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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목요장터가 열린 4월14일 충남 천안시 쌍용동 광명아파트의 공터. 농민 10여명이 냉동탑차에 싣고 온 물건의 진열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아파트 안내방송을 듣고 찾아온 주민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파와 열무, 얼갈이배추, 상추 등의 채소는 물론이고, 무항생제 달걀과 버섯, 벌꿀에 이르기까지 30여 품목이 금세 주민들의 바구니로 옮겨졌다. 장터는 30분 만에 문을 닫고, 농민들은 또다른 아파트단지로 옮겨갔다.
냉동탑차 도입한 뒤 인기 급상승
올해는 농산물유통지도자회(회장 배경수) 회원인 25 농가가 목요일마다 2개 조로 나누어 아파트 25곳을 순회하고 있다. 1조와 2조는 각각 7~8대의 냉동탑차를 보유하고 있고, 한 아파트에서 30분 반짝 장터를 연다. 1조는 아파트 11곳, 2조는 아파트 14곳을 순회한다. 최고의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점심시간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 오후에 팔 농산물을 다시 가져온다.
14년째 목요장터에서 벌꿀을 팔고 있는 배경수(51) 회장은 “역사는 18년이지만 상당기간 사업이 들쭉날쭉했다”며 “3년 전부터 아파트 25곳을 순회하는 지금의 규모로 안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냉동탑차를 도입한 뒤로 신선도가 높아지면서 주민들의 반응이 부쩍 좋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천안 목요장터는 1993년 판로에 어려움을 겪던 농민들이 농업기술센터와 궁리 끝에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농민들은 가장 좋은 농산물을 공급하는 책임을 맡고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아파트를 섭외하기로 역할 분담을 했다. 천안 농업기술센터의 이현경 지도사는 “지난해에는 농가 30곳에서 모두 5억2천만원의 쏠쏠한 매출을 올렸다”며 “이제는 혹 잘못되거나 부족한 게 없는지 살펴봐 주기만 해도 스스로 굴러갈 것 같다”고 말했다.
달걀을 내다파는 민경호(44)씨는 “가장 품질 좋은 것을 내놓고, 대신 제값을 받자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농민들로서는 좋은 값을 받지만, 중간유통 마진이 없기 때문에 실제 판매는 소맷값의 85% 수준에서 이뤄진다. 농민도 좋고 주민도 좋은 ‘착한 직거래’의 모범인 셈이다.
농산물을 판매하는 회원 농가들은 4월 첫 장터가 열리기 전과 추석 직전에 두차례 주민초청 농장체험 행사를 연다. 소중한 고객들과의 신뢰 쌓기이다. 올해는 4월8일 여러 아파트 부녀회 간부 80명을 농가의 비닐하우스로 초청했다. 실컷 즐기고 돌아갈 때는 직접 수확한 채소를 한 보따리씩 안겨주었고,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버스를 빌린 비용과 점심값을 부담했다.
배 회장은 “주민들과 꾸준히 쌓은 믿음이 목요장터 성공의 가장 큰 자산이 되고 있다”며 “직거래 장터에 참여를 희망하는 농가가 많아지고 있어, 내년에는 1개 조를 더 늘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초청 농장체험 행사도 호평
로컬푸드 사업에 앞장서온 천안시는 매주 금요일마다 시청의 앞마당을 개방하는 금요장터도 열고 있다. 금요장터에는 전체 25 농가 중 15 농가 정도가 참여한다. 이현경 지도사는 “목요장터는 매출이 많은 대신 차량 유지비가 들어가고, 금요장터는 매출이 적은 대신 수익성이 높다”며 “직거래 장터 지원업무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충남발전연구원의 허남혁 책임연구원은 “천안의 목요장터는 아파트 위주의 우리 주거 실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독창적인 농민장터 모델”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농민장터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허 책임연구원은 “로컬푸드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천안시의 의지도 직거래 농민장터가 뿌리내리는 데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