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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이탈리아. 정신병원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핏기 없는 얼굴의 무리가 내리쬐는 햇빛이 버거운 지 고개를 모로 꼰 채 걸어나왔다. 얼마 전 의회를 통과한 ‘바자리아법’ 에 따라 정신병원이 폐쇄되고 수용돼 있던 환자가 사회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자리아가 주도한 이 법은 “자유가 바로 치료” 라는, 정신병에 대한 획기적인 시각전환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정신병자를 오래도록 잠재적 범죄자 취급해 온 한국에서도 근래 격리가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늘고는 있다.

 

그런데 환자를 사회로 돌려보낸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데다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을 고용해 주는 회사가 많을 리 없다. 결국 정신장애인은 골방에 틀어박히기 일쑤인데 이는 병원에 수용된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게 해야 치료가 된다. 고민 끝에 활동가들이 찾은 결론은 사회적 협동조합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이윤 보다는 정신장애를 가진 환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사회적’ 기업이며, 정신장애자가 주인이자 종업원이기에 ‘협동조합’이다.

 

그 중 하나가 1981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문을 연 ‘논첼로(noncello) 협동조합’이다. 바자리아법 시행으로 문을 닫게 된 의사 3명과 환자 6명이 만든 이 협동조합은 그 뒤 탄탄하게 성장해 지금은 이탈리아 사회적 협동조합 중 가장 큰 기업이 됐다. 조합원이 약 600명이고 그 가운데 30%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주된 사업 분야는 목공, 가구 수리, 도예, 원예업, 청소 등이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옛 소련 시절 크렘린궁전의 복도 공사까지 했다고도 한다. 모두가 밝고 신나게 일하기 때문에 누가 정신장애를 가졌는지 알기 어렵고, 굳이 알 필요도 없다는 게 조합 대표자인 스테파노 만토바니의 말이다.

 

위캔두댓.jpg

 

협동조합 열기와 맞물려 올 해 우리나라에서 공동체 상영방식으로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 <위캔두댓> (We can do that)은 이 논첼로 협동조합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 영화 속 ‘안티카 협동조합 180’에서 정신 장애인들은 관리자 넬로의 지원 아래 우표 붙이는 단순작업을 던져버리고 바닥 타일링 작업을 새로 시작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영화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란 우리의 편견에 도전하며, 사회가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들도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사회복귀를 돕는 사회적 기업은 우리 주변에도 찾아볼 수 있다. 한 예로 전주의 영농조합법인 ‘두메산골’(대표 유현주)은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여성을 고용해 친환경 닭고기와 훈제오리를 생산하고 있다. 1997년 남편과 이 회사를 만든 유 대표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심이 높아, 흑자를 내던 회사를 2011년 일부러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해마다 순이익의 70%를 어려운 이웃에 기증하며 다문화 가정의 한글교육, 치매노인을 위한 봉사활동 등에도 힘써왔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044 달러로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한다. 소득은 늘어났지만 양극화는 심해졌다. 9월말 현재 고소득층(5분위 계층)의 가처분 소득이 저소득층(1분위 계층)의 5.05 배로 지난해의 4.98배 보다 커진 게 증거다. 국민들이 성장의 따스함을 몸으로 느끼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장애인, 고령자,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정 경력단절 여성 같은 취약계층은 ‘설국열차’의 맨 뒤 칸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마을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는 이런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와 어울리도록 해 지친 이들이 숨을 돌릴 공간이 된다. 특히 정부가 모두 할 수 없고, 직접 할 때 비효율이 발생하는 복지 전달 체제 안에서 사회적 경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199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시행된 지 6년이 지난 현재,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 기업이 970 여 곳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1만3천명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그 중 상당수는 취약계층 일자리다. 또, 지난해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1년이 채 안된 현재 전국에서 3천여 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정부 지원이 없어도 살아남는 능력을 갖추는 게 여전히 과제이지만 협동과 공유에 기반을 둔 사회적 경제 영역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확실하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영국만 해도 7만개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데, 100만 개의 일자리, 연간 240억 파운드 (약 42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Social Enterprise U.K’ 보고서).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과 소규모 협동조합 기업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판로 확보다. 제품을 정성스레 만들어도 유통에서 제대로 인정을 못 받아 선순환 구조를 갖추지 못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정부는 대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홈쇼핑 TV, 온라인 마켓, 대형유통 업체가 이들 기업과 협력하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 해 100조원 이상의 물품을 구매하는 정부도 조달관련 규제를 정비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의욕을 갖고 정부 구매에 도전하도록 해야 한다.

 

일반 소비자가 할일도 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패턴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기업이 힘겨워하는 것이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만든 제품이면 품질이 낮을 것으로 보는 편견이다. 물론 사회적 경제 기업들도 품질 향상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다.

 

가로수에 꼬마 전구가 드리워지고, 백화점 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세워졌다. 올 해는 사회적 경제 기업에 눈을 돌리는 따뜻한 세모가 되길 기대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경제커뮤니케이션 박사)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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