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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일산 신도시 덕이동엔 의류 할인매장이 밀집해 있다. 휴일에 가끔 둘러보는데 품질 좋은 옷이 신상품의 반 값에 나와있고, 잘 고르면 10분의 1 가격에 건질 수도 있다. 백화점에 진열된 신상품 의류는 계절이 바뀌면 할인매장으로 향하고, 마침내는 저울로 달아서 팔리는 신세가 된다. 의류야 말로 소비자를 세분화해 신상품은 고가전략을 쓰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격을 낮추는 스키밍’(skimming) 전략을 제대로 쓰는 것 같다..

 

요즘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란 새로운 흐름이 두드러진다. H&M(스웨덴), 자(Zara 스페인), 갭( GAP, 미국), 유니클로(UNIQIO, 일본) 같은 브랜드가 패스트 패션을 선도한다. 사전에서 '패스트 패션'을 찾으면 이렇게 씌어있다..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 비교적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하는 패션 또는 패션사업을 뜻하는 말이다. 주문을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인 패스트푸드(fast food)처럼, 빠르게 제작되어 빠르게 유통된다는 의미…” (두산 백과사전)

 

패스트 패션은 1~2주 단위로 신상품 내놔

  

반 패션업체는 계절마다 신상품을 내놓지만 패스트 패션 업체는 1~2주일 단위로 신상품 내놓는다. 심지어 3~4일 만에 상품을 교체하기도 한다. 유행을 재빠르게 디자인에 반영하고 하루라도 일찍 매장에 내놓는 게 이들의 성장 비결이다. 그래서 패션쇼에 본 옷이 한 달도 안돼 매장에 걸려있고, 영화배우가 입고 나온 옷이나 액세서리가 며칠 안돼 진열돼 있곤 한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와 궁합이 맞는 듯한 패스트 패션은 사실 두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가능해졌다. 우선 적시에 새로운 디자인을 해낼 수 있어야 하고, 다음은 싼 값에 빠르게 만들어 내야 한다. 패스트 패션 업체는 소수의 스타 디자이너 대신 수백 명의 일반 디자이너를 고용해 빠르게 많은 양을 디자인하는 체제를 갖췄다. 생산은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같이 임금이 싼 지역에 공장을 세워서 한다. 소비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새 옷을 사고 쉽게 버린다. 이를 통해 패션산업은 자본의 회전력을 높일 수 있고 이윤을 극대화한다.

 

숨겨진 내막을 드러내준 건물 붕괴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매장을 나서는 소비자도, 매출과 이윤이 늘어나는 패스트 패션업체도 행복하다. 하지만 이런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 어떻게 가능한 지를 알려주는 사건이 간혹 터져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지난달 24일 일어난 방글라데시 다카 외곽 사바르의 라나 플라자건물 붕괴사고가 그런 사건이다. 의류공장 5개와 상가가 입점해 있는 8층짜리 이 건물 붕괴로 숨진 사람만 1,127 명이고, 2,500명은 부상을 입었다. 희생된 사람들은 거의 다 국제적인 패스트 패션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였다. 이들은 H&M, , Inditex (자라 계열), 테스코, 월마트 같이 세계적인 패스트 패션업체나 유통업체에 납품할 물건을 만들었다.

 

방글라데시2.jpg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건물 붕괴로 1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로이터/한겨레 자료사진)

 

사고 며칠 전부터 노동자들은 틈이 점점 넓어지는 벽을 보며 불안해 했다. 붕괴 전날 그 건물을 찾은 산업 순찰관들은 겁에 질린 여공들을 보고 안전진단이 끝날 때까지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했다. 공장주들은 콧방귀를 끼며 미싱을 계속 돌렸다. 무서워서 출근을 못하겠다는 노동자들에게 해고하겠다 위협하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이 이토록 무리를 해야 했을까? 촉박한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했을 때 원청 업체에게서 받을 압박과 불이익을 걱정했기 때문이란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비유하자면 패스트 패션이란 주인이 수상스키를 즐길 때 노동자들은 지하에서 북소리에 맞춰 죽을 때까지 노를 저어야 했던 수병과 같은 처지였다.

 

공장주들은 노동자의 안전이나 복리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신경을 쓰려해도 여력이 없었을 지 모른다. 패스트 패션 업체들이 제시하는 납품단가가 워낙 낮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는 중국, 이탈리아에 이은 세계 3위의 의류 수출국이다. 5천여 개 의류공장에서 360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 시간당 임금은 24센트 정도다. 한 달을 해도 40달러(45천원) 벌기 어렵다고 한다. 시간당 임금이 1달러 26센트인 중국, 52센트인 파키스탄, 45센트인 캄보디아 등 글로벌 기업의 하청을 하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다. 사실 이렇게 임금 수준이 낮은 게 글로벌 의류 기업이 방글라데시에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건물 뿐 아니라 방글라데시의 섬유공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11월 말에도 다카 교외의 한 의류 공장 건물에서 불이 나서 110명이 희생됐다. 2006년 이래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000명에 이른다. 그렇지만 의류 산업은 방글라데시 국내총생산(GDP) 3분의 2를 생산하는 핵심 산업이다. 연간 200억 달러의 매출이 발생하고, 이 나라 수출액의 80%가 여기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정부도 의류산업에서 일어나는 불법은 눈 감아주는 일이 많고 사고가 나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때가 많다.

 

사회책임경영(CSR)을 한다지만

 

세계를 풍미하는 패스트 패션은 그 뒷면에 이렇게 제3 세계의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조건을 끼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72) 전 그라민은행 총재는 이번 참사가 난 뒤 패스트 패션 회사에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을 두 배로 올리고 옷 한 벌 당 50센트 추가해 노동자 복지기금으로 쓰자고 호소했다. 소비자에게는 35달러짜리 가격표가 35달러50센트로 바뀌는 정도이겠지만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삶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국제 비정부 단체들은 클린클로즈캠페인을 통해 글로벌화된 의류 산업이 공정무역을 추구할 것을 촉구해 왔다. 이번 참사 뒤 이들은 외국계 기업에 ‘방글라데시 화재 및 건물 안전 협정’ 가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여론의 지지가 확산됐다. 이 때문에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둔 글로벌 패션기업 여럿이 자의반 타의반식으로 가입했다. 세계 두 번째로 큰 의류 업체인 H&M, ZARA, 독일계 유통업체 C&A, 영국계 프리마크, 미국 퍠션업체 캘빈클라인 등이 협약에 서명한 업체들이다. 월마트나 GAP은 협약에 동참하지 않은 채 자체적인 공급 망 기준을 강화하고 근로환경 개선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생산비중이 낮은 디즈니 같은 곳은 협약 서명대신 이 나라에서 철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한국의 패션 의류기업들도 방글라데시에서 큰 손이다. 투자 규모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가 이 협정에 서명한 업체가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방글라데시1.jpg

       무너진 건물에서 17일만에 한 여성이 구조되고 있다.                                (AP/ 한겨레 자료사진)

 

패스트 패션의 문제는 제3세계 공급망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열악한 실태만이 아니다. 갈수록 짧아지는 유행 주기에 맞춰 옷을 사들이려면 멀쩡한 옷을 그 만큼 빨리 버려야 한다. 낭비되는 자원과 환경오염은 지구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위협을 주고 있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데 드는 면을 생산하려면 1500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영국 한 나라에서만 10억 파운드( 1 7천억 원) 어치의 옷이 매년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글로벌 패션의류 업체들은 사회책임경영(CSR)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하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지속가능성 보고서도 내 왔다. H&M 만 해도 올 3월부터 산하 1500개 매점에서 헌 옷 수거 운동을 시작했고 가을까지는 2800개 매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매장으로 헌 옷을 가져오면 다음에 옷을 살 때 15%를 할인하는 바우처를 준다. 수거된 옷을 스위스의 신생 벤처 ‘I:CO’ 에 넘겨 재활용하거나, 낡은 것은 걸레나 섬유의 원료로 활용한다.

 

덴마크 패션 업계는 '적당한 고급품' 목표

 

그렇지만 이번 참사에서 보듯이 이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이 보여주기에 그쳐 정작 중요한 것은 쏙 빼놓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패스트 패션이 노동자의 인권이나 환경, 자원의 지속 가능성과 양립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계속 따라 나온다. 그렇다고 제3 세계에서의 하청생산을 중단하라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 나마 없으면 그나라의 노동자들은 한층 더 궁핍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공정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업과 사회가 함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덴마크의 패션산업의 전략은 이런 점에서 참고가 된다. 덴마크의 패션 의류업계는 유행에 민감한 의류를 염가에 공급하는 패스트 패션 보다는 적당한 고급품’(affordable luxury)을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한다. 디자인을 수시로 바꾸기 보다는 덴마크 전통문양을 응용하고, 입기 편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정한’(fair) 가격에 판다. 여기서 공정한 가격이란 기업이 국내외 공급망을 착취하지 않고, 자원절약이나 환경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면서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가격을 말한다.

 

지혜로운 소비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소비할 때마다 윤리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라면 너무 거추장스러울 지 모른다. 그럴 때는 세상이 모두 연관돼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떨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물결 속에서 인권유린, 자원낭비, 환경파괴가 아무 거리낌없이 행해지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시장이 주는 익명성 뒤에 숨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옷을 입을 수 있는 지, 어떻게 이 커피를 마시게 됐는 지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경제-커뮤니케이션학 박사)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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