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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본고사 그 ‘어둠의 역사’

HERI 2011. 06. 27
조회수 10203
2009-04-21

“음악시간에는 수학책 가져가야”
“수학시험 어려워 평균 10~20점”
“우열반 위화감으로 싸움 나기도”
“과외 못 받으면 등수 한참 밀려”
결국 80년 7월30일 본고사 퇴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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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일부 대학이 부활을 꾀하는 본고사는 군사정권으로부터 폐지되고도 시민의 환영을 받은 ‘굴욕’의 역사가 있다. 당시 ‘7·30 교육개혁’의 내용을 보도한 신문.


본고사 1세대’들이 털어놓은 당시 고교생활


“학교에는 졸업장(자격)을 받기 위해 가고, 진학을 위한 실력(요령)은 과외에서 얻는다는 말에 별다른 저항을 느끼지 않는 우리 교육 … 학교는 한낱 요식을 갖추는 형해적 존재로 밀려나버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학교 입학생의 면접에서 오늘의 기쁨을 누구에게 돌리겠는가 하는 물음에 거의가 ‘과외선생님에게’라고 답하기도 했다 한다.”(조선일보 1980년 2월15일치 사설)

30년 전에도 학교교육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 이유 역시 지금과 비슷했다. 학교교육만으로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탓이었다. 당시 넘기 힘든 대학의 문턱에는 ‘본고사’가 있었다. 1980년 7월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교육 정상화 및 과열 과외 해소 방안’을 통해 본고사를 폐지했다. 본고사는 왜 폐지됐을까? 2012학년도에 일부 대학이 부활하겠다고 공언하는 본고사의 그늘진 역사를 본고사 1세대, 70년대 학번들이 털어놨다.

군사정권 아래에 있던 당시의 사회가 준전시 체제였다면 학교는 온통 대입을 위한 본고사 체제였다. 0교시를 넘어 7시부터 수업하는 ‘마이너스 1교시’ 수업도 있던 때였다. 학교 교육과정은 대학이 본고사로 치르는 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재편됐다. 휘문고에서 76년부터 생물을 가르친 서삼천(64) 교사는 “학급 시간표의 음악 과목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쳐 있었는데 그건 수학 교과서를 가져오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특정 대학의 본고사 과목에 맞춰 수업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종구(56)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상임의장(성공회대 교수)은 학교가 제2외국어를 치르지 않는 연세대 입시에 맞춤한 교육과정을 운영한 탓에 제2외국어를 저녁 6시에 하는 보충수업으로만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의 중간·기말고사는 본고사를 위한 모의고사였다. 서 교사는 “당시 대학의 본고사 문제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학교 시험도 그런 유형으로 비슷하게 냈다”며 “수학은 0점 맞는 학생들이 전체의 30~40% 가까이 됐고 평균이 10~20점이 되도록 어렵게 냈다”고 되돌아봤다. 광주일고를 다녔던 김용철(51) 변호사는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출제 범위는 교과서가 아니었다”며 “영어는 서머싯 몸의 소설이나 케네디 연설문 같은 것을 수업시간에 공부했고 시험 문제도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최근 학력 경쟁에 몰두하는 학교들이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우열반의 뿌리도 70년대 고교에 있다. 서울의 배문고에 다녔던 임순기(50)씨는 “우반 60명이 자율학습을 하던 교실은 독서실처럼 꾸며져 있었고 당시에는 잘사는 집에도 흔치 않았던 에어컨까지 있었다”며 “학교에 새로 부임하는 교사는 우반에서 먼저 수업 시연을 해야 했는데 우반 학생들이 오케이 하지 않으면 고교에서 수업을 못하고 중학교로 발령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승열패의 논리에 사로잡힌 학교에서 약자로 내몰린 ‘열등생’들의 저항은 지금보다 그때가 더 직접적이었다. 석원정(51)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소장이 서문여고 3학년이던 때, 열반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고 수업을 거부했다. “제가 열반과 우반에 다 있어봐서 아는데 열반에서는 선생님 말을 안 들으면 따귀를 맞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반은 맞을 짓을 안 하기도 했겠지만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학생을 대하는 걸 본 적이 없죠.” 우반과 열반 사이의 위화감이 학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는 일도 흔했다. 이종구 교수는 “그때는 열반을 ‘돌반’이라고도 했는데 2학년 우반 아이가 3학년 열반 선배들을 ‘똘반’이라고 불렀다가 ‘아무리 못나도 형은 형 아니냐’며 선배들이 크게 화를 내 싸움이 난 적이 있다”며 “이런 일이 잦으니까 학교에서는 우열반을 없애 버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 입시 준비에 철저히 골몰했던 학교교육이 불신의 늪에 빠진 이유는 뭘까. 본고사의 고난도 문제를 학교교육이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종구 교수는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할 때 착륙 궤도는 직선이었나, 나선이었나?’를 물었던 70학년도 서울대 본고사 물리 과목 1번 문제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69년 아폴로호가 달에 간 직후여서 나온 모양인데 그걸 아는 교사가 어디 있었겠느냐”며 “당시에 대학은 고교 교육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교과서 밖의 문제도 자유롭게 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대 본고사 수학 과목은 일본의 최고 대학인 도쿄대 대학별 고사 수준의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 김현대(49) 한겨레경제연구소 지역경제디자인센터 소장은 “학교에서 우열반을 편성해 우반에 잘 가르치는 선생님을 배치했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됐기 때문에 잘사는 집 친구들은 돈을 주고 과외를 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의사 집안 친구들과 모둠을 이뤄 대구의 유명한 학원 강사한테 석 달동안 과외를 받은 뒤 본고사 준비의 감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정병국(51) 한나라당 의원은 학원이나 과외를 받을 형편이 아니었던 탓에 국·영·수 과목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회상한다. “우열반 가운데 우반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따라잡기가 힘들더라고요. 국·영·수만 시험보면 등수가 한참 밀리고 전과목 시험 보면 등수가 좀 오르고 그런 일을 반복했습니다.”

당연히 대학 입시에서 학원이나 과외의 몫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79년 12월 경제기획원이 전국의 초·중·고생 2만6513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고교생의 10.43%가 과외를 하고 있었다. 1980년의 대학진학률 27.2%를 고려하면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의 절반이 과외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과외비 지출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 당시 국보위가 추산한 과외비 지출 규모는 한해 5천억원 정도였는데 당시 국민총생산 22조2500억원의 2.25%에 달하는 규모다. 2007년 조사한 우리나라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20조400억원으로 901조1886억원에 이르는 국민총소득의 0.2%였다. 80년대의 사교육비 지출 규모가 현재보다 10배가 더 큰 것이다.

“과외로 인한 빈부 간의 위화감을 없애고 수험생들을 입시의 2중고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본고사가 대학 입시에서 퇴출당하던 1980년 7월30일, 조선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본고사를 부활하려는 ‘현재’의 대학은 본고사의 ‘과거’와 소통하고 있는 걸까.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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