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HERI Media] 주목되는 방송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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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개국이 공동제작해 올 초 방송된 다큐멘터리 가운데 방글라데시 비티브이(BTV)가 제작한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연말-연초에 방송된 <울지마 톤즈>는 많은 사람을 울렸다. 이태석 신부가 죽음이 한 발짝씩 다가오는 걸 느끼면서도 떠날 수 없었던 아프리카 남부 수단. 그곳은 오랜 내전과 가난, 병마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졸아붙어 버린 곳이었다. 아프리카가 아니어도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 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는 9억명이 하루에 1달러 남짓한 돈으로 살고 있다. 아시아인 6명 중 1명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어린이 3명 중 1명은 체중이 표준에 미달한다.

아시아 시대가 열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적지 않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이 빈곤뿐 아니라 굶주림, 질병, 교육기회 부족, 열악한 노동조건, 성차별, 환경파괴 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일본, 싱가포르,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의 도시처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곳에서 온 관광객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아시아인들이 서로 사는 모습을 알고 공감하며 더 나은 내일을 함께 모색하는 데 방송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3월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초대형 해일(쓰나미) 방송도 마찬가지다. 가공할 자연의 위력 앞에 벌거벗겨진 인간의 비극이 방송 화면으로 생생히 보도되면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모금과 지원활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같은 국제방송기구가 주축이 돼 여러 나라의 방송사를 모으고, 이들이 합심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영하는 공동제작 프로젝트는 방송의 공공성·공익성을 가장 잘 구현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17개사 공동 프로젝트 큰 울림

최근에 국내에서 전파를 탄 아시아 공동제작 프로젝트로는 아시아를 변화시켜 세계를 구하자는 의미의 케어(CARE: Change Asia, Rescue the Earth)가 있다. 한국방송공사(KBS)가 지난해 6월 아태방송연맹에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중국 시시티브이(CCTV), 부탄 비비에스(BBS) 등 17개 회원방송사가 참여해 연말까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빈곤을 반으로 줄이자’는 주제 아래 각국의 현실을 다큐멘터리 화면에 담았다. 방글라데시 비티브이(BTV)는 수도 다카의 빈민촌에서 아픈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무잠벨의 이야기를 담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를 제작했다. 인도네시아의 티브이아르아이(TVRI)는 ‘소외받는 한센병 환자들’을, 라오스 엘엔티브이(LNTV)는 ‘나캉마을의 힘든 미래’를, 터키 티아르티(TRT)는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을 보내왔다. 각 나라가 겪는 아픔을 자국 피디의 시선으로 풀어냈지만, 반영된 뒤에는 나라에 관계없이 깊은 울림을 주는 프로그램들이었다.

앞서 2007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고발하고 개선을 모색하는 ‘아시아 워킹’ 프로젝트를 아태방송연맹과 국제노동기구(ILO), 블룸버그아시아가 공동으로 주최해 진행했다. 국제노동기구가 주창한 ‘양질의 노동’(Decent Working)을 화두로 삼아 15개 방송사가 이주노동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고용 불안정, 어린이 노동, 다국적기업의 노동착취, 여성 노동 등을 다룬 5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완성된 필름은 수십개국에서 방송됐으며, 국제노동기구가 주관하는 각종 회의에서 노동조건 향상을 촉구하는 홍보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지역이 광활하고 문화와 경제적 처지가 크게 다른 아시아가 그나마 아시아란 정체성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데 디딤돌 구실을 하게 된다. 서울과학기술대 은혜정 교수는 “한류 때문에 방송콘텐츠를 지나치게 상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교류와 상호이해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기획에서 방영까진 숱한 난관

그렇다고 방송사들의 공동제작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공익적인 기획을 하고 재정 후원자를 찾는 일에 겨우 성공하면, 방송사들을 모아 기획의도를 공유하고 제작한 뒤 이를 일관성 있게 편집해 방영하기까지 난관이 이어진다. 프로젝트매니저(PM)나 총괄프로듀서(EP)를 임명해 진행하지만 일은 더디기 마련이다. 저개발국가는 제작 워크숍 비용을 모두 대줘야 할 때가 많고, 통신사정이 열악해 몇주째 연락이 안 되거나 프로듀서가 밤에 생계를 위해 부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사정이 나은 나라의 방송사가 저개발국가의 제작진을 교육하거나 기자재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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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를 변화시켜 세계를 구하자’는 아시아 방송의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위해 2010년 6월 열린 워크숍에 각국의 프로듀서들이 참석했다. 한국방송 제공

하지만 일단 제작되어 방송이 나가면 저개발국가일수록 파급력은 크다. ‘케어’와 ‘아시아 워킹’ 프로젝트매니저를 맡았던 배기형 케이비에스 국제협력실 차장(PD)은 “일단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여러 차례 방송이 나가고, 텔레비전이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반응 또한 크다”며 “저개발국일수록 지상파 채널을 통해 공익적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들도 제작 여건은 다소 열악하지만 열정과 자유로움, 전문성을 무기로 아시아의 파트너들과 함께 삶의 현장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다. 이런 다큐멘터리는 작품성 여부에 따라 지상파에서 방영되고 국제 다큐멘터리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선박해체 노동 등 아시아인의 고난을 다룬 5부작 ‘인간의 땅’(2009년 KBS 방영)도 독립제작사가 만든 것이었다. 독립 다큐 피디인 한지수씨는 소외된 지역과 사람들에게 카메라 시선을 맞추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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