응한 것인지 제헌의회 이후 최초로 보수후보가 낙선했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힘겹게 버텨오던 시민단체들은 힘이 났다. 지난해 10월, 백남기 농민 추모분향소를 차릴 때는 지역의 33개 시민단체가 함께했다. 지역 역사상 최대의 연대였다. 이윽고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단체들은 힘을 모아 파주비상시국회의를 결성했고, 지역 곳곳에서 함께 촛불을 들었다. 광화문으로도 함께 나갔다.

올해 시민단체들의 일상사업에 진전이 있다면, 2016년의 과감한 정치적 행동이 그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에서부터 총선, 촛불집회와 탄핵, 대선까지의 경과를 보면, 지역의 일상사업과 전국적 정치사안은 결국 함께 굴러가는 두 바퀴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국민의 여망 위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내 삶이 바뀌는 정치’를 내세웠다. 지난 두 달간 소박하고 진솔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감동을 안겼고 찬사를 받았다. 물론 인사청문회를 비롯해서 여전히 중앙정치는 갈등에 싸여 있고, 수많은 난제가 쌓여 있다.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들이다.

하지만 ‘내 삶이 바뀌는 정치’를 위해서는 중앙정치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모자란다. 내가 발 딛고 사는 곳, 지역이 서서히 바뀔 때 내 삶도 바뀐다. 아직도 지역 곳곳은 중앙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적폐의 굴레들로 가득하다. 지역에 기반한 작은 실천들, 그 수고로움들이 힘이 된다.

정치권, 학계, 언론은 지난 19대 대선이 유권자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정렬한 정초선거였는지 관심이 높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초대형 변수 탓에 결론이 쉽지 않지만, 그렇게 평가할 소지가 작지 않다. 하지만 정초선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선거 결과의 파격성, 중대성만큼이나 이후의 지속성이다.

1년 뒤면 지방선거다. 지역의 손과 발이 되겠다는 일꾼들을 뽑게 된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는 출마자의 이름조차 처음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삶이 지역과 동떨어져서 그렇다. 오래 지속하려면 이래서는 안 된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찾아보자. 각자의 동네마다 무언가 수고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수고할 동네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