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 리뷰] 넓은 세상 다른 시각


» 지구온난화, 한국 제조업엔 새로운 기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교토의정서와 배출권 거래제도가 비장의 카드인 것처럼 종종 논의되고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열쇠는 전기 관련 기술이 쥐고 있다.

한국이 지구온난화 대책 수립에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가지, 즉 에너지 절약을 철저히 추진하고 실효성 있는 포스트 교토의정서와 같은 국제협약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나라이며, 동시에 에너지 안보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국익에도 부응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흔히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북극곰이나 고산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는 문제를 머릿속에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위협받게 된다는 점이야말로 우선적으로 걱정해야 할 더욱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매우 아쉽게도 인류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책과 처방을 마련하는 데 있어 여전히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와 배출권 거래제도가 비장의 카드인 것처럼 종종 논의되고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교토의정서는 실패했고 이를 지속시키려고 하는 유엔 중심의 온실가스 감축 교섭은 좌초된 상태이다. 그 이유는 배출 범위 할당을 둘러싸고 각국 정부들 간에 밀고 당기기 게임만 지루하게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출 범위는 공평하게 할당되고 확실히 집행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작 교토의정서는 정치적 해결에 따른 불공평한 할당, 미국 등 주요 국가의 불참, 캐나다 등 몇몇 나라들의 감축목표 무시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배출 범위를 할당한다는 사고방식은 한편으로는 매우 단순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들어맞지 않는 복잡한 방식이었으며,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배출권 거래제도의 실효성 떨어져

배출권 거래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이나 미국의 선행 사례를 보더라도, 양적으로 막대한 양이 거래되고는 있지만 배출권 거래 자체를 통해 온실가스가 감축되거나 온난화 대책 기술 개발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다. 배출권은 인위적 상품이기 때문에 규제에 관한 정보가 난립할 때마다 가격이 급격히 변동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설비투자나 개발투자에도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규제 당국은 배출권 거래로 배출 총량을 큰 폭으로 줄이려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에너지 가격이 심하게 변동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배출량을 엄격하게 할당하기가 힘들다. 배출권 가격이 종종 폭락하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배출권 거래제도는 이론상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자유로운 거래만 성사된다면 전체 효율이 최대가 될 것이라는 극히 단순하고 낡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이론일 뿐이다. 우리는 이와 거의 유사한 이론에 매달리다가 아시아 금융위기, 엔론사태로 막을 내린 에너지시장 규제 완화, 그리고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지켜봐왔다. 이러한 류의 ‘개혁’이란 흔히 가치가 불확실한 것을 증권화하여 매매하고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나 제도를 만들고 유지함으로써 업적을 쌓는 공무원들이 추진하고,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방식일 뿐이다. 배출권 거래제도 역시 그렇지 않겠는가? 배출권은 정책이나 규제를 바탕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니만큼 자칫 잘못하면 장부 조작으로 꾸며지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배출권 거래제도가 지구온난화에 대한 진정한 대책으로 유효한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성급하게 도입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교토의정서 참여는 오히려 실(失)이 많아

지구온난화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보여줘야 할 가장 커다란 기여가 있다면, 그것은 에너지 절약 기술을 개발하고 한국 내에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함으로써 세계 여러 나라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을 추진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한국의 제조업은 중국 등에 꾸준히 진출해왔다. 효율적인 공급망을 찾는 글로벌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기술력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는 국민소득 수준과 곧바로 직결된다. 에너지 절약 정책을 적절하게 시행함으로써 한국 제조업은 세계 최첨단 기술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과의 냉전이 아직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 또한 한국이 에너지 절약을 추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에너지 절약을 추진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에너지 가격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면 생활이 위협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에너지 절약제도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범위 안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방법은 에너지 절약 효과가 크다고 한다. 즉 에너지 효율이 나쁜 제품은 규제를 통해 시장에서 배제시키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은 라벨을 붙여 소비자에게 알기 쉬운 형태로 권장하는 것이다. 공장에서는 에너지 관리 표준을 정해 이를 운용하도록 의무화한다.

물론 한국이 특별한 에너지 절약 기술 관련 제품을 단독으로 개발한다 해도 그 제품이 전 세계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산업으로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긴밀한 협조는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2013년 이후까지 교토의정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교섭으로 한국이 얻을 이해득실을 따져보자. 한국은 교토의정서상의 제2차 이행기간에 참가해 선진국처럼 감축목표 총량을 공약해야 할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감축목표가 낮으면 손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렇지가 않다. 한국인 한 사람당 배출량은 이미 유럽이나 일본과 비슷하거나 약간 많은 수준이다. 감축목표를 정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한국은 선진국과 똑같은 야심적인 감축량을 요구받을 게 뻔하다.

에너지 절약의 실마리는 ‘전기’에서부터 찾아야

그렇다면 한국은 교토의정서 제2차 이행기간에 참가하고 다른 개발도상국과 보조를 맞춰 모든 의무에 반대하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 역시 아닐 것이다.

한국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중간에 위치하는 입장을 살려 상대방의 배출 범위를 엄격히 만들고자 하는 현재의 무의미한 교섭을 그만두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구온난화 방지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새로운 국제적 틀에 합의하도록 각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에너지 절약은 많은 나라들에게 국익이 되므로 에너지 절약 정책 강화에 대해서는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이미 세계 각국에는 각각의 에너지 절약 정책이 존재하므로 이를 획일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각국에서 각각의 정책을 한층 강화시킬 수 있도록 국제적인 틀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한 틀의 하나로, 지난 6월에 일본 아오모리(靑森)에서 열린 선진8개국(G8) 에너지 장관회의에서는 ‘에너지 효율 협력을 위한 국제 파트너십’(International Partnership for Energy Efficiency Cooperation·IPEEC)이 결성됐다. 여기에는 선진8개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과 같은 제조업 기반의 나라들이 참가해 각국의 주권을 존중하면서 에너지 절약 체제를 강화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이상과 같은 활동들은 한국의 국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은 한국 내에서 에너지 절약을 철저히 시행함으로써 여러 가지 국가적 이익을 달성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각국이 첨단 에너지 절약 기술을 도입하도록 적극 권장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높은 기술 수준을 기반으로 한 훌륭한 한국 제품을 전 세계에서 더욱 많이 판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50년, 100년이라는 세월 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 이하로 감축해야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이 앞으로 배출할 가스의 증가분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의 배출량은 현재의 몇 분의1수준으로 떨어져야 한다. 실제로 가능할 수만 있다면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장기 전망을 어떻게 수립해 나갈 것인가?

그 열쇠는 전기 관련 기술이 쥐고 있다. 발전 측면만 놓고 본다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기술인 원자력도 이미 확립돼 있다. 그리고 화력발전소에서 이산화탄소를 땅밑에 저장하는 이산화탄소 회수 및 저장기술(CCS),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를 구사한 태양전지 기술 등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도 전기를 생산해내는 게 가능하다. 수요 측면에서도 반도체조명(LED), 에너지 절약 액정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제조업이 크게 활약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그간 전기는 저장할 수 없다는 점이 커다란 약점이었으나 최근 배터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자동차마저도 전기로 달릴 수 있게 됐다. 깨끗한 에너지 하면 흔히 수소를 떠올리지만 실은 수소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 전기로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전기 기술은 이미 확립된 상태이고 또 급속도로 더욱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 지구온난화 대책이 세계 규모로 진행됨으로써 한국의 제조업이 활약할 공간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은 석유를 전기로 대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안보상의 무수한 이점 또한 누리게 될 것이다.

스기야마 다이시(杉山大志)
일본 전력중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스기야마 다이시(杉山大志) 일본 전력중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동경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물리공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1993년 이후 전력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력사업에 주도적으로 참가해왔다. 2004년 이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보고서 작성의 실무 총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전력중앙연구소의 ‘지구온난화 방지대책 분석과 제언’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Governing Climate: The Struggle for a Global Framework Beyond Kyoto〉, 〈Scenarios for the Global Climate Regime After 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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